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자라고 나는 늙는다

by 오명화

서른아홉 살에 낳은 아이가 올해 열한 살이 되었다. 노산이라고 불리던 출산 당시만 해도 ‘이 아이를 언제 키우나?’ 생각했는데, 세월이 참 빠르다. 결혼도 출산도 일반적인 나이대보다 늦어지다 보니, 고민의 결도 동년배들과 좀 다르다. 친구들은 이미 대학을 보냈거나 한창 자녀 입시에 전념하는데, 나 혼자서 초등학교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이 스무 살 성년이 되면 내 나이는 환갑을 목전에 두게 된다. 물론 의학이 발전하고 평균수명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수명은 누구도 단정할 수 없는 문제라서 나이를 자꾸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이를 계산하기 시작하면 건강 걱정을 하게 되고,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기 때문이다.


자식을 최우선에 두었던 우리 부모세대에 비교하여, 지금의 사오십 대 부모들은 아이와 나의 인생을 별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아이의 성장을 물심양면으로 돕지만, 아이에게 효도하라고 종용하거나 늙어서 아이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 세대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도 같다.


‘내가 너를 힘들 게 키웠으니, 너도 자식으로서 도리를 해라’가 우리 부모 세대들의 암묵적인 생각이고, 지금의 중년 또한 나는 설령 자식에게 효도를 바라지 않아도 늙은 부모님을 외면하지는 못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부모님의 노후 간병을 챙기면서 자식들의 양육에 최선을 다하고, 나 자신의 노후도 열심히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출간했던 책에도 적었고 평소에도 말하지만, 최고의 노후준비는 계속해서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재테크로 비축한 자산이나 연금도 도움은 되겠지만, 꾸준히 수입을 창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영업을 하던 남편이 레스토랑을 폐업하고, 구직현장에 뛰어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열심히 정보를 취합하고 이력서를 내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었고,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그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여성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50대 전후의 여성이 구직에 뛰어들었을 때 채용이 될 확률은 매우 저조하고, 그 직군 또한 한정적이다. 나처럼 전문직인 사람들은 일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어떻게든 조금은 돈벌이를 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 일을 줘야 하는 프리랜서 입장에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다’는 확신은 어려워진다.


요즘은 결혼도 출산도 선택인 시대이고, 그것이 맞다. 결혼이나 출산, 육아는 자발적으로 선택해도 어려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이 문제에 조금 더 진지하고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면, 서른아홉 살에 첫 아이를 출산하는 용감한 행동은 못 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금세 자란다. 그 성장의 속도가 놀라울 때가 있다. 지난 11년이 쏜살같이 지나간 것을 생각하면, 아이는 또 금세 성년이 되었다며 축하를 받을 것이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그 옆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리 부부의 목표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수재로 키운다거나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원대한 목표는 저 멀리 날아갔다. 한 생명을 낳았으니 성년이 되는 그날까지, 아이에게 짐이 되지 않고 부모의 역할을 무탈하게 해내는 것이 지금의 솔직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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