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명화 Nov 24. 2021

늦가을, 정취

며칠 전, 눈보라가 낮에 살짝 스쳐가는 것을 보았다. 춥고 비오고 변덕스런 날씨에 가지에 매달린 단풍잎들이 처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동안 해야할 일들 위주로 처리하며 하루하루 지내다보니, 브런치에 글 쓸 여력, 정말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사이사이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고궁으로 수목원으로 다녔다.

가을날의 경복궁은 단풍 구경을 나온 이들로 북적였지만, 연못가를 제외하면 한적하게 거닐기에 좋았다.

사진에선 경회루의 모습이 한적해 보이지만, 수많은 인파로 인물사진을 찍으면 단체사진처럼 나왔다. 오래 기다려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다. 주말의 고궁나들이는 피하는 편인데, 지금이 아니면 단풍이 다 져버릴 것 같아서 마음 먹었을 때 움직이는 쪽을 선택했다.

아이와 경복궁을 거닐고 온 다음날,  역시나 비바람에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올해도 이렇게 가을이 가는 건가' 사색할 시간도 없이 추위가 우리를 찾아왔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돌아보며 찰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삶은, 아니 지금 이 순간은 그저 지나가는 찰나에 지나지 않지만, 그 찰나들이 모여 한달, 일 년, 일생이 된다.

은행잎 융단은 매년 누릴 수 있는 평범한 호사일지 모르지만, 그것 또한 당연한 것은 아님을 생각한다. 다시 오지 않을 2021년 11월, 늦가을의 정취를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날 오후의 해수욕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