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가 5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어

1-6. 엄마에게 병이 찾아왔다

by 오작가

약을 먹고 너무나 정상으로 돌아왔던 엄마는 내가 살펴봤을 때 딱 9개월 정도 효과가 있었다. 물론 그 이후에 효과가 없었다는 건 아니다. 원래부터 치매 치료제는 완전히 병을 없애주는 약이 아니다. 그저 병의 진행을 늦춰줄 뿐이다. 현재로선 그게 최선의 치료법이다.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9개월 동안 너무 괜찮아져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다시 조금씩 안 좋아졌다.

어느 날은 한 10년 전 이야기를 어제 이야기처럼 깔깔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엄마는 웃었지만 우린 웃을 수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제 일인 것처럼 함께 웃을 수밖에. 사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우리의 마음은 무너진다. 하지만 모두 다 내색하지 않고 그저 웃는다. 엄마가 이렇게 오래전 이야기를 꺼내서 이야기할 때 나는 가끔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혹시나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엄마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그래!' 하면서 핀잔을 주지 말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마음껏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웃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갈수록 내리막을 걷는 이 병과 함께 지낼 때, 그 순간을 즐기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 시간이 지나 그때가 좋았던 거라고 추억하지 말고 그 순간을 소중하고 기쁘게 지냈으면 좋겠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이없고 웃기는 행동을 할 땐 잘 웃으면서 어른들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면 핀잔을 준다. 치매에 걸리면 이런 일이 더 많아진다. 너무 놀라지 말고, 너무 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엄마의 이야기에 젖어드는 것이 엄마를 위한 배려였다. 별일 아닌 것처럼.


엄마는 시지각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보이는 물체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력이 나쁜 게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물체가 무엇인지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식탁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이 있는데 잘 찾지 못하는 것이다. 눈 앞에 내가 있는데 약간 옆을 바라보는 것이다.


치매 검사지에는 도형을 보고 똑같이 그리는 문제가 있다. 도형이 겹쳐진 모양을 보고 따라 그리는 건데, 치매 환자들은 이것을 똑같이 따라 그리지 못한다. 엄마도 각자의 도형이 흩어져 있는 모양으로 그렸다. 그걸 보면, 엄마에게 세상이 참 혼란스럽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탁 위에 올라온 물건들이 뒤죽박죽 뒤엉켜 보이면 눈앞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지러울까 싶었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스스로 운전을 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운전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린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괜찮은 척 그렇게 살아가야 했다. 대신 엄마는 열심히 걷고, 버스를 타곤 했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다시 시작이었다.

어느 날 기사 속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치매에 걸린 후 평균 수명은 5년 정도이다>

절망적이었다. 5년이라니.. 우리 엄마가 5년 후에 죽는다는 건가. 출근을 해서 동료 선생님과 펑펑 울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이런 모습으로 5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어.”

아무런 위로도 하지 못하고 우린 함께 울고 말았다.






이제 나에게 엄마와의 시간은 유한한 것이 되었다.


나의 외할머니는 85세로 여전히 건강하시다. 외할아버지는 3년 전쯤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몸은 마르셨지만 건강하셨다. 돌아가시기 직전 말고는 정신적으로도 건강하셨다. 외할머니는 지금도 대화가 아주 잘 될 정도로 건강하시다. 이제 다리가 아프고 혼자 지내기 힘들어 이모 집에 사시지만, 늘 단정한 모습으로 바르게 앉아 대화를 나누신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식사와 간식을 매끼 다르게 챙겨드리셨다. 간장, 된장도 다 직접 담가 드셨다. 운동도 하루에 두 시간씩 하셨다. 이렇게 건강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기에 난 우리 엄마도 그렇게 오래도록 나와 같이 살 줄 알았다. 사실 엄마 스스로도 당연히 오래 살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일찍 병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힘이 넘치도록 건강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디 특별히 아픈 곳도 없었다.


무한할 것 같은 시간이 유한해질 때, 시간은 소중해진다. 엄마한테 투정 부리는 것도 엄마가 평생 내 곁에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다음에’라고 미루는 것도 또 만날 수 있다는 기약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보내는 이 시간이 다음에 또 온다는 기약이 없었다. 당시에는 당장 엄마가 돌아가시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느끼는 걸 내년에도 느낄 수 있을지를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이 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몸으로 와 닿지 않아 무섭고 불안했다. 의사 선생님들은 자신의 장모님이 치매를 앓으실 때 앞으로 올 일을 예측하고 대응했다고 했다. 나는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슬픔에 빠졌다. 견딜 수 없었다. 엄마가 아주 작은 기능이 잃을 때마다 우린 마음이 무너졌다. 이제 엄마가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엄마가 떠날 수도 있다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