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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LOG Nov 01. 2020

크로아티아 자동차 여행 (3) 마카르스카, 두브로브니크

10월 6일 스플리트 - 마카르스카 이동

스플리트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마카르스카로 이동했다. 마카르스카는 파아란 해변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한데, 이곳도 한국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보니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기에도 충분했다. 

크로아티아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된다면 마카르스카는 꼭 한번 들려보기를 추천한다. 하얀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누드비치였다. 아주 투명한 에메랄드빛 물과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근사한 해변이랄까? 누군가는 가벼운 차림으로 조깅을 즐기기도, 양지바른 곳에 나란히 누워 태닝을 즐기기도, 와인이나 맥주 한 병을 들고 낭만을 즐기기도-


사람들은 그렇게 듬성듬성 하얀 모래사장에 앉아 해변을 즐겼다- 우리도 그중 한 명이었다. 따사로운 햇살과 미풍 아래, 물이 일렁이면 그 물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도 장관 그 자체였다. 그 당시 가장 최신 폰이었던 갤럭시노트10과 아이폰 프로를 들고 떠난 여행이었다만, 제아무리 성능 좋은 카메라도 눈에 담은 그대로를 담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 나에게 한달살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이곳에서 한 달 살이를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수영복을 꺼내 해변에서 귀여운 물장난을 치고, 나는 고운 모래에 누워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를 따라 해변에 첨벙 뛰어들고 싶은 욕구가 수만 번도 넘게 들었다만, 컨디션이 완전하진 않았기에 참고 참고 또 참아, 손만 가볍게 담갔다. 그래도 찰나의 자연 냄새와 촉감이 참 좋아 고스란히 마음속에 저장해두었다. 그래도 설렜던 이 내 기분과 순간을 널리 알릴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표현할 텐데. 내가 아는 단어가 한정적이라 아름답고 행복했다는 단어 외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린 자동차를 타고 마카르스카에서 두브로브니크로 다시 이동했다. 귀에는 신나는 음악이 함께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평소 장난이 많은 나는 그의 옆에 앉아 시시콜콜, 해맑은 소리들을 하기 바빴다. 그는 영국에서 초등학생들 9명을 인솔하고 다녀왔던 때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저께까지 내내 아팠던 내가, 언제 아팠냐는 듯, 수다쟁이처럼 떠들기 바쁜 시간이었다. 모든 여행지마다 우리를 기준으로 전방 1m는 항상 우리의 웃음소리로 꽉 채워졌음이 분명하다.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에는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의 국경을 지나야 한다. 국경을 지나고 나면 보수석 쪽으로 아리아 이해 연안이 쭉 펼쳐진다. 햇빛에 비춰 일렁이는 그 해변을 보고 있자니 이게 바로 행복인가 싶다. 그는 아직도 그 해변을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10월 6일 오후 마카르스카 - 두브로브니크 이동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에어비앤비 숙소에 짐을 풀고, 자동차를 반납하러 갔다. 두브로브니크가 우리의 크로아티아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두브로브니크의 중심지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걸어서 방문한 곳은 한식당이었다. 딩동, 그런데 이 식당이 일요일에는 5시 영업 마감이라니.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5시 40분이었다.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터라, 우리는 당장이라도 먹을 것이 필요했다. 우선 간단한 요깃거리와 함께 한 한인민박에 찾아갔다. 이 곳에서 김치볶음밥을 먹을 수 있다는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이었다.  김치볶음밥 먹을 생각에 계단을 껑충껑충 뛰어올라, 케이블카 초입부에 도착!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똑똑 문을 두드렸는데 아니 이럴 수가! 이 한인민박에서 라이센스가 정지되어, 한인 음식을 판매할 수 없다고. 당분간 조식도 한식이 아닌 시리얼로 제공된다고 한다. 부탁드려 남은 신라면과 볶음김치를 사 와서 끓여 먹었다. 여기서도 맛있는 음식을 그토록 많이 먹었건만, 역시 가장 그리운 음식은 한국의 라면이었다. 두브로브니크의 올드타운을 산책 삼아 돌아보고 마트에서 간단한 주전부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해 질 녘이 참 아름다웠다


우리의 마지막 크로아티아 여정이었던 두브로브니크 숙소는 사진처럼 굉장히 예쁜 곳이었다. 

창문 너머로 해변이 보이고, 그 강물이 유유히 흘렀으며, 저 멀리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의 구시가지 전경도 언뜻 보이는 그런 곳.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파스텔톤의 건물과 탁 트인 광장도 일부 보이는 곳이었다. 돌아오는 택시의 창문 너머 보이는 해 질 녘은 참 아름다웠다.


스플리트에 머물렀던 날까진, 아픔을 호소하며, 저녁 7시에 잠이 들어 새벽 5시에 깼던 나는, 이제 그 방에선 (아주 건강히) 해가 지는 것도 뜨는 것도 모두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바라본 풍경을 과연 어떤 미사여구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자신 없는 고백이다. 아무튼 그날은, 긴 시간 동안 운전을 했던 그와 피곤을 달래며 일찍 편안한 잠이 들었던 날이었다.


