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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LOG Nov 01. 2020

크로아티아 자동차 여행 (3) : 스플리트, 흐바르

10월 4일 저녁 프리모슈텐 - 스플리트 이동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리스트를 연속으로 틀어놓고, 다시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다음 여정은 스플리트였다. 5시 반쯤 되어서야 우리는 스플리트에 도착했다. 에어비앤비 집주인에게 키를 받아 숙소에 들어갔다. 저녁이 되니 문제는 또 이어졌다. 다시 으슬으슬 춥고 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니 여행 이야기가 아픈 이야기밖에 없는 것 같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아픔을 호소하며 또 그와 저녁을 함께 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그런 그는 또 아픈 나를 위해. 집 앞 근처 마트와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왔다. 

나는 밤 11시쯤 되어 다시 일어났다. 5시간을 그새 잔 것이다. 내 옆에는 곤히 잠든 그가 있었다. 나의 인기척에 그도 금세 깨어났다. 그리곤, 내가 잠든 사이 사온 간단한 요깃거리를 꺼내왔다. 그래도 다행히 한결 자고 나니 몸이 많이 나아진 듯했다. 계속 밤마다 아프기만 하니,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컸다. 여행이 계속되도록 저녁만 되면 아픔을 호소하는 나로 인해, 계획했던 여행이 되지 못했을까 봐-


그다음 날도 같은 아픔을 호소하면 한국에 일찍 돌아가거나, 병원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아직 우리의 여행이 반도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약만 먹다가는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어, 괜히 무서웠다. 작은 조언이라도 얻고자, 우리가 둘 다 아는 의사 선생님께 늦은 시간에 전화를 드렸다. 한국은 이제 막 아침이었다. 오빠는 내 상황을 설명하며 조언을 구했다. 선생님은 친절하게 조언을 주었고, 오히려 걱정이 많은 나를 위로하고자, 웃긴 이야기를 수화기 너머 전했다. 아주 친절하신 우리 선생님이다. 한국 가면 오빠랑 같이 방문하겠다고 웃으며 전화를 끊고 다시 잠이 들었다.


10월 5일 스플리트 - 흐바르 - 스플리트 일정

아침이 되었다. 일어나자마자 같이 마트로 향했다. 쌀을 너무 먹고 싶었던지라 쌀과 함께 고기를 샀다. 이때였다. 갑자기 복통이 심하게 오기 시작했다. 가장 아팠던 날이다. 그는 먼저 집에 들어가 있으라며 나를 집에 데려다주더니, 혼자 밖에 나가 스플리트의 약국을 다 뒤지기 시작했다. 어제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던 약을 구해선, 얼른 집으로 달려왔다. 나는 약을 먹고 다시 누웠다. 1시간 반 정도 잠이 들었을까? 약효가 올라온 건지 다시 아픔이 많이 가라앉았다. 옆에서 내내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었던 그의 덕도 컸을 것이다. 

이 날은 일정을 늦게 시작하더라도 우선 오전은 푹 쉬기로 했다. 그와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12시가 되어서야 점심을 차렸다. 냄비에 쌀을 불려 냄비밥을 만들었고, 모처럼 고기도 구웠다. 배가 많이 고팠던 지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2시가 넘어서야 천천히 스플리트 시내로 나왔다. 가장 먼저 우리가 들린 곳은 스플리트의 올드타운이었다. 크로아티아는 돌아보면 주로 오래된 것들 투성이인 나라였다. 어느 도시에 가든 항상 올드타운이 있었고 100년은 훨씬 넘어 보이는 건물들에는 제각각의 간판들이 붙어있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오래된 것은 주로 투박하기 마련이다. 자그레브에서 마주한 숙소의 문이 그랬듯, 삐걱대는 문이 불편하다거나, 낡은 현지 식당의 좁은 테이블 간격으로 여유롭게 음식을 즐기기 어렵다 건가.  첫날, 자그레브 숙소에서는 한 번 문을 따는 대만 한참을 끙끙 대었다. 구식 엘리베이터도 없어 캐리어를 낑낑 들고선,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보니 그런 오래된 건물들은 그 나름의 고즈넉함이 있는 듯하다. 허세 대신에 정성이 있다고나 할까? 자다르에서도 그랬듯, 그 오래된 건물 골목골목마다 동네 음악가들이 재즈를 연주했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은 한 마음으로 리듬을 타며, 박수를 남기곤 했다. 그렇게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며, 종종 여행지에서 마주한 투박함에서 풍겨지는 세월의 깊이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래된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일상에 젖는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간식으로 올드타운에서 타코를 먹었다. 그와 함께 먹는 세계 음식 투어! 이미 늦은 오후였지만, 흐바르를 정말 가고 싶었던 우리는 어렵게 페리 티켓을 구했다. 갈지 말지 오래 고민했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안 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자다르에 이어 2번째로 아름다운 석양을 봤던 날이기에-

스플리트에서 흐바르까지는 페리를 타고 이동했다. 페리를 타고 흐바르로 향하는 길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아직도 그 햇살을 잊지 못한다. 페리에서 내려 흐바르까지는 동행을 구해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볼 때까지 성곽 벤치에 누워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그 아름다운 석양이 눈 앞에 들어왔다. 세상에 누가 크로아티아 하늘에 불장난이라도 피운 건지- 노을의 그 붉은 출렁임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태양의 울부짖음일까 넘실거리는 하늘이 사랑에 빠진 걸까. 오래오래 담아두기 위해 많은 사진을 남겼다.

밤이 되니 흐바르의 하늘은 더 짙어져만 갔다. 우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흐바르의 시내로 내려왔다. 라벤더로 유명한 흐바르섬- 그래서 봄에 이곳에 오면 그 라벤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시기상, 우리는 라벤더를 보진 못했지만, 라벤더 향이 가득 담긴 방향제를 몇 개 구매하여 그 향을 마음에 가득 담아두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하늘을 보고 사는가. 해가 뜨고 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하늘을 바라보는가,

돌아보면, 적어도 나는 한국에서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곤 늘 여행을 가서야 하늘을 찾았다

그날의 일출과 일몰, 시간에 따라 바뀌는 저녁의 석양의 색은, 모든 걸 다 놓고 떠났을 때야 감사함을 가지고 보고 있었다는 생각-


이젠 평범한 나의 일상에서도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사람이 되자며-

반나절 이상 날아온 이곳만큼 평온한 곳이 또 있을까? 낮에 느껴지는 따뜻한 햇살, 피부에 닿는 저녁의 서늘함, 적당히 가라앉은 공기, 코끝을 스치는 청량한 나무 내음과 라벤더 향들은 내게 익숙지 않은 설렘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이 날은 흐바르에서 동네 축제가 있던 날이었다. 우리도 그 옆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스플리트로 다시 돌아오는 페리를 타기 전까지 하늘을 실컷 눈에 담기로 했다.

흐바르는 수상 스포츠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흐바르에서의 일정이 여유롭지 못해 오래 이곳에 머물진 못했지만 말이야. 우린 또 올 거야. 그땐 오래 이곳에 머물자- 그때도 신선한 바람만이 우리를 반겨주는 곳이면 좋겠다. 그지?


이 날 저녁에도 또 아픔이 찾아올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다. 이 날부터는 언제 아팠냐는 듯이 말끔히 몸이 나았다. 모두 다 그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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