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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LOG Nov 01. 2020

고산병과 함께한 6일간의 여정

12/22 일요일
킬리만자로 산행 ( 2720m Mandara Hut)
갈수록 참 많이 닮아가는 우리다.

드디어 산행 첫날이다. 아침 8시 반, 우리는 우리의 산행을 함께할 가이드와 포터와 요리사를 만났다. 장비 대여 전문점에 가서 폴대와 침낭을 빌리고, 킬리만자로 마랑구 게이트로 이동했다. 약 1시간이 걸렸다.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 그런지, 킬리만자로 등산을 위한 리셉션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리셉션에 우리 정보를 등록하고 보니, 내가 한국인 여자 최연소로 킬리만자로 트래킹을 신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킬리만자로산 정상에 성공적으로 오른다면, 기분 좋은 타이틀을 얻고 25살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첫날부터 의지가 대단했다.

가이드가 챙겨주는 런치박스를 가볍게 먹고 산행을 준비했다.

비가 올 때를 대비하여 판초는 꼭 챙겨야한다.
가이드가 남겨준 첫날의 우리 모습

산행 첫날부터 비가 많이 내려 우리는 판초를 입고 등산을 시작했다. 산행을 시작한 이후로는 휴대폰이 터지지 않아 가끔 사진을 찍을 때 외에는 가방에 넣어두었다. 지금부터 써 내려가는 나의 일기는 산행을 마치고, 자기 직전에 침낭에서 남긴 메모들을 옮겨 적은 기록이다. 사실상이 기록들은, 그 날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의 나열에 가깝다. 우리의 여정을 전체적으로 담은 영상도 글 하단에 같이 담아보았다.


12월 22일 밤
사진과 같은 산장에서 침낭안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첫날 산행은 2720m까지 진행되었다. 5시쯤 도착한 우리는 Mandara Hut이라는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은 4인실로, 네 개의 매트리스가 준비되어 있었으나 이 날은 여유롭게 둘이서만 이 Hut를 이용할 수 있었다.

화장을 할 수 없어 민낯으로 산행이 진행되었다 (앗)

그 날 저녁 우리 두 사람에게 허락된 물은 보이는 사진이 전부였다. 간단한 세수와 양치 외에는 머리를 감을 수도, 샤워를 할 수도 없었다. 산행 중 화장을 하는 것이 무리란 걸 미리 파악했던 나는 기초화장품과 선크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챙기지 않았다.


산장에 도착하면 매일 이렇게 간단한 비스킷이 간식으로 제공되었다.

준비된 저녁을 먹고 바로 잠이 들어서 그런지, 새벽 4시 반이 되어 깼다. 오빠 손을 잡고 산장을 나왔다. 그리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늘을 보았다. 하늘을 빼곡히 수놓은 별들이었다. 아이폰 11프로를 가지고, 열심히 하늘을 담아보려 했으나 먼지처럼 찍힌 사진에 토라지고 말았다. 대신 두 눈 가득 별을 담기로 했다.

아이폰 11프로로 담은 별 (눈에 보이는 만큼 담지 못해 아쉬울 따름)

사랑하는 이와 별을 같이 본다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수많은 별들 사이 우리는 손을 잡고 나란히 산장 주변을 걸었다. 새벽 4시 50분, 모두가 잠든 사이- 지금 이 세상에 남은 건 우리 둘과 초승달, 그리고 무수히 많은 별들이었다. 적재의 별 따러 가자 노래를 틀고, 우린 하늘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함께 볼 수 있음에 감사한 날이다.


12월 23일 월요일
킬리만자로 산행 (3720M Horombo Hut)
아침, 산장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일출
1. 세상에 많은 감사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걸을 수 있는 감사함

이 아름다움을 눈으로 마음껏 담을 수 있는 감사함

숨을 쉴 수 있는 감사함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감사함

누울 자리가 있다는 감사함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함께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감사함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절대 당연할 수 없는 감사한 순간들

둘째 날까지는 가볍게 반팔을 입고 산행이 진행되었다.
2. Hello How are you?
I’m good. Because I see you.

산행 도중에 늘 짧지만 따뜻한 영어로 반겨준 이들이 있다. 매일 긴 산행 시간이 반복되는 동안, 우리는 그들로부터 간단한 탄자니아어를 배우기도,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함께 캐롤을 부르기도 했다. 매일 달라지는 새로운 자연에 감탄하는 우리에게, 높은 고산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들을 소개해주며, 자연과의 사진을 남겨주기도 했다.

3. 왜 산에 오르나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르는 것이지요.

우리는 산장에서 매번 새로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네팔에서 하이킹 여행사를 운영하는 대표님을 만나기도, 매번 새로운 세계여행을 준비하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값진 인연이었다.

