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th Kitchen
스무살부터 따로 살아온 딸의 걱정을 크게 하지 않는 엄마. 웬만해선 먼저 연락하지 않는 쿨하고도 무심한 엄마와 이따금씩 하는 통화는 1분을 채 넘기지 않는다. 그 짧은 통화는 항상 밥으로 시작해 밥으로 끝난다.
밥 먹었어? 안부를 물은 뒤,
밥 잘 챙겨먹고. 안녕을 바란다.
10년 동안 네 번의 부엌을 거쳐 만난, 가장 큰 냉장고와 가장 큰 공간을 가진 다섯 번째 부엌. 요리는 좋아하지만 장보기와 설거지는 싫은 나는, 날 스스로에게 고용된 요리사라 가정한다면, 마땅히 지켜야 할 직업윤리에서 한참을 어긋난 거다.
배가 고프다. 부엌으로 향한다.
냉동실 속 1인분씩 완벽하게 소분된 고기, 된장찌개, 뭇국. 품절 없이 무한 리필되는 야채칸의 파와 양파. 싱크대 아래 가득 찬 쌀통과 주방도구. 고맙지 아니할 수 없는 엄마의 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마저도 잘 챙겨먹지 않는 게으른 딸이 품는 미안함. 이 부엌은 엄마에 대한 부채다.
냉장고 세 개도 거뜬하게 관리하는 엄마와 냉장고 하나의 생태계도 금세 위태롭게 만드는 나. 일감이 소복이 쌓인 싱크대와 빈자리가 난무한, 과분한 덩치의 냉장고는 그 옆을 스쳐 지나가는 데에도 죄책감을 지어준다. 나란 사람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무심한지. 엄마 없는 부엌은, 엄마 없는 나는 어찌나 허점 투성이인지. 이 부엌은 엄마의 부재다.
냉장실을 연다. 오래 돼 초록 싹 튼 마늘, 한 귀퉁이씩 물러진 양파, 국물만 남은지 오래지만 여태 치우지 않은 김치통. 일단 문을 닫는다. 냉동실을 연다. 면발 사이사이 살얼음 눈 쌓인 잡채는, 먹고 싶지만 감히 해동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냉장고 앞이 춥다. 일단 문을 닫는다.
얼마 전 엄마에게 프로포즈를 받았다. 서울에서 배 곪고 지내지 말고 안산으로 오라는 제안. 내게 가장 큰 방을 넘길 테니 함께 살자는 귀여운 유혹. 굶고 산다기엔 너무도 오동통한 내 볼살은, 엄마 눈엔 보이지 않나 보다.
새 냄비를 사야 한다는 사실만 일깨워주는, 바닥에 그을음이 시커먼 냄비를 꺼낸다. 물을 받는다. 일, 이, 삼, 사, 오, 륙, 칠, 팔, 구, 십. 열을 세어 물 양을 맞춘다. 불 위에 올린 뒤 라면을 뜯어둔다. 방에서 아이패드를 챙겨온다. 밥 먹으며 볼 프로그램을 찾아 뒤적인다. 하나 채 고르기도 전에 물이 끓는다.
스토브 옆 넓직한 나무 도마 위에 다 끓인 냄비를 올린다. 손잡이가 달린 낮은 찻잔을 꺼내 왼손에 든다. 도마와 닮은 짙은 색의 나무 젓가락을 챙긴다. 괜스레 부엌 창을 반쯤 열어둔다. 추운 듯 시원한 바람 맞으며 선 채로 후루룩 라면을 먹는다.
전화가 울린다. 웬걸. 엄마다. 일주일 만이다.
응, 엄마.
어디야? 저녁은?
집이야. 방금 먹었어.
뭐 먹었어?
된장찌개에 고기 구워먹었어.
굶지 말고 제때 제때 먹어.
응, 고기 먹었다니까.
그래, 밥 잘 챙겨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