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이번 여행은 어디로 갈까?"
둘 다 많이 지친 상태였다. 피곤과 함께 보낸 일상 속에서 잠깐 도피가 필요했다. 그래서 휴가를 다녀오기로 결정했고, 휴가 여행지를 정하는 과정 중, 교환학생 생활 중 가장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크로아티아가 생각이 났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면 더 아름답다는 그 여행지를, 그와 함께 꼭 가보고 싶었다. 더불어, 어렵게 마련된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터키도 짧게나마 보고 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의 휴가가 계획되었다. 크로아티아 자동차 여행 - 그리고 터키 여행이 말이다.
크로아티아 자동차 여행 코스는 다음과 같았다.
자그레브 (Zagreb) - 플리트비체 (Plitvice) - 자다르 (Zadar) - 프리모슈텐 (Primosten) - 스플리트 (Split) - 흐바르 (Hvar) - 마카르스카 (Makarska) - 두브로브니크 (Dubrovnik) - 챠브타트 Cavtat
그리고 터키로 이동하여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를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정말 최고의 여행이었다. 그 어느 도시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었던 -
10월 2일 오전 9시 35분, 인천 국제공항
인천에서 독일 뮌헨으로 가는 첫 번째 비행기를 탔다. 처음 타보는 루프트한자행 비행이었다. 긴 비행을 떠나기 3일 전, 마라톤을 했던지라 심신이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 피곤함과 동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아픔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자다가 일어나 보니 기내식을 먹을 시간이었다. 기내식을 먹으며 나는 업이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줄거리가 참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언제나 그렇듯- 그리고 꿈도 생겼다. 언젠간 업에 나오는 베네수엘라에 있는 파라다이스 폭포에 가고 싶다는.
더불어 여러 생각이 들더라. 낡고 새것의 문제를 넘어 한 공간에 대해 갖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생각. 누군가에게 업에 나오는 칼 할아버지의 집이, 2배 이상의 가격으로 보상해주면 가질 수 있는 낡은 집으로 보였겠지만, 칼 할아버지에게 그 집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오랜 흔적을 입은 공간 그 이상이라는 것-
돌아보니 그와 나의 유럽 여행도 그랬다. 우리의 여행이 특별했던 이유는 화려한 건물과 유명한 관광지보다도, 그와 내가 함께 보낸 겹겹의 시간들 덕분 일터이니, 잊지 못할 추억으로 그렇게 내내 어여쁘게 남길 바란다. 음식이 예상 밖의 맛이어도, 날씨가 좋지 않아도, 또는 길을 잘못 들어 오래 걸려도, 우연과 실수마저 사랑스럽던 여행이었으니 우리 함께 그 모든 뜻깊은 시간들을 우리의 삶에 짙게 남겨두자며-
10월 2일 오후 5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도착
따뜻한 햇살이 서편으로 뉘엿뉘엿 떨어질 때쯤 크로아티아에 도착해있었다. 우리의 첫 도시는 자그레브였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바로 에어비앤비 자그레브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환전을 하기 위해 6시 반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시내로 나왔다. 환전을 먼저 한 후, 그가 찾아둔 현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맛있는 저녁이었지만 한식을 아주 사랑하는 나에게는 다소 아쉬운 저녁이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돈 후, 천천히 숙소로 걸어갔다. 그때부터였다. 으슬으슬 춥고,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으며 열도 나기 시작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바로 잠이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내가 자고 있는 사이, 급하게 마트에 가서 약과 함께 물을 사 가지고 왔다. 그가 숙소에 도착하자, 나는 중간에 일어나 약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10월 3일, 자그레브 - 플리츠비체 이동
전날 밤보다는 한결 나아진 몸을 일으켜, 아침 8시에 모든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전날 일찍 잠들어 둘러보지 못한 자그레브 시내를 돌았다. 간단히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해결했고, 택시를 타고 자동차를 렌트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의 첫 운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운전면허증은 있었지만 운전을 거의 해보지 않았던 터라, 이번 여행만을 위해 여행 전, 30시간 동안 운전연습을 하고 온 그였다. 운전을 험하게 하는 크로아티아 자동차들 사이에서, 그는 최선을 다해 운전했다. 그 모습이 참 어여뻤다.
그렇게 우리는 플리츠비체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가장 기대했던 곳이었기에, 이곳의 에메랄드 색의 일렁이는 물을 볼 생각에 한껏 벅차 있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다시 몸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추운 날씨도 아니었건만, 나는 계속해서 한기를 느끼며 추워했다. 10월 유럽의 날씨를 따뜻한 봄 날씨 정도로 생각했던 터라, 두꺼운 옷이 없던 우리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여섯 겹의 옷을 껴입고 플리츠비체 국립공원에 내렸다.
입장하기 전, 매표소 앞에 있는 식당에서 버거와 소시지를 주문했다. 국립공원에 있는 유일한 식당이었던지라, 모든 관광객들은 그곳으로 몰렸다. 긴 줄을 뚫고 40분 만에 음식을 주문하였고 우리는 독일에서 온 한 노부부와 함께 자리하여, 식사를 하였다. 독일에서부터 자동차 여행을 시작한 부부의 이야기는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라도 듣는 듯, 신기하고 또 아름다웠다. 40년 후 우리도 저렇게 손을 잡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자동차 일주를 다니자며, 기분 좋은 미소를 공유했다.
날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플리츠비체 국립공원은, 사진에서 보던 만큼의 감동은 아니었다. 몸도 아팠던지라 아름다운 광경을 봐도 쉽게 눈에 들어오진 않더라. 그저 추위에 얼른 다시 차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 오후 4시, 우리는 플리츠비체 국립공원에서 나와 다음 여행지로 향했다. 자다르였다. 내가 사랑한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