둘째 날도 무사히 산행이 진행되었다.
12/24 화요일
킬리만자로 산행 (4720m Kibo Hut)
4200m 지점부터는 식물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12월 24일 밤

꾸역꾸역 우린 4720m까지 올라왔다. 사실은 고산 적응기 하루를 가지고 산에 오르는 것을 계획했지만, 자신감이 넘쳤던 우리는 고산 적응기 없이 바로 정상에 올라도 괜찮을 것 같다고 결정을 내렸다. 고산병에 대해 잘 몰랐던 우리의 아쉬운 선택이었다.

Kibo 산장 리셉션에 등록하는 모습이다.
그 날 저녁, 그가 아프다. 많이 아프다.

고산병과 편두통이 함께 와서 그런지 둘째 날부터 먹기만 하면 토해냈다.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어려워 복통도 함께 있는 듯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옆에서 거친 숨소리로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한 채 어렵게 잠이 든 그를 보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그의 매트리스에 살짝 걸터앉아 그의 손을 잡아주는 것 밖에는. 인터넷도 터지지 않아, 그 어떤 해결책도 검색해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이 무너질 듯 아팠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는 괴로움에 그를 보면 눈물이 먼저, 나를 찾았다. 아마 지난 유럽 여행 때 10일 내내 아파하는 나를 보듬어주고 간호해준 그의 마음이 지금 내 마음과 같지 않았나 싶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의 등을 두들겨주고, 물과 휴지를 주고 약을 까내주는 것 밖엔, 나는 아무것도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약 먹을래?

이 말을 꺼내는 것조차- 이제는 두 사람 모두에게 부담이 되었다. 약으로도 통하지 않는 아픔이란 걸 나는 이미, 너무 잘 알기에- 그 말을 구태여 꺼낼 때마다 미안함이 더 앞을 가렸다


이제 좀 어때요?

나는 잦은 간격으로 그에게 물어보지만, 그의 ‘조금 아프다’는 말을 나는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었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조금이, 사실은 아주 아플 수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기에,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떨어지는 눈물이 그의 손등까지는 흐르지 않도록 막는 일에만 집중했다.


처음 오르는 높은 산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힘들다는 말로 모든 감정을 이내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단순히 정신적으로 힘든 문제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육체적 고통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두통과 복통, 그리고 몰려드는 피곤함을 표현할 틈새도, 표현할 의지도 없었다. 밤새 그의 옆에서 그를 한 번 더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일만이 내가 나의 아픔을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는 아가처럼 곤히 잠들었다가도 한 시간이 안되어 다시 거친 숨소리로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딱 하루만 더 올라가면 5895m,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정상이었지만, 4760m의 산장에서 그는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예정대로라면 마지막 산행은 이 날 밤 11시에 출발하여 6시간 후 크리스마스 새벽에, 정상에서 일출을 보는 일정이었다. 그에게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를 선물해주고 싶어서 잡은 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과한 욕심이었다.


마지막 산행을 위해,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밤 10시부터 산장은 분주한 소리로 가득했다.

오직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아픈 이들만을 제외한 채. 고산병을 포함해 여러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만 산장에 남고 모두들 -20도의 마지막 산행을 위해 온 몸을 꽁꽁 싸매기 바빴다.

아픈 이들만 님은 이곳은 마치 중환자실 같았다. 우리도 그 들 중 한 명이었다. 혹여나 그런 분위기마저 그를 더 힘들게 할까 봐 그의 눈과 귀를 가린 채 가만히 안아주기를 반복했다.

아픈 이를 홀로 둔 채, 같이 일정을 시작한 부부도, 그룹들도 환자는 남겨두고 산장을 떠났다.


그도 내게 혼자라도 무사히 정상에 다녀오라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꾹 참았던 눈물이 터지며 내 얼굴을 타고 그의 귓가로 들어가던 순간이었다.

사실은 그도 알 것이다. 내 목표가 '그저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르는 일'만은 아니라는 걸. 내 옆에 있는 이와 건강하게 무사히 정상에 오르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는 걸. 그러니 나는 그보다 조금 몸이 더 괜찮다는 이유로 혼자 갈 수 없었다. 아니, 가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포기가 아름답다는 걸 안다. 우리는 열심히 걷고 걷고 걸어, 살면서 처음으로 4000m가 넘는, 4760m의 Kibo 산장까지 왔다. 이건 대단한 일이다. 충분히 잘한 일이다. 내 옆에서 아픔을 잘 견뎌준 사랑하는 이의 모습만으로도 나는 정상에 오르는 그 이상의 행복을 이미 느꼈다.


우린 아직 젊고, 앞으로도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제대로 준비하여, 그때 또다시 손을 잡고 산에 오르면 된다. 살면서 가장 풍성한 마음을 가졌던 4일이었다. 가장 많은 칭찬을 누군가에게 해준 시간이기도 했다. 자랑스럽다고, 고맙다고, 너무 잘하고 있다고. 힘들면 참지 말라고, 아픈 건 당연하다고.



곧 새벽 4시 반이다. 아침이 밝으면 우리는 어제 출발했던 3760m의 산장까지 내려가 앰뷸런스를 타고 처음 시작했던 게이트로 이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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