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 감상문
몇 년 전부터 K-POP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하지만 국내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위상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우리나라 음악이 세계에서 통한다면 기쁘지만, 괜히 국뽕 분위기에 휩쓸려 호들갑 떠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컸다. 그러던 중, 그런 나 같은 사람도 K-POP의 위상을 체감할 수 있는 영화가 지난달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 그 이름은 바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악귀’라는 존재가 오래전부터 사람들을 괴롭혀 온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이 세계에서는 세대를 거쳐, 특별한 힘을 지닌 세 명의 그룹이 악귀를 물리쳐 왔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번 세대의 주인공은 ‘헌트릭스’라는 이름의 K-POP 아이돌 그룹이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아이돌이지만, 무대 밖에서는 악귀를 사냥하는 숨겨진 사명을 지니고 있다.
이에 맞서 악귀들 역시 ‘사자보이즈’라는 자체 아이돌 그룹을 결성하고, 인간의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두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경쾌하게 풀어내며 전개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고 나서, 단순히 한국 문화의 위상을 확인한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나 자신이 K-POP과 K-컬처에 입문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사실 나는 K-POP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가 보여주는 아이돌 문화가 더욱 신기하게 다가왔다.
대사 대부분은 영어인데, 노래를 부를 때에는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섞인 가사가 들려 반갑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의 OST임에도, 일반 아이돌 음악에 비해 전혀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었고, 오히려 더 좋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말 그대로, 이 작품은 나에게 ‘K-POP 입문 헌터스’가 된 셈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미국의 소니 픽처스에서 만든 작품으로, 최종적인 결정권은 외국인에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화가 중심 소재로 사용되었고, 세부적인 디테일에는 한국 스태프의 손길이 담겨 있다는 점은 인상 깊다. 이런 제작 배경을 알고 작품을 보면, 한국 문화가 마치 이스터에그처럼 등장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한의원, 남산타워, 지하철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풍경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고, K-POP뿐 아니라 예능과 드라마에서 자주 들려오는 멜로망스나 듀스의 노래도 반갑게 등장한다. 특히 대중목욕탕이라는 다소 ‘딥’한 한국 문화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등장인물 간 관계를 상징적으로 연결하는 장치로 쓰인 점은 한국인으로서 흐뭇하게 느껴졌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겉으로는 K-POP 아이돌과 액션이 결합된 화려한 애니메이션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해’에 대한 주제의식이 깔려 있다.
주인공 그룹인 ‘헌트릭스’는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전통을 따라 악귀를 처단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악귀를 일방적으로 ‘악’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존재 이유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거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귀들이 만든 아이돌 그룹 ‘사자보이즈’는 더 밝고 핑크색 계열의 복장을 하고 등장하며, 오히려 선한 쪽처럼 보이기도 한다. ‘헌트릭스’가 어두운 색의 의상을 입고, 악귀들이 나눠준 선물들을 되레 빼앗거나 파괴하는 장면은 그런 대조를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 서사의 중심에는 ‘헌트릭스’의 리더 ‘루미’가 있다. 그녀는 악귀와 퇴마사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로, 몸에 악귀의 문양을 지니고 있다. 루미는 그 문양을 숨기려 하고, 스스로를 ‘고쳐야 할 존재’로 여긴다. 이는 정체성의 갈등을 겪는 이주민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한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낯선 문화에 섞이기 위해 자신이 속해 있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감추고 싶어지기도 한다. ‘루미’의 고뇌는 단지 판타지 속의 설정이 아니라, 문화 간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을 은유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영어권에서 특히 인기를 얻는 것도 이해된다. ‘루미’의 이야기는 한국이라는 특정 문화를 넘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주민들이 자신의 경험을 대입할 수 있는 보편적인 서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K-POP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정체성과 이해, 다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깊이 있는 메시지가 이 작품이 글로벌한 공감을 얻는 힘의 원천이라 생각한다.
이 애니메이션이 공개된 지는 꽤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감상문을 적기까지 오래 걸린 데에는, 어쩌면 ‘케이팝’이라는 소재에 대한 내 거리감이 가장 큰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케이팝을 잘 알지 못했고, 어딘가 거부감도 있었다. 하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런 나조차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케이팝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문화의 다름과 낯섦마저 따뜻하게 끌어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문화가, 지구 반대편에서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감사하게 느껴진다.
선입견으로 새로운 것을 밀어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고, 앞으로는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문화와 이야기들을 마주하고 싶다. 그게 이 작품이 내게 남긴 가장 깊은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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