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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LOG Dec 05. 2021

[일기] 짙은 날, 싱가포르에서 홀로 걷다

어느 밤, 싱가포르에서 홀로 걷다 썼던 일기

2020년 12월 3일

오랜만에 걷는 밤이었다.

익숙지 않은 상황의 무게와 내면에 쌓인 여러 생각들이 독백으로 남아 그 색은 더 깊게 짙어졌다.

저기 마리나베이의 밝게 빛나는 조명 사이로 애처롭게도 생명력을 잃은 어느 무언가가 짙게 남겨져있었다.

축축이 젖어버린 마음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쉬이 알 수도 없이 방황하기 바빴다.

부지런히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쇳덩이가 들어가 모든 게 정지되어버린 것 같은.

애석하게도 예견되지 않았던 시작과 명확하지 않은 결과였다.


마음을 어렵게 하는 두터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들썩이는 어깨, 가파른 숨을 잠시 멈추고 붉어진 눈시울에 집중해본다.

점철된 기억들 사이로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마음이 불현듯 느껴졌다.


마리나베이샌즈 건물 앞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았다.

얽혀있는 단어들 사이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무언가의 의미를 다시 헤아려본다.



어디 널브러진 달력의 다음장으로 넘기고 나니, 어느덧 12월이다.

시간이 이토록이나 모질게 흘러감에 가벼운 한탄을 해본다.

싱그러운 나날이 곧 올터이니, 마음 서린 잔가지에 속상해하지 말고,

허물없는 차분한 미소로 우리네 하루를 마무리해보자고.

다채로운 행복은 바람처럼 아무 말 없이 다가와 순풍이 될 터이니.

어렵게 닫힌 마음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본다.


나는 꽤 많은 시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계속해서 나를 들여다보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즐거운 마음, 곪은 마음 모두 뒤집어서 온 방향을 살펴본다 생각했는데도, 매번 어렵다.

내가 참 좋아한 포트캐닝 공원

포트캐닝 공원에서 보았던, 어느 담벼락에서 어렵게 피어난 작고 소중한 들꽃처럼, 자연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더욱 애틋하게 아껴주어야겠다. 너는 아직 미완성이라고, 위태로운 일상의 연속이겠지만 그 굴곡이 오늘의 서툰 부분을 내일의 성장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그래도 오늘은 조금 슬픈 날이다. 마음껏 울상을 짓고 싶다.

사사로운 욕심 없이, 오롯이 그랬구나- 누군가의 한마디면 존재만으로도 큰 안온을 줄텐데


고요한 새벽 1시이다. 

척박한 새벽을 지새우다 천장을 바라보며 반복해서 눈만 끔뻑이다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노래를 들어야겠다.

오늘의 노래는 Sarah McLachlan - Ange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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