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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우리 Apr 06. 2022

에세이 | 쓰디쓴 쓰기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느새 쓴다. 왜인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월기, 주기에 가까웠던, 느슨했던 일기는 어느새 하루에도 몇 편을 쓰며 시기, 분기에 가까워졌다. 종이와 펜 없이는 집을 나서지 않는다. 손 닿는 곳곳은 메모로 가득하다.


술자리를 좋아한다. 맛있는 걸 먹고 마시는 재미도 물론 크지만, 무엇보다 작정하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여서 좋다. 잔뜩 듣고 잔뜩 말한 뒤 개운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 때도, 피로와 후회를 안고 돌아갈 때도 있다. 둘 중 어떤 날이든 그날의 대화와 감정은 글로 남긴다. 너무 좋아서. 너무 별로여서.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전하고픈 마음이 말이 넘치는 날엔 편지지를 꺼내 옮겨 적는다. 그렇게 글로 옮긴 마음은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우표와 함께 부친다. 혼잣말로 남겨진, 채 부치지 못한 편지도 많다. 미처 전해지지 않은 마음도 종이에 풀어놓은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


잠 못 드는 밤이 있다. 바꿀 수 없는 과거가 넘실거리다 현재를 덮는다. 패배가 확실한 싸움을 매일 밤 펼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었다. 더 단순하게 그래서 더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결국 썼다. 쓴다는 건 곧 나와의 대화였다. 다툼이자 화해였다.


생각이나 마음만 활자로 옮기는 건 아니다. 보고 들은 걸 하릴없이 적는다. 학생일 땐 필기하는 게 좋아 공부가 덜 힘들었다. 일할 땐 자진해 회의록을 적는다. 딱히 적을 게 없는, 몸도 마음도 심심한 날엔 TV에서 흘러나오는 말과 자막을 의미 없이 끄적이기도 한다. 빈 종이를 한가득 채울 때면 왜인지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안에 품고 있는 걸 털어내는 비움 덕인지, 쓰는 행위에 집중하면서 오는 개운함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적은 글을 시간이 지나 읽을 때면 깜짝 놀라곤 한다. 지난달의 내가, 작년의 내가, 10년 전의 내가, 중학생 때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깊이 있어서 놀라고,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비슷한 고민, 비슷한 다짐을 매번 반복하고 있어 놀란다. 그새 많은 게 달라졌지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어떤 점이 질리도록 싫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거의 같다.


이 정도면 동어반복, 자기복제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면 동어반복, 자기복제에 실망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정작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면 모두 결국 자기 자신인 채로 그 둘레를 벗어나길 바라며 겨우 몸부림만 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혼잣말을 잔뜩 남겼다. 행여 누가 볼까 싶어 일기장을 꽁꽁 숨겼다.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을 잔뜩 남겼다. 직접 말하지 않은 채로 알아줬으면 하는 모순적인 마음이었다.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지만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은 비밀일까. 나는 매일 비밀을 쓰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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