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부모를 바라본다는 것

by 오명화

2020년 11월 14일 토요일,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있다가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카톡으로 전해 들었다. 위암 투병을 하고 계셨고, 상황이 좋지 않아서 요양병원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이제 정말 다시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셨다.


코로나로 인해 엄마와 외삼촌들은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이미 숨을 거두신 후 병원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혼자 외롭게 떠나신 할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형제자매들 중 맏딸인 엄마는 장례식이 치러지는 내내 많이도 우셨다. 칠순이 넘은 엄마가 목 놓아 우는 모습은 쉰 살을 목전에 둔 나에게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2016년 12월,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시아버지, 작은 아주버님, 작은이모, 큰이모부, 할머니까지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다. 상실은 자주 경험해도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매번 당혹스럽고 슬프다.

나이가 들수록 주변 사람들의 부고 소식은 더 자주 들려오기 때문에 잘 늙고, 잘 떠나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한번뿐인 인생 너무 안달복달하며 살 필요 없다는 깨달음이 오기도 한다.


죽음의 순간은 누구도 예견할 수 없고, 한사람의 인생은 그가 떠나간 후에야 재평가되고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는 “내가 죽은 후가 무슨 소용이야?”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내가 세상을 떠나도 남겨진 이들은 나에 대한 기억을 갖고 살아간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5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아빠와의 추억들은 여전히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서 문득문득 슬프고 그립다. 힘들었던 기억보다 좋았던, 함께했던 기억을 주로 떠올리게 되는데 아빠와는 그런 추억이 너무 적었다.

엄마한텐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가정을 일군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 가정 챙기다 보면 엄마는 늘 후순위로 밀린다. 또 엄마의 고집은 얼마나 센지 같이 여행 가자, 놀러 가자 설득을 해도 늘 일이 먼저다.


칠순이 넘은 엄마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제 멀리 오래 여행하는 것도 힘들어질 것이다. 명절, 생일 등 형제자매가 모두 모이는 건 은근 스트레스지만, 엄마가 살아계신 동안은 자주 모이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야 후회가 적을 것이다.


죽음 이후 한사람의 인생은 재산을 얼마나 남겼느냐, 업적이 어떻게 되느냐보다 다정한 마음, 따듯한 배려, 함께한 추억들이 세상에 남는다. 나이가 든다는 건 상실에 익숙해짐과 동시에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의 뒷모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