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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 Mar 09. 2020

뮤지컬 팬레터, 펜과 글자와 뮤즈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거예요.

때는 가장 빛나는 시간


뮤지컬 팬레터를 처음 만났던 것은, 2017년 겨울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계기로,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많게는 네다섯 번을 보던 뮤지컬과 연극의 세계로 빠져버렸고, 소위 말하는 연극과 뮤지컬 덕후, '연뮤덕'이 되어 대학로에 눌러앉게 되었다. 소극장 공연으로 나를 인도한 작품 또한 이 뮤지컬 "팬레터"였다.


팬레터의 재연으로 이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연극과 뮤지컬의 세계에서는 아주 초급반에 속하는 입문자였고, 휘몰아치는 음악과 아름다운 가사,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를 두 눈과 머리에 담기에도 급급하여 '디테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관객이었다. 그리고 팬레터가 삼연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설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궁금했다. 나는 이제 3년 차 (2019년 11월 팬레터 삼연 첫 공연 당시) 연뮤덕이었고, 배우들의 디테일도, 무대 위의 소품도, 연출의 의도도 생각하면서 볼 수 있을 만큼 성장했으므로, 그때의 팬레터와 지금의 팬레터를 볼 때 내 자신이 어떤 감상평을 가질 수 있을지 매우 궁금했다.


그리고 고대하던 삼연의 팬레터를 보았을 때, 나는 실망과 감탄이 뒤섞인 이상한 감정으로 극장을 나섰다. 우선 음향에 매우 실망했고, 앉는 자리에 따라 무대 뒤편까지 보이는 무대 디자인에 실망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도 쓰지 않고 음향이 좋지도 않은 공연에 티켓 값이 매우 비싸게 책정되었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처음 이 작품을 보고 내가 받았던 그 감동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좋지 않은 음향이었지만, 그 음향을 뚫고 나에게 다가오는 음악과 탄탄한 극의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는, 내가 왜 연극과 뮤지컬에 빠지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재연과 다르게 변경된 가사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2016년 팬레터의 쇼케이스부터 이 공연을 이끌어온 김태형 연출은, 남성 연출가로서는 드물게 젠더 감수성이 올바르게 잡혀있는 사람이다. 물론 작년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관련 일련의 사건들로 안 좋게 보는 시선도 많지만, 나는 김태형 연출이 젠더 이슈 관련 앞장서서 이끌어온 공연계의 긍정적인 변화에 반기를 들고 싶은 생각이 없다. 성공한 남성 연출가가 여성 관객들을 신경 쓰며 공연을 만든다는 것을, 내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으니.


작가는 열애 중인 '미모의 아가씨'에서 '비밀의 아가씨'로, 상대는 '나이가 든 기생'에서 '먼 곳의 아가씨'로,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매우 중요한 포인트를 모두 캐치하고 수정해서 극을 올린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렇게 시대에 맞추어 변화할 수 있는 작품이니, 길게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올 사연에서는 '얼굴이 박색이면 어떡해요'라는 대사도 수정해주기를 기대해본다.



*이어지는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난 너의 악몽, 어둠 속 목소리, 너를 구하던 손길

1월 18일의 히카루, 그리고 칠인회

2020. 01. 18. 밤공 캐스팅보드


2019년 11월 돌아온 팬레터의 첫 관람 후, 해가 지나 1월 18일, 내가 충격적이라고 생각할 만큼 너무나 슬픈 히카루를 보여주었던 소정화 배우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관람했다. 나에게 마지막이라 그런지 더욱 슬픈 히카루였다. 거울 넘버에서 그렇게 펑펑 울었던 적이 없었는데.


생의 반려가 끝나고, 해진을 말리려던 윤과 나에겐 이 길밖에 없다던 해진이 서로를 끌어안고 우는데, 그 모습이 1막에서 칠인회의 즐거웠던 시간과 겹쳐져 더 슬펐다. 그리고 울면서 기침을 하고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는 그 표정이, 두 사람 모두 이게 마지막이라는 걸 아는 듯했다. 그리고 뒤에서 그들을 보던 히카루조차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에, 나도 눈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살아서 만나는 것이 마지막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아는 히카루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무너지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거울에서, 히카루는 계속 눈물을 훔치며 자기 자신에게 다가온 끝을 알면서도 그걸 모르는 척하려 세훈에게 모질게 소리치지만, 마지막 순간에 세훈을 한번 쓰다듬지도 못하고 사라지고야 만다.


