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초등학교 동창들의 연락을 꽤 받았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잘 지내냐며 카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인 말이 아이를 얼추 키워놓고 보니 주름진 얼굴과 머리숱이 줄어든 중년의 여자가 거울 앞에 있더란다. 문득 친구들을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졌다고 했다.
현재 내 휴대전화에는 300개가 조금 넘는 연락처가 등록돼있다. 방송작가 일을 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정리를 하지 않으면, 휴대전화 속의 연락처는 1천 개로 확 늘어난다. 함께했던 진행자와 고정 게스트의 연락처, 그리고 각 방송사의 PD 분들, 섭외 리스트에 올린 사람, 방송에 출연했던 사람들까지 포함된다. 그래서 내 휴대전화는 늘 잠금패턴이 등록돼있다. 혹시라도 잃어버릴 경우 연예인이나 방송 관계자의 연락처가 원치 않는 이들에게 공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잠깐이나마 인연을 맺었던 분들에겐 송구하지만 일적으로 한두 번 뵌 분들의 연락처는 1년 단위로 정리한다. 그렇지 않으면 카톡 친구리스트에 자동등록이 되고, 원치 않아도 그들의 프로필이나 사생활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식으로 인맥을 넓히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쉽게 내 사생활의 영역에 들이지 않는 만큼 한번 맺은 인연은 오래 지속하는 편이다. 그들에게 성실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맺어졌거나 자연스레 흘러간 사람들은 연락처 목록에서 정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는 친구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남편과도 이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남자라서 그런지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오히려 “왜 대학동기들을 꾸준히 안 만나?”라는 질문을 했다.
생각해보자. 대학동기들 가운데 남자들은 결혼을 하면 스스럼없이 연락을 하기가 꺼려진다. 각자의 배우자가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고, 오해의 소지를 주지 않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양쪽이 기혼이 아니라 어느 한쪽이 결혼을 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여자 동기동창들은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 또 만나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친구들 가운데 결혼을 가장 늦게 한 케이스다. 서른여덟 살에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일하느라 바빴고, 친구들은 대개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바빴다. 그 친구들을 만나려면 내가 그녀들의 집이나 근처로 가야했고, 결혼이나 육아경험이 없는 나와 육아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친구들의 대화는 겉돌았다. 그 후 각자 바쁘다는 이유로 관계는 소홀해졌다. 내가 결혼한 후에는 나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정신없었고, 친구들은 대학입시를 앞둔 학부형이 되어 관심사나 고민이 전혀 달랐다. 서로 시간을 맞춰 만나기도 어려웠고 만나서 나누는 대화도 밀도가 떨어졌다.
30년 만에 다시 뭉친 초등학교 동창들은 주름과 흰머리가 좀 보이긴 했지만 말투나 표정 등은 그대로였다. 서로의 어린 시절을 아는 친구들이 확실히 다르긴 하다. 몇 십 년 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도 시간의 벽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여럿이 오래 만나는 건 쉽지가 않다. 각자 살아온 세월이 다르다보니 대화는 여기저기로 분산되고 심도 있는 대화도 어렵다. 그래도 각자 건강하게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으니, 1년에 몇 번 정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시간이다.
나이가 들수록 교우관계가 중요하다는 연구결과는 꾸준히 나온다. 가족 이외에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며 위로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친구라는 존재는 정말로 소중하다. 그런데 좋은 친구란 뭘까? 나의 성장기를 속속들이 아는 친구도 중요하지만, 나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봐주는 새로운 친구도 필요하다.
현재 내 주변의 인간관계를 살펴보면, 양가의 가족들을 제외하면 아이 친구의 엄마들, 어린 시절 시골 친구들,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기동창들, 사회에서 만난 작가들과 방송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이가 40대가 되면 이미 챙겨야 할 관계만 해도 너무 많기 때문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데 소극적이 된다. 물론 정답은 없다. 이미 맺어진 소수의 인연과 편안함을 추구할 수도 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데 적극적으로 노력하든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남편, 아이, 양가의 가족들 외에 친구라는 존재는 나이가 들수록 꼭 필요한 존재다. 내가 어떤 역할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각자의 삶에 좋은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