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타랑게리 사파리 투어
고산 적응기 하루를 아껴, 예정보다 일찍 내려온 덕분에, 우리는 그토록 간절했던 사파리 투어를 할 수 있었다. 호주에서도 싱가포르에서도 사파리 투어를 했다만, 이건 정말 차원이 다르다. 내 눈 앞에 바로 서있는 동물들을 보니, 윈도 배경화면이 현실화되어 지나가는 듯했다.
우리는 홍콩 출신의 호주 간호사와, 네덜란드에서 영어교사를 하는 할아버지와 두 아르헨티나 커플과 함께, 지프 카를 타고 타렝기레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실로 놀라웠는데, 이토록 멋진 이들과 함께 이 놀라운 광경을 본다는 사실에 가슴 벅차오른 하루였다. 넓은 세상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이들처럼 갇혀 있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느꼈다.
그곳에서 우리는 코끼리도, 사자도, 원숭이도, 기린도- 아주 많은 동물들을 보았다. 우리 앞에 있던 지프 카에서는 유럽에서 온 귀여운 꼬마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외치며, 이 자연을 맘껏 누렸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나 역시 동물원의 피곤한 동물들의 모습이 아닌, 이토록 살아있는 자연을, 어렸을 때 보았더라면 어떤 세상을 품으며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
우리는, 먼 미래에 아이들에게 어린 나이에 이런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들을 보여주자며, 속삭였다.
하염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생각이 많아져버렸다.
얽히고 얽힌 구름 조각을 보면서 관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이 떠올랐다. 온전히 나를 위해 살아가고 싶어도, 수많은 이해관계를 헤아리며 살아야 하는 우리-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광경 속에 숨을 쉬고 있음에 늘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는 내가 밉기도 했다.
그런 막연한 생각이 들 때쯤, 검붉어진 얼굴이 더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곧 얼굴이 2배로 팽창되었다. 마치 근육이 마비가 되기라도 한 듯,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입을 벌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코에서는 허물이 벗겨지면서, 노란 진물도 함께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에, 사파리 지프 카 안은, 다들 비상이었다.
다행히 호주에서 온 간호사 분이 간단한 응급처치를 도와주셔서 급한 상황은 해결할 수 있었다. 7살 때, 가족들과 해수욕장에 다녀와 피부가 심하게 타 피부가 벗겨진 적은 있었으나, 이때처럼 얼굴이 팽창한 적은 없었다. 처음 보는 내 모습이 너무 무섭고 아파서, 그의 품 안에서 펑펑을 울다, 마지막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 걱정 먼저 해주는 그가 참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