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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바꾸면 나아질까

2-1. 치매, 너를 대하는 마음

by 오작가

엄마의 병명을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찾아봤다.

엄마는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으면서도 일찍 찾아온 초로기 치매라고도 했다. 일찍 찾아온 만큼 진행이 빠를 수도 있다고 했다.




경도인지장애

동일 연령에 비해 인지기능이 떨어져 있으나, 일상생활동작의 독립성은 보존되어 있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치매 고위험군 상태로써 정상 노인의 경우 매년 1~2%만이 치매로 진행하지만, 경도인지장애는 매년 약 10~15%가 치매로 진행한다. 이 상태는 치매를 가장 이른 시기에 발견할 수 있는 단계이며 치료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도인지 장애 [mild cognitive impairment]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초로기 치매

지능의 기능 저하로 인하여 일어나는 치매(후천성 뇌 상해로 인한 지능 저하) 상태. 노인성 치매 연령보다 빨리, 갑자기 강하게 일어나는 질환으로, 알츠하이머병(病)이 대표적이다. 초로기(45~60세)가 되면서 지능이 저하하는 것으로서 특히 여성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초로기치매 [presenile dementia, 初老期癡呆] (두산백과)




이름으로 말하자면, 치매라는 단어의 어감이 정말 싫다.

癡(어리석을 치) 呆(어리석을 매). 비슷한 말로는 老(늙을 노) 妄(망령될 망)이 있다. 늙어서 부리는 망령이라니. 얼마나 무식하고 바보 같은 표현인지 모르겠다. 얼마나 이 병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만든 말인지. 그 말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정말 무지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에 비해 경도인지장애라는 말은 한결 받아들이기도 편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도 마음이 가벼웠다. 아직 우리 엄마는 치매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치매라는 말 대신 인지장애 정도라면 조금 더 편하게 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치매환자는 미친 게 아니라 인지기능에 약간의 장애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의사들이 강조하듯, 치매는 빨리 발견할수록 좋다고 한다. 너무 늦게 발견해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에 비하면 우린 매우 이르게 발견한 편이었다. 그래서 많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엄마는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라고 했다. 너무 젊은 데다가 검사 결과로는 알츠하이머형으로 나타나지만 기억력이 좋고 진행도 느리다고 했다. 현재로서는 쓸 수 있는 약에 한계가 있지만 임상시험에 참여하면 새로운 약을 미리 써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했다. 또 다양한 검사비용과 약값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아빠와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달랐다. 엄마는 병원 가는 걸 정말 싫어한다. 안 그래도 치매라는 이야기에 온몸이 위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자기가 실험의 대상이 되는 거냐며 극구 싫어했다. 게다가 평생 수술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로 살아온 독일 고모할머니는 더더욱 반대 입장이었다. 엄마에게 고모할머니는 심적으로 많이 의지하는 분이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봐온 고모할머니는 평소에도 우리를 만나면 늘 말씀하셨다. 수술로 병을 고쳐봐야 그 사람이 가진 많은 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병은 낫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사람은 분명히 다시 병원에 온다고 했다. 물만 많이 마셔도 많은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었다.


환자인 엄마의 입장보다는 보호자인 아빠의 뜻이 더욱 중요했다. 특히 치매는 정신에 대한 병이 아니던가. 아빠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엄마를 지켜야 했다. 결국 임상실험에 참여해서 더 많은 검사를 받았다. 엄마는 병원에 갈 때마다 무너지고, 지쳐갔다. 우리에게는 사진 한 장 더 찍는 일일지 모르지만, 엄마에게는 점점 안 좋아지는 현실을 마주하고 바라보며, 지속해서 무너지는 과정일 뿐이었다.




치매라는 병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조기에 발견을 한다면, 처음 진단을 받고 나서 환자는 천천히 아주 조금씩 안 좋아진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으면 환자와 환자 가족들은 마음이 무너진다. 그러면서 어제와 별 다를 바 없는 환자를 오늘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취급할 때가 있다. 바른 말을 해도, 자신의 마음을 말해도, 왠지 환자 본인이 옳은 판단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다. 병 그 자체보다 가족과 타인의 시선의 변화. 이건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다. 환자 그 자신에게.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다시 돌아가도 가족으로서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더 다양한 노력을 해볼걸,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내 마음을 위하고 환자의 마음을 위하는 노력에 가장 마음을 많이 쏟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치매를 겪는 환자나 환자의 가족을 만나게 되다면 그저 앞을 잘 못 보는 사람을 만나거나 말을 약간 더듬는 사람을 만난 정도로, 생활에 작은 불편함을 가지고 있겠구나 정도로 인식해줬으면 좋겠다. 치매 환자는 인지적으로는 도와주어야 하나, 감정적으로는 인정받아야 한다. 그걸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는 있으면서도 막상 만나면 그렇지 않다. 불쌍해하고, 안타까운 시선. 마지막의 영혼 없는 눈빛을 상상하며 환자와 가족을 바라본다. 지금까지 내게 부모였던 그분은 변함없이 나의 부모님이다. 하루아침에 내 자식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정신을 잃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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