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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LOG Nov 01. 2020

크리스마스, 5895m 정상에 오르다

12/25 수요일 크리스마스,
5895m 킬리만자로 정상을 위치다
그 날의 아름다운 새벽 하늘

그러나 그날 아침, 그는 아픈 몸을 이겨내고 일어났다. 끝까지 정상에 오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언제든 힘들면 내려올 수 있으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새벽 6시 반, 우리는 정상을 향한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다. 비록 다른 이들보다 7시간 늦게 출발했지만 우리의 우리 pace대로 도전을 이어나갔다. 다만 음식을 먹으면 더 고산병이 심해질까 봐 빈 속으로 산행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분주하게 준비해서 나가느라 우리는 선크림을 얼굴에 바르는 것도 깜빡했다. 아주 큰 실수였다.


 4700m부터 시작된 여정- 이미 시작점부터 높은 지대였기에 우리는 오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고산병 증세가 나타났다. 머리가 아팠고 소화도 잘 안되며, 피가 머리로 쏠려왔다. 살면서 1000m의 산도 오른 적이 없던 사람이 6000m를 오르려니 그럴 수밖에-

5600m 부근부터는 만년설이 이어졌으며 눈보라가 계속되었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4200m부터 식물 하나 보이지 않았으니 얼마나 산소가 부족한 곳인지 느껴질 것이다. 더군다나 마지막 날은 눈보라가 꽤 일었다. 아무리 숨을 쉬어도 더 이상 숨 쉬는 것 같지 않았다. 5초마다 한 번씩 숨을 내뱉는 연습을 했다. 오로지 우리는 숨을 쉬고 고도를 적응하는 데에만 온 힘을 다하기로 했다. 그저 내 두 발은 기계처럼 저절로 걷게 할 뿐-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감사한 일이라니,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감사함이었다.


‘포기할까? 이제 그만 내려갈까? 이 상태로 더 오르다 가는 진짜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아.’

살면서 가장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포기를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몇 번을 이제 그만 내려가겠다며 이를 악물고 울었지만, 또 그 울부짖음 뒤에는 강하게 내려가지 못하고 꿋꿋이 올라가는 내 두 다리가 있었다. 가이드는 이제 곧 도착할 거라며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위로했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무서움이 눈 앞을 가려, 그렇게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점차 빙하가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자. 정상 올라가면 우리 같이 울자.
너무 수고했으니깐, 정상에 가면 마음껏 울자."

약해지려는 순간마다, 그가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위로해주었다. 어제 그렇게 아프던 그는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든든하게,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첫 정상 포인트인 5685m Giliman's Point에 도착하다.


그렇게 우리는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쓰러져서 펑펑 울었다. 세상이 떠나가듯 꺼이꺼이 울었다. 그도 그랬다. 내 옆에 누워 닭똥 같은 눈물을 닦아주며 함께 눈물을 흘려주는 이였다. 전 날, 그렇게 아팠음에도 내가 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묵묵히 함께 이 길을 가주어, 우리의 도전을 완성시킨 이였다.

(좌) 꺼이꺼이 우는 모습이다. 정말 서럽게도 울었다. (우) 마지막에 자랑스러운 이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나는 당신이 없었다면 이 꿈을 절대로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 옆에서 묵묵히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는, 높은 정상 위에서 산소가 되어 준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그 높은 킬리만자로의 정상에서 마지막 함박웃음을 짓지 못했을 것이다.


가이드는 누워서 서로 안고 펑펑 우는 우리의 모습을 6분의 영상으로 남겨주었다. 그 영상에서 가이드가 탄자니아어로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데, 나중에서야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True love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우리의 극한 여정이 우리의 진심을 증명하는 듯했다.

12월 26일
하산 및 가이드와의 마지막 인사
마지막 정상에 오르던 날, 선크림 바르는 것을 깜빡했더니 얼굴에 일광화상을 입었다.

6일을 예상한 트래킹은, 우리의 간절하고도 애틋한 노력 끝에 예상보다 더 일찍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려오니 온 몸이 말끔히 나았다. 전 날,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산행을 하여 얼굴이 심한 일광화상을 입은 것 빼고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 화상이 얼마나 심한지는 깨닫지 못했다. 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킬리만자로 트래킹 증명서를 받았다. 보기만 해도 벅차오르는 증명서이다.

우리와 함께해준 따뜻한 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연휴에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2일의 휴가를 선물로 주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시간을 내주어 탄자니아 도심 곳곳을 소개해준 이들이었다. 이들과 오후를 함께 보낸 후,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늦은 저녁, 우리는 탄자니아의 Arusha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Arusha 지역으로 넘어와 바나나 농장에서 현지 홈스테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바나나와 커피 농장에서의 홈스테이라니, 예상했던 대로 신이 났다. 모든 조식과 간식은 바나나로 이루어져 있다. 살면서 언제 또 이만큼 바나나를 많이 먹을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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