10월 7일 두브로브니크 여정
사진은 맛없어 보이지만 실제론 진짜 맛있었다 - 그리운 한식이라 그런가

두브로브니크 둘째 날의 아침은 직접 김치 삼겹살을 만들어 먹었다. 아침을 먹으며, 아침 일찍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도 꽤 재미있었다 그리고 오후 늦게 두브로브니크 시내를 둘러보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였다. 그래서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오히려 나의 기억 속에는 가장 평범했던 도시였다. 그보다 사람이 적고, 해변이 아름다운 도시들이 나는 더 좋았다.

 그 유명하다는 두브로브니크의 성곽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차브타트로 향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30분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 차브타트


워낙 예쁜 동네를 많이 본 지라, 차브타트에 대한 색다른 특별함은 없었다. 크로아티아의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평온한 햇살과 작은 해변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이었다. 


우린 하얀 비치의자에 나란히 누워 노래를 틀었다. 내가 6살 때 처음 웅변학원에서 재롱잔치 때 췄던 율동 노래, 이브의 경고부터, 싸이와 이재훈이 부른 낙원 등등, 추억의 옛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서 꺼내 들었다. 추억의 노래들이 앞으로 평생 기억에 남을 이 도시에 퍼지다니! 앞으로 이 노래들을 들을 때면, 이날 오후의 차브타트에서의 찬란한 햇살이 떠오를 것이다.


바다가 있는 곳은 여행자의 로망을 만들어주기엔 이미 충분하다.

특별한 액티비티를 하지 않아도, 그저 좋아하는 사람과 해변에 나란히 앉아 같은 노래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보니,  바다는 여행자의 신분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장소이자 로망이 아닐까? 생각과 고민이 참 많은 나도, 바다 앞에선 모두 다 해제되는 걸 보니 바다는 참 신비로운 장소임이 틀림없다. 그러다 언젠가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잠시 설렘을 가져다주는 곳이기도-


그렇게 누워있다 일어나 바다 방향으로 마을을 쭉 둘러보기로 했다. 작고 소박한 정원이 있는 집들이 아기자기 모여있었다- 소박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진한 매력을 뿜어내는 곳이었다. 가는 길에는 공동묘지도 보였다.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둘러보다 다시 동네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곤 두브로브니크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많은 이들이 스쳐갔겠지만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 이 정류장- 정해진 시간에 맞춰 사람들을 싣고 나가고 들어오는 버스들. 우리도 그중 한 사람이겠지. 아쉬움을 뒤로 한채 두브로브니크로 다시 향했다. 그리곤 시내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사랑스러운 이는 사실 우리 여행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 꼭 데려가고 싶어 예약한 곳이 있다며, 그 레스토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크로아티아의 마지막 밤에 더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며- 두브로브니크의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아쉬운 건, 이렇게 좋은 날, 와인과 함께하지 못한 것.(다들 크로아티아 가서 그렇게 와인을 많이 마시던데 말이야) 술을 거의 못 마시는 그와 반모금씩만 먹다 남기고 왔다.  이렇게 말하면 와인 매니아라도 된 줄 알겠지만 절대 아니다. 사실 와인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원체 술을 입에 댄 게 1년 반 밖에 되지 않았으니, 좋은 와인을 식별하고 심오한 맛을 표현하기까지는 당연히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준이다. 다만 대략 어떤 와인이 내 입에 맞을지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 중 내내 아픔을 호소했던 나이기에, 혹시 알코올이 들어가면 다시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다, 크로아티아에서 마지막 밤이 돼서야 한 모금 마시고 테이블에 고이 올려두었다. 고작 그 한 입 마셔놓고는, 살짝 발그레해진 우리의 두 볼. 아이구, 아마 다른 이들이 봤다면 꽤 귀여웠을 것이다

뭐야, 쟤네 겨우 와인 한 잔에 저렇게 된다고, 뭐 이렇게 비웃을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다른 이들의 여행기를 보면서, 크로아티아에서 낮에도 해변에 앉아 와인, 매 끼 식사 시에 와인, 잠들기 전 가볍게 와인 한잔을 상상했건만, 그건 이루지 못해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여행은 건강이 우선이다.

두브로브니크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사랑하는 이와 저녁을 먹고 달을 보니 한 시가 생각났다. 바로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라는 시였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그렇게 크로아티아에서의 따뜻한 밤이 흘러갔다. 쉽게 잠들기 어려워, 옆에서 곤히 잠든 그를 두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이제 우린 오전 8시 반 비행기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로 갈 것이다.


돌아보니, 크로아티아는 그런 곳이었다.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은 사랑스러우며, 낭만 지수가 급상승하는 곳- 숙소마다 걸려있던 흰 그림액자마저도 모두 그리울 것이다. 


바다의 여유도 많이 그리워지겠지. 거리에 늘어선 노천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도, 모래사장에서 아빠와 비치발리볼을 하는 꼬마들도, 술래잡기를 하는 한 연인의 모습도, 물장구치는 그를 보며 수건을 깔고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보았던 나도, 모두 다- 동적이거나 정적이거나, 그 순간의 일렁이는 바다의 모습이 어쨌든, 우리가 만난 해변은 자유 그 자체였다


잠깐 쉬어가는 시간은 필요한 듯하여, 손글씨로 적고 무질서하게 흩어놓았던 여행 중의 기록들을 한껏 모아 정리해본다. 터키에서의 기록은 다음 편에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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