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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안심센터

2-3. 치매, 너를 대하는 마음

by 오작가

치매에 대해 찾아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치매지원센터였다. 지금은 치매안심센터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나 보다. 각 구마다 있으니 자신이 사는 구의 센터를 찾으면 된다. 많은 정보도 담고 있고, 다양한 교육도 하고 있다. 지금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프로그램도 더 다양하게 많이 생겨난 것 같다. 엄마가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후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갔다. 내가 사는 강남구의 치매안심센터는 너무나 환경이 좋았다. 선정릉의 담을 끼고 위치하여 센터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초록빛이 가득했다. 쾌적하고 따듯한 분위기의 센터에 가니 내 마음이 다 놓이는 느낌이었다.



현재 강남구 치매안심센터의 사업은 6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01 치매예방 및 인식개선사업 -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각종 홍보활동

02 치매 조기검진사업 - 선별검진, 정밀검진, 치매확진 검사비 지원 등

03 치매예방 등록관리사업 - 치매가족과 가족 관리

04 치료비 지원사업 - 저소득층 치매환자에 대한 지원

05 지역사회 지원 강화사업 - 인지건강센터 프로그램 지원, 지역사회 협약 체결 등

06 특화사업 - 나의 뇌를 웃게 하자~! (Smile Brain Project)

강남구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치매 전문의, 간호사, 운동처방사, 미술치료사, 음악치료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 나의 뇌를 웃게 하자”라는 주제로 3일 동안 분야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전체 교육 이수 시 수료증 지급하여 어르신들로 하여금 성취감과 만족감을 극대화하는 프로그램



내 눈에 띈 것은 바로 여섯 번째 특화사업이었다. 겉으로는 너무나 멀쩡했지만 경도인지장애 진단과 스스로의 잃어가는 기능 때문에 엄마의 자존감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들으러 가자고 했다.

시간을 내서 엄마와 센터를 방문해서 수업을 등록했다. 미술과 음악 프로그램을 등록했다. 그런데 엄마가 한두 번 가더니 정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니 선생님도 좋고, 함께 하는 분들도 참 좋으시고 배려를 많이 해주시던데 왜 그럴까?


“현정아 나 거기 가기 싫다.”

“난 거기 가면 참 좋던데 엄마는 싫어? 선생님도 좋고 함께 수업 듣는 분들도 좋으시던데.”

“거기 있는 분들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어울리기 힘들어.”

“뭐 어때 엄마, 아무도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림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난 원래 그림을 못 그렸잖아.”

“엄마, 그림은 꼭 잘 그려야 하는 게 아니야. 마음 편하게 다녀봐~”


엄마가 그곳에 가고 말고는 전적으로 엄마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얼마나 엄마를 위하고 있는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선뜻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다. 엄마는 내가 원하는 대로 그저 따라다녔다. 날 위한 일인 듯. 엄마가 조금 더 엄마의 삶을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의 삶에 목소리를 더 크게 냈으면 엄마는 이런 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나도 누군가를 만날 때 낯을 가리긴 하지만, 한번 내가 마음을 먹으면 남들의 시선은 크게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엄마는 모르는 사람 속에 있는 걸 참 싫어한다. 남들의 시선도 많이 의식하는 편이었다. 하물며 지금 엄마는 스스로 잘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특히 비슷한 경도인지장애인 분들끼리 한 수업을 듣는데, 보통 엄마보다 열 살 이상 많으셨다.


나는 엄마의 병을 낫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엄마의 마음은 들여다보지 못했다.

뭐 어때, 엄마한테 도움이 되기만 하면 됐지. 그건 나의 좁은 생각일 뿐이었다. 그분들은 엄마를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고 도와주려고 했지만 엄마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남들과 함께 할 마음의 준비도 안 되어있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본인이 남들보다 못하는 걸 인증하는 것뿐이었다. 아.. 내가 엄마를 도와준다는 목적 아래 얼마나 엄마의 마음을 짓밟은 것인지 깨달았다.


미술수업을 먼저 그만뒀다. 나는 미대를 나온 딸이지만 엄마는 그리기, 만들기에는 평생 재주가 없었고 자신도 없었다. 학교 다닐 때에도 미술이 제일 힘들었다고 했다. 반면 생각보다 엄마는 클래식 음악도 많이 들었고 음악수업은 잘하는 듯 보였다. 노래 부르는 것은 그렇게 하지만 엄마는 하기 싫은 걸 꾹꾹 참으며 다닐 뿐이었다. 더 이상 엄마의 자존감이 떨어지는 걸 볼 수가 없었다.


“엄마, 그만 다니자. 그렇게 싫은데 뭘 다녀.. 그만하자.”


엄마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더 이상 그곳에 가지 않았다. 딸이 어린아이들을 맡기고 자신을 태우고 데려다주고, 기다렸다 돌아오는 것도 부담스러웠을 테다.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 성격에 당연한 일이다.





조금 기다려줬으면 어땠을까. 불안한 마음에 너무 성급하게 이겨내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 곱씹어 생각해보면 불안한 마음이었다. 두렵고 무서웠다. 지금 이렇게 곱고 예쁜 엄마가 변해버릴까봐,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고 소리를 지르고 집을 나가버리는 그런 사람이 될까 봐. 지나고 보니 그래도 우리 엄마다. 그래도 나를 사랑으로 키우고 여전히 나를 예뻐하고 사랑해주는 엄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날 예뻐해 주고, 사랑해주고,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우리 엄마다.


나중을 걱정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우린 대비하고, 준비하며 최선을 다했다. 어릴 때도, 직장을 다닐 때도, 아이를 낳고 키울 때도 난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가장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배워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세상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나와 너를,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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