팬데믹이 세계를 덮치면서 인간관계에도 변화가 왔다. 거리두기 단계의 영향이 컸지만 혹시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줄까 봐 대면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작용했다.
소비의 사전적 의미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재화나 용역을 소모하는 일'이라면 인간관계에도 소비가 적용될 수 있으리라.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 우리는 사람에 대해서도 고심하는 시간을 맞았다. 많은 이들이 비자발적 인간관계 비소비 기간을 보냈다.
연락을 해서 서로 시간이 맞으면 만나는 것이 당연했던 만남의 태도가 훨씬 신중해졌다. 혹시나 모를 감염 상황을 떠올리면 매사가 조심스러웠다. 정말 막역한 지인만 만나거나 취미를 나누는 느슨한 연대만 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정리보다는 정돈에 가까운 과정이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수천 개의 전화번호가 있을 만큼 '인싸'의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백 명 안쪽의 사람들만 리스트에 남았다.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되자 나만의 원칙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모임에 초대되었다고 무턱대고 가지 않는다. 상황과 시간, 오는 사람의 성향을 종합해 가고 싶을 때에만 간다. 향후 인간관계, 하루의 루틴을 깨지 않는 선에서 체력과 시간을 안배해 갈 모임을 정한다. 대신 참석한 모임에서는 충분히 그 시간을 즐기고 온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시간만 맞으면 대부분 모임에 참가했다. 그 많던 약속을 이어갔던 덕에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좋은 인연도 만났다. 그러나 돌아보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자리도 상당했다. 친구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초대한 사람이 민망할까 봐 얼굴만 비칠 겸 간 적도 부지기수이다.
이제는 정에 이끌리는 선택보다는 ‘나’에 더 초점을 맞춘다. 긍정적인 에너지와 영감을 주는 사람이 있는 자리이거나 만날 사람과의 대화가 기대될 때.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즐거울 때만 길을 나선다. 그날의 자리를 100% 예상할 수는 없지만 나와 결이 맞는 사람과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으니 촉을 믿고 가는 것이다.
좋은 사람과의 유쾌하고 풍성한 대화는 시간이 흐른 후 떠올려 보아도 슬며시 미소 짓게 하는 추억을 남긴다. 반면 ‘내가 이 자리에 왜 있지?’하며 자꾸만 시간을 확인하고 싶은 모임은 앉아 있을수록 고역이다. 머무는 내내 시간이 아깝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도 무겁다. 씁쓸한 기운만 남는다.
예전에 어느 외국계 기업의 임원을 인터뷰한 일이 있다. 주옥같은 말씀이 참 많았지만 특히,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저는 일주일에 딱 한 모임만 가요.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보러 가는 길이니 늘 즐겁죠.”
요즘에야 일주일에 한 번이 꽤 자주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시간 활용을 저렇게 하는구나.’ 싶었다. 간간이 그의 페이스북을 보면 원칙에 따라 엄선했음이 분명한 유쾌한 모임이 일정한 주기로 피드를 채웠다. 나머지는 사랑스러운 가족과의 일상이 대부분이었다.
관계의 미니멀리즘은 결국 깊이로 귀결된다
인간관계 역시 주관과 소신의 윤곽선이 필요하다. 전화번호가 수천 개였던 관계 맥시멀리즘 시기에도 고민을 털어놓고 기쁜 일을 주저 없이 알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 저장한 전화번호 수에 비례하지 않았다. 그 수가 현격히 준 요즘이지만 진정한 친구의 수는 변함이 없다.
우리 주위 혹은 미디어에서 비치는 폭넓은 인간관계를 무턱대고 부러워할 이유는 없다고 느낀다.
“성대한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갔더니 온 사람만 100명은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우와, 대단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봤다니…! 부러웠죠.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100명이 왔다면 나 또한 이 사람들의 생일을 모두 챙겨줘야 하잖아요. 맙소사, 3일마다 누군가의 생일을 챙겨야 하는 삶인 거죠.”
어느 책에서 본 인기 많은 사람의 삶이다.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는 일상의 이면에는 이런 수고로움과 기브 앤 테이크 공식이 숨어 있다. 여러모로 많은 노력이 필요한, 아무나 감당하지 못할 일상이다.
한때는 나도 이런 인맥을 지닌 삶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이제는 소수의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며 사는 것도 쉽지 않은 길임을 안다. 이 사람들이 나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귀하디 귀한 은인이라는 것도.
무언가가 풍요롭게 느껴질 때는 한번 중단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만남이 확연이 줄어들자 진정으로 가꾸어야 할 인연이 보였다.
매달 틈틈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메모해 둔다. 일상에 매몰되어 안부조차 잊고 사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어느 날 문득 다정한 안부 인사를 건넨다.
결국 관계는 깊이로 귀결되는 법이다. 소중한 나의 사람을 찬찬히 떠올려 보고 깊이를 가늠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