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터 휘서 Sep 22. 2020

다정한 의사를 만난다는 것


허리가 심상치 않다.


평소 때 간혹 느끼던 경미한 뻐근함과는 느낌이 달랐다. 자려는데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자세를 쉽사리 바꿀 수 없었다. 통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새로 들어가는 독서 모임이 3일 후인데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허리 통증은 3~4일이면 낫는 경우가 많다니 하루 더 지켜보기로 다.


웬걸, 다음 날이면 괜찮을 줄 알았던 통증이 더 심해졌다. 걸을 때 허리를 부여잡았고 여전히 수면 자세를 바꾸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모임 하루 전, 이제는 몸을 숙이는 것도, 일어났다 앉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앉아야 할 때는 다리 힘만을 이용해 조심스레 앉았다 일어섰고 침대에 누웠다 몸을 일으키는 행위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두려울 지경이었다.


'와... 큰일 났다!'


움직일 때 허리 쪽 근육이 하나라도 연관되면 일시에 강한 통증이 3~4초간 이어졌다. 처음에는 '악' 소리가 나왔고, 횟수가 잦아지자 너무 아파서 아무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침대 맡에 놓인 물이나 핸드폰을 집어 들기 위해 10cm만 손을 뻗으면 되는데 통증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1cm씩 움직여 겨우 물건에 손끝이 닿았다.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밥을 먹는 행위부터 일상의 모든 동작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하루 동안 수십 번의 강한 통증이 몸을 훑고 가자 상태는 더 나빠졌고 몸 안의 에너지는 고갈되었다. 새벽녘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자 눈물이 절로 나왔다. 한 10여 분을 울다가 멈추었다.

누워서 울면 코가 막혀서 결국 머리가 아프고 지금은 코를 푸는 것조차 극심한 통증으로 이어지니 울음도 삼켜야 했다. 마음대로 울 수도 없다니...!


119를 부를까 하다가 '아니야, 아무리 움직이기 힘들어도 이런 정도로 귀중한 응급 시스템을 낭비할 순 없지.', 구청에서 운영하는 간병 서비스가 떠올라 찾아보니 먼저 4~5가지 서류가 통과되어야 이용할 수 있었다. 분명 홍보 문구는 긴급상황으로  것 같은데.. 행정에는 절차가 따르는 법이니 이해하기로 한다. 

걷기가 힘들었기에 집 앞 택시가 온다 해도 나갈 수가 없어 움직이지 못했다.


한편, 몸도 몸인데 내일 독서모임을 진행할 대타가 시급해졌다. 아침 일찍 회사에 긴급 문자를 보내 놓고 어찌어찌 대신할 분을 구해서 급한 불을 껐다.


Photo by Hush Naidoo on Unsplash

다음 날 점심이 되어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 집에서 5분 거리인 신경외과에 도착했다. 토요일이라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대기 환자 6명을 기다리는 30여 분이 고역이었다. 몸을 움직이다 찾아온 강한 통증에 핸드폰은 소파 뒤로 휙 날아가고 모자는 발 밑으로 떨어졌다. 옆에 앉아 있던 청년 이 눈치껏 모자를 주워주었다.

기다림 끝에 내 차례를 부르는 방송이 나온다.

진료실로 걸어 들어오는 모양새부터 심각하다 느낀 의사는 몇 가지 문진 끝에 엑스레이실로 인도했다. 허리를 다각도로 찍기 위해 앞, 옆 자세로 바꿔야 했는데 몇 초를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워 얕은 신음이 절로 나왔다. 이 모습에 자세를 바로잡아주던 선생님은 어이쿠, 어이쿠를 내뱉으며 진심으로 안쓰러워하셨다.


잠시 후 사진을 보더니 엑스레이 상에서 큰 문제는 없는지 근육통으로 결론이 났다.

아픈 부위를 찾아가며 허리 근육에 크고 작은 주사를 4군데 맞았다. 진료받는 침대에 엎드리는 과정이 30초는 넘게 걸렸을 것이다. 통증이 여러 번 찾아와 몸을 엎드리기 힘들었으므로.

Photo by Charles Deluvio on Unsplash

주사를 맞는 동안 등 위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렸다.

"근육통이 별 거 아닌 듯 보여도 환자 입장에서는 엄청 아플 수 있죠. 따끔합니다~ 마지막 주사는 좀 더 아플 거예요."


이미 이마는 땀으로 흥건했고 관자놀이를 타고 눈물이 흘렀다. 와중에 의사의 말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참 다정한 의사 선생님이구나.'


진심 어린 연민의 감정을 내뱉는 의사를 만난 게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를 바라보는 기준이 많겠지만 공감을 표하는 건 드물기에 환자 입장에서는 기억에 남는 법. 오래전에 들른 신사역의 어느 내과가 마지막이었을 테다.

그때 이유를 알 수 없는 몸 상태 저하로 일주일 동안 두 번의 응급실행을 포함해 여러 번 병원에 갔다. 그중 한 곳이 회사에서 가까운 내과였고 급히 수액을 맞았다. 수액을 맞는 동안 병원 마감 시간을 넘겨 간호사가 퇴근하자 약이 다 들어갈 때까지 의사 선생님이 곁에 남아계셨다.


