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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읽다

2-2. 치매, 너를 대하는 마음

by 오작가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인터넷으로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있었다. 치매에 관련한 책도 예전에 비해 많이 나오고 설명도 많았다. 하지만 진짜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병의 무거움 때문이리라.




어느 날, 나는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두 아이의 엄마였는데, 친정엄마가 치매에 걸리셨다. 어머니는 꽤 많이 진행이 되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집을 돌아다니며 집에 있는 물건들과 대화를 나눴다. 집에 위험한 물건을 치워두고 친정엄마는 같은 빌라의 다른 집에 살고 계셨다. 그 분의 아이는 발달장애를 겪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함께 살며 아이를 돌봐주셨다. 친정 엄마와 아이를 함께 돌볼 수 없는 그 분은 친정엄마를 혼자 둘 수밖에 없었다. 식사시간이 되면 챙겨드리고 틈틈이 올라가서 엄마를 돌봤다. 친정 엄마 집에는 cctv를 달아서 매번 올라가지 못 해도 엄마를 살피고 있었다.


발달장애 아이와 치매에 걸린 엄마를 함께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삶이 무너졌을까. 아이를 돌보느라 엄마를 혼자 두는 그분은 엄마에게 몹시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면서도 엄마와 함께 밥도 먹고, 산책도 나갔다. 친정엄마는 정신이 나갔다 들어오는 것처럼 딸을 알아보다가, 못 알아보다가를 반복했다. 딸은 알아보면 알아보는 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못 알아보면 못 알아보는 대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그분들은 나름대로의 삶의 방법을 찾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영상을 보고 나에게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나는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 하는 날을 상상할 수 없었다. 치매가 중증이 되는 엄마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두려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현실로 살고 있는 그 분들의 모습을 보니, 치매가 많이 진행돼도 저렇게 웃으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나에게는 좋으신 시부모님과 건강한 아이들이 있다. 오빠들도 곁에 있었다.

그 분들이 용기있게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나는 희망을 얻었다.


어느 날은 신문에서 기사를 읽었다. 2013년 5월 4일 조선일보에 나온 기사이다.

<조기 진단받은 후 5년째... 그녀는 오늘도 남편과 함께 일하러 나간다>

치매 아내와 노년을 보내는 서소광씨의 이야기였다. 일찍 진단을 받은 덕에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운동을 많이 하면서 약을 먹은 게 효과가 있다고 했다. 치매 걸리기 전과 일상이 크게 다르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서씨가 운영하는 상패 제작 업체에 나간다. 상패를 포장해서 상자에 넣고, 시장구경도 함께 다니고 커피도 잘 끓여낸다고 했다. '부부가 늘 함께한다는 사실만이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고 했다. 진단을 일찍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기사였다. 그분들의 웃는 얼굴과 부부가 늘 함께한다는 사실만이 달라졌다는 그 한 문장은 두려움에 짓눌렸던 내가 밝은 미래를 기약하기에 충분했다.


서울삼성병원의 나덕렬교수님의 [뇌미인]이라는 책은 정말 좋은 내용을 담고 있다. 치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이겨내는 방법, 환자와 환자 가족을 위한 따뜻한 조언이 담겨있다. 책의 말미에는 장모님의 치매일지가 나와있다.

가장 인상깊은 것은 ‘예쁜 치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덕렬교수님께서는 치매는 환자가 평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볼 수 있다고 하셨다. 사실 치매로 인한 어려움보다 문제행동으로 인한 어려움이 많다. 치매가 진행되면서 어려움이 많지만 예쁜 치매가 되도록 가족과 환자가 함께 노력하다보면 많이 진행이 되어도 편안하게 잘 지낼 수 있다고 하셨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올까.

'우리 엄마도 예쁜 치매가 될 수 있게 내가 도와줘야지. 내가 함께 해줘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림 속에 갇힌 것 같은 시간 속에서,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환자의 가족들의 이야기는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치매환자 가족의 모임도 있다는데 아직 그런 모임에 나갈 생각을 하지 못 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엄마의 병을 터놓을 만큼 마음 속 힘이 자라나지 못 했다. 엄마가 겉으로는 멀쩡하니 아무도 못 알아봤으면 했다. 누군가 엄마를, 그리고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것도 정말 원치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아무렇지 않은듯, 괜찮은듯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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