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밥뉴스] 페어런팅(Parenting)

by 오밥뉴스

그렇습니다.


엄마가 처음이라서, 사실 우리는 엄마 노릇이 뭔지 잘 모르면서 코끼리 다리 만지듯 더듬더듬 걸어가고 있습니다. 앞뒤좌우를 돌아보며 엉금엉금 기어 가는데, 몸이 피곤한 날 개구리 한마리가 돌이라도 던지기라도 하면, 애꿎은 내 아이에게 속수무책 용암처럼 분노 섞인 잔소리와 분노를 뿜어댈 때가 있죠.


나란 사람을 놓고 보면, '엄마'라는 사람은 이성적이지도 일관적이지도 않습니다. 아마 우리들의 부모님도 그러하셨겠죠.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도대체 부모 되기, 란 어떤 의미일까요. 첫째, 부모는 상대 개념인 자식이 있어야 성립되는 말입니다. 그러니 영어로 parenting은 양육의 의미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내 자식을 어떻게 키우고 있느냐, 그 진행 중인 이야기가 페어런팅입니다.


어떤 뚜렷한 소신이나 목적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개는 그저 같이 살면서 공동운명체가 되어 함께 삶이 굴러가게 된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가 우리 아이입니다. 내가 먹고 마시고 입고 소비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웃고 우는 모양들을 우리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보고 흉내내고 어느 순간 그러한 생활패턴에 호불호를 갖게 되어 갈등과 대립도 겪게 되겠죠. 먹이고 입히고 키워준다기보단, 나의 삶과 생각을 모방하고 공유하고 넘어서게 되는 존재들이, 바로 아이들인듯 싶습니다.




과잉양육(hyper-parenting) vs 반영적 양육(reflective parenting)


미국에서도 과잉양육, 하이퍼 페어런팅은 주요한 화두인가 봅니다. 몇년 전 뉴욕타임즈의 한 언론인이 기고한 글엔, 미국과 영국이 헬리콥터맘으로 대변되는 과잉양육의 문제로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고 지적하네요. 이러한 현상은 브라질, 칠레, 폴란드, 이스라엘, 러시아 등의 중산층에서도 마찬가지라고요.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네요.


https://www.nytimes.com/2014/10/13/opinion/a-cure-for-hyper-parenting.html?_r=0


글은 대안으로서, 정서적 지능을 높이는 교육(Teach your kids emotional intelligence)을 하라고 강조합니다. 세상 사람 모두에게 사랑받는 완벽히 앞서나가는 인간을 만들 수 없으니,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걸 일찍 깨닫게 하란 말입니다. 차라리, 내가 그 사람의 크기를 재고 내 사람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주도권을 가지게 하란 말이죠.


독일 심리치료 전문가 뵈르벨 바르데츠키(Bärbel Wardetzki)는 'parentification(부모화)'란 표현으로 과잉양육의 위험을 경고합니다. 부모화란,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어 자녀가 부모가 되고 부모가 자녀가 되는 걸 말합니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가 오히려 부모를 보호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 결과 아이는 더이상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느끼지 못하고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무엇이 좋은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 아이는 부모의 욕구와 요구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지 못하고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이때 부모의 질병은 자녀의 독립적인 발달을 왜곡시키고 저해한다. 아이는 어머니의 우울증이나 아버지의 술주정이 모두 자기 탓이라고 여겨 차라리 모든 걸 양보하고 상황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는 쪽을 택한다. 이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똑같은 패턴으로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크다.”


과잉육아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반영적 양육(reflective parenting)’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 임상심리학자 도나 위크(Donna Wick)는 부모가 눈 맞춤, 표정, 어조, 몸짓, 반응 등 비언어적 메시지를 통해 자녀의 마음을 보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얘기하죠. 학원에 보내고 지식을 가르치기보단 아이의 감정과 상황을 읽고 지지의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더 훌륭한 교육법이란 뜻일 것입니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54XX45900028


이러한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미국 소아과 의사 캐시 매저리(Kathy Masarie) 는 “과잉 모성의 문화에서 중요시하는 것과 우리에게 진짜로 중요한 것은 다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안전하게 해주십시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아이들의 삶에 간섭하지 마세요.”라고 말합니다.


slow parenting: 느긋한 양육/ free range parenting: 방목 양육/ simplicity parenting: 단순한 양육. 모두 비슷한 개념들입니다. 우린 어떤 양육을 하고 있나요? 혹은 우리는 어떤 부모인가요?





부모됨의 본 얼굴


소설가 김연수가 한 출판사 홈페이지에 연재한 기획물입니다. 부모님 혹은 자식이 먼저 죽고,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는 가족들이 남긴 글이 마음 한 켠을 울리네요. 시점을 바꿔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먼 미래에서 오늘의 우리를 보았을 때. 우리가 어떤 부모였는지, 혹은 우리의 부모님이 어떤 부모님이었는지는 진짜 이별을 겪은 후에야 본 얼굴을 드러낼 것 같습니다.


http://news.kyobobook.co.kr/comma/openColumnView.ink?sntn_id=11783


오밥/ 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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