이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 1막 글자 그대로 넘버에서 히카루는 세훈이에게 마치 선생님들을 죽일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히카루의 말에 놀란 세훈은 미쳤냐고 묻고, 히카루는 아마도,라고 동요 없이 대답한다. 사실 이 부분은 처음 보는 소정화 배우의 디테일이라, 공연을 보면서 자리에서 펄쩍 뛸 정도로 놀랐다. 세훈이를 놀리려는 마음과 나는 정말로 그렇게 할 거야 라는 생각을 모두 녹여내어 순간적으로 나온 말 같아서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후에 바로 놀란 세훈이를 안심하게 하려는 듯 농이야, 표현이 그렇다는 거지. 수사적으로.라고 이야기하지만, 히카루는 결국 선을 넘고 세훈이를 위해 투서를 쓰고 만다.


극의 마지막에서 세훈이 송사를 시작할 때는 해진 선생님을 보내지 못할 것 같았는데, 해진이 보내준 히카루가 돌아와 자신을 안아주자 그제야 보낼 수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선생님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해진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세훈이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사라진 히카루였지만, 결국 모든 것은 '내가 널 위해서 그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세훈이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던 원동력이었으니, 이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작가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팬레터를 본 중에 제일 많이 울었던 날이었지만,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 같아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 행복했다.



글자로 지어진 견고한 성,

여기서 우린 서로를 만날 수 있어

펜과 히카루


팬레터에는 편지, 책, 술잔, 원고지 등 많은 소품이 등장하지만,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소품은 펜이다. 이번 삼연의 팬레터에서는 더더욱. 공연 전반에 걸쳐 나오는 펜은 히카루를 상징하는 오브제 같다. 세훈이 처음 펜을 통해서 히카루를 만들어냈고, 히카루가 점점 더 견고 해지는 것도 세훈과 해진의 펜을 통해서였다.


별이 반짝이는 시간에서 완전한 자아를 가지게 된 히카루가 펜으로 해진을 조종하고, 해진에게 펜을 내미는 모습으로 그것이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장면에서 눈부신 핀 조명이 히카루가 잡은 펜으로 떨어지는데, 홀린 듯이 그 펜을 잡는 해진의 모습은 히카루가 있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그의 하루하루를 나타내는 것 같다.


생의 반려 후에 윤이 펜을 뺏어가는 것은, 해진에게서 히카루를 뺏어가는 것. 그래서 해진은 제발 나에게서 히카루를 뺏지 말라고 우는 것이고, 해진이 윤에게 펜을 돌려받았을 때 문 뒤에 있던 히카루가 해진이 있는 쪽으로 넘어온다. 히카루가 다시 해진에게 왔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거울에서 세훈이 펜으로 자신의 손을 찌르고, 그 행위로 세훈이 자신을 죽였다는 걸 안 히카루는 세훈에게서 펜을 가져간다.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 펜을 들고 가는 히카루도 있고, 소정화 배우는 오늘 걸어가며 펜을 떨어트렸는데, 히카루조차도 자기 자신을 버린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너무 큰 죄책감으로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사랑하거나 감싸주지 못하고, 버려야겠다는 의미로 펜을 떨어트리고 들어가는 것 같다.


마지막 해진의 편지에서 해진이 세훈에게 펜을 건네주는데, 그건 히카루를 세훈에게 다시 돌려준다는 의미, 히카루를 버리지 말라는 의미, 그리고 글을 다시 써달라는 의미. 같은 맥락으로 마지막에 해진이 송사를 읽는 세훈에게 히카루를 보내주는데, 그것 역시 펜을 다시 가지게 된 세훈의 안에서 히카루가 다시 살아나는 것. 그래서 해진의 뮤즈를 다시 품게 된 세훈이가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는 뜻 같았다.



편지의 주인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 속에서, 해진은 극의 초반부터 이렇게 말한다. '편지의 주인이 누구라도 상관없다.' 해진이 세훈의 고백을 듣고서 현실을 부정하고 화를 내며 돌아섰지만, 결국은 세훈에게 돌아온다는 복선으로 느껴진다. 해진이 사랑한 것은 히카루가 아니라, 글 그 자체였으니.


팬레터를 볼 때마다, 나도 저런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도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공연장을 좋아했지만, 결국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그와 관련이 없는 것이다. 언젠가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저런 열정이 나에게 생겨날 수 있을까, 하는 씁쓸한 마음에 이 작품을 보고 나오면 만감이 교차한다.


그래서 나도 이제 조금씩 시작해보려 한다. 업으로 삼기는 어렵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으려고. 이렇게 지내다가 뮤지컬 팬레터의 사연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때는 이 씁쓸한 마음이 덜 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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