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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에서 알아보는 스승의 최고의 명예

영화 <승부> 감상문

by 오윤

스승에게 최고의 명예는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우리는 여러 매체에서 심심찮게 들어왔다. 여기 또 하나의 스승과 제자의 맞대결을 소재로 한 영화가 있다. 바둑황제 ‘조훈현’ 9단과 계산의 신이라는 ‘이창호’ 9단의 사제지간 맞대결을 다룬 영화 <승부>다. 과연 이 사제 간의 이야기에서도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 것이 스승의 최고 기쁨이었을까?

청출어람

푸른색은 쪽에서 나지만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를 비유할 때 쓰인다. 이는 스승에게 주어질 수 있는 최고의 명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가르쳐 본 입장에서, 제자가 나를 뛰어넘는 순간이 꼭 마냥 유쾌할 것 같지만은 않다. 사람은 자신이 필요한 자리에서 자부심을 얻고 존재 의의를 느낀다. 스승이란, 제자보다 더 나은 실력과 식견을 바탕으로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 순간, 나는 스스로를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처럼 느끼게 될 것 같다.


영화 <승부>의 스승 ‘조훈현(이병헌)’은 제자 ‘이창호(유아인)’와의 대국에서 패한 뒤 여러 감정을 겪는다. 그러나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는다. 스승은 실력뿐 아니라 모범을 보여야 하는 존재이기에, ‘조훈현’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두려움을 느낀다. 한 사람의 바둑기사로서 젊은 제자에게 밀렸다는 사실, 그리고 도무지 공략할 수 없는 상대가 되어버린 제자. 그 감정은 스승이 아닌, 바둑기사 ‘조훈현’에게 깊은 시련을 준다.


반대로, 제자 ‘이창호’ 역시도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한다.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아온 스승을 배려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승부’에서의 희비가 아닌, 그 이면에 자리한 복합적이고 미묘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것이 바로 관객으로 하여금 이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자신이 키운 제자 이창호(유아인)와 맞붙게된 조훈현(이병헌)

스승이 성장하는 이야기

결국 <승부>는 ‘조훈현’이라는 바둑기사가 스승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바둑기사로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다. 영화 초반, ‘조훈현’은 공격적인 바둑의 대가답게 제자 ‘이창호’에게도 강하고 빠른 수를 두기를 강요한다. ‘이창호’가 자신만의 바둑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스승과는 다른 느리고 수비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려 할 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다그친다.


비록 후에는 제자의 스타일을 어느 정도 수용하지만, 그는 끝내 ‘이창호’의 잠재력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제자에게 패배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스승으로서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한다.

제자에게 패배한 조훈현

한편, 바둑기사 ‘조훈현’ 역시 완벽한 인물은 아니었다. 너무 일찍 정점에 오른 그는 더 이상 적수를 찾지 못했고, 자신만의 바둑만이 정답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자신에게 패한 기사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고, 나아가 자신의 제자가 펼치려는 새로운 바둑의 가능성도 알아보지 못했다.


조훈현’은 비로소 ‘패자’의 자리에 서서야 깨닫는다. “바둑에는 정답이 없다”, 그리고 “승부 앞에서는 스승도, 제자도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승부>에서 청출어람의 제자인 ‘이창호’가 아닌, 스승 ‘조훈현’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 제자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스승 역시 사람이기에, 언제든 다시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스승과 제자에서 결국 최고의 라이벌이 된 조훈현(왼쪽)과 이창호(오른쪽)

청출어람이란 과연 무엇일까? 스승의 명예란 무엇일까?

<승부>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단순한 수직적 위계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자극하고 성장시키는 수평적 관계로 확장시킨다.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 순간, 진정한 스승은 단지 “하산하라”는 말로 관계를 끝맺는 것이 아니라, 그 제자를 하나의 독립된 존재이자 대등한 인격으로 바라보며, 서로에게 계속해서 자극을 주는 동반자가 된다.


나는 그래서 생각한다. 스승의 진정한 명예는 자신보다 뛰어난 제자를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제자를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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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_승부에서 알아보는 스승의 명예:_3.5_ 승부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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