50대로 보이는 경력 많은 의사 선생님이었는데 나는 그리 아픈 와중에도 선생님의 퇴근미뤄지는 것이 미안해서,

"퇴근 시간 넘겼는데 괜찮으세요?" 했더니

버럭 하시며,

"환자가 아파 누워 있는데 그깟 시간 좀 넘으면 어때요. 끝까지 봐야지."

그 말에 온기가 있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놈의 회사 그만두던지 일을 좀 줄이라고 닦달하셨다.

"제 마음대로 일을 줄일 수가 없어요. 병원 오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아프면서 일을 해요? 이구~!"

"헤헤, 그러니까요."


그 후로 7년 만이다. 몇 초라도 환자의 아픔을 걱정해주는 의사를 만난 게.

지나가는 말이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는 순간의 감동이 된다. 몇 분 단위로 이어지는 진료 스케줄과 늘 아픈 사람만 대하는 쳇바퀴 같은 의료인의 일상 속에는 그만의 고충이 있겠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언제부턴가 병원이 참 많아졌다. 우리 동네도 포화상태로 보인다. 역 사거리를 중심으로 건물 층층마다 들어선 병원의 숲을 늘 스친다.

고난도의 수술과 전문성을 요하는  말고 고만고만한 일상의 질병이 엄습했을 때 환자의 마음은 어떤 요인들 움직일까?

위치, 의료진의 실력, 회복 속도, 친절, 대기 시간, 시설...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잠깐 생각에 잠긴다.


병원을 나왔다. 걷기가 불편했지만 어렵게 나왔으니 많은 곳에 들렀다. 점심을 먹고 디저트를 사고 마트에 들러 콜라를 계산했다.

자주 가는 마트, 진입로의 경사도가 처음으로 힘겨웠다. 40도 가량의 오르막길을 향해 한 발짝씩 움직여본다. 이 모습을 저 앞에서 지켜보던 마트 아저씨가 어느새 달려와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버팀목 삼아 평지로 나왔다.

Photo by the blowup on Unsplash

두 개의 건널목, 모두가 길을 건넌다. 10초가량 남았을 때부터 조바심을 느끼며 겨우 인도에 안착했다. 걸음이 느려졌을 때에야 약자의 처지를 비로소 헤아려본다. 성인 걸음에 맞춰진 신호등의 속도, 평소에는 가뿐히 오르내리던 낮은 경사도가 몸이 아픈 사람에게 얼마나 힘겨운지, 관절이 약해진 노인들에게 얼마나 버거울지 불현듯 깨닫는다.


집으로 가는 길, 따사로운 햇살 아래 산책을 나온 커피우유색 강아지가 물끄러미 나를 본다. 등이 굽은 녀석은 인간의 걸음이 저렇게 느려도 되나 싶은 눈치이다. 꽃집 앞에 머물던 강아지가 이내 내 앞을 스쳐갔다. 강아지가 사라지고 뒤를 따라오던 검은색 지팡이를 짚은 동네 아주머니가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어느새 나와 멀어졌다.


심신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에 반하는 건 인간의 본성.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 구절을 보고 '오호~ 그렇구나.' 했었는데 오늘 보니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진료실 너머 통유리에서 잠깐 내다본 초록 초록한 숲의 풍경에 마음이 환해졌다. 집으로 오는 언덕 끝에 늘어선 수천 개의 팔랑거리는 잎사귀의 색조가 눈망울 가득 담겼다.

구름 한 점 없는 선연한 파란 농도의 하늘이 고마웠다.


'아픈 와중에도 아름다움을 들여야 하는구나.' 


허리 통증으로 인해 아마도 몇 날은 더, 일상에 불편을 겪어야 하겠지. 몇 분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어 글도 나눠 쓰고 있는 형편. 복구할 수 없는 기회비용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에 눈길을 돌려야겠지. 건강할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이 따라온 것을 감사해야지.


비록 며칠을 꼼짝달싹 못하는 고통 속에 고립되어 있었지만 주위의 일상은 변함없는 속도로 재생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마트에서 일하는 점원은 오늘도 일사불란하게 바코드를 찍고, 늘 인사를 건네는 과일 가게 아저씨는 여름 햇살을 담뿍 머금은 캠벨 포도를 목청껏 외친다. 커피우유색 강아지는 내일도 오후 산책을 따라나설 것이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이가 우리 주위에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허리를 부여잡고 책을 찾으러 온 내게 서점 아저씨는 돌아다니지 말라는 당부를 건넸고 의사 선생님은 환자의 아픔에 측은을 내비쳤다. 마트의 배달원 아저씨는 주저 없이 달려와 투박한 손을 내밀었다. 그들로 인해 강렬한 고통을 잠시나마 잊었다. 마음의 온기가 통증을 덮어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생은 평소의 유속 대로 흐르지오늘의 깨달음을 자양분 삼으리라. 내게 불현듯 다가올 타인의 고통 앞에 무디지 않은 사람이 되기를 다짐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MP3를 다시 꺼내 들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