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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공부하다

1-5. 엄마에게 병이 찾아왔다.

by 오작가

딸은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벽이 허물어진 나는 엄마와 더욱 가까워졌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치매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치매와 관련된 책을 사서 읽었다. 방송 프로그램들도 찾아서 봤다.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서 읽었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보고, 녹즙을 갈아주는 아주 비싼 녹즙기도 샀다. 신약을 개발 중이라는 이야기, 치매의 원인을 알아냈다는 기사도 읽었다. 줄기세포로 치료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치매의 종류가 여러 가지 있는데, 알츠하이머형은 치료가 어렵지만 치료할 수 있는 치매도 많다고 했다. 엄마는 기억력은 좋은 편이고 인지장애만 심하니 혹시나 알츠하이머가 아니진 않을까, 치료할 수 있는 치매는 아닐까 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봤다. 공부하다 보니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원래 ‘안 되는 게 어딨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병원도 다니고, 엄마를 꼬셔서 치매지원센터에서 수업도 듣게 했다. 치매 박람회가 열리면 엄마 손을 잡고 같이 가서 보기도 했다. 그때 받은 종이접기 색종이는 아직도 우리 집에 남아있다. 노인들의 치매 예방을 위해 만든 두툼한 종이접기 색종이였는데 내가 봐도 어려울 정도다. 노인들을 위한 종이 접기라면 쉬운 것 몇 가지를 반복해도 될 텐데 1000장이 모두 다 다른 것이었다. 결국 아이들의 종이접기 색종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는 엄마에게 병이 어떻게 왔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몇 가지 사건이 생각났다.


제일 먼저, 지난 유럽여행 때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사진 속에서 나를 약간 오른쪽에 있게 찍어달라고 했다. 카메라의 셔터를 반만 눌러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후 카메라를 옆으로 조금 움직여 찍으면 된다. 그런데 아무리 설명을 해도 엄마가 그 말을 이해를 못 했다. 나를 가운데 놓고 찍거나 내가 옆에 있게 찍으면 배경에 초점이 맞았다. 결국 내가 가운데 나오는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아예 내가 설정을 바꿔줬다. 말로 설명하면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 엄마는 젊을 때 사진 찍는 걸 좋아했다. 그때는 물론 필름 카메라였다. 우리 사진을 찍어 잡지에 출품해 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늘 우리의 사진을 찍어줘서 그 시절 우리는 어릴 적 사진이 많은 편이다.

엄마도 이런 구도로 사진을 많이 찍었을 텐데.


“아 엄마 왜 이걸 이해를 못 해애~!!”

설명을 하다 하다 답답함에 온 몸을 비틀었다.


생각나는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우리는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를 지내지 않고 기일에 추도예배를 본다. 추도식을 할 때 엄마는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했다. 제사는 형식이 있지만 추도식에는 우리가 먹을 음식을 하면 된다. 고모님과 작은 아버지, 그 자녀들까지 모두 모이면 많은 식구였다. 엄마는 샐러드부터 갈비찜, 각종 전, 중국요리, 육개장, 후식 등등 다양한 음식을 맛깔나게 만들었다. 너무 일이 많다 보니 나는 늘 추도식 음식 장만하는 걸 함께 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엄마가 추도식날이 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서성였다.


“엄마, 채 써는 거 먼저 하자.”

“엄마, 이제 소스 준비해야 돼.”

“엄마! 육개장 끓여놔야지!!”

옆에서 내가 엄마에게 음식을 준비하도록 순서를 알려줬다.

이것도 치매의 전조증상이었나 싶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엄마는 내가 결혼한 해에 대상포진에 걸렸었다. 그것도 왼쪽 눈 옆으로 머리 부분에 대상포진이 왔다. 엄마는 머리가 너무너무 아팠다고 했다. 독일에서 간호사였던 고모할머니는 엄마의 치매에 대상포진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대상포진의 바이러스가 완전히 죽지 않고 혈액을 타고 돌아다니다가 뇌와 시신경 쪽에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기억을 잘 못 하는 일반적인 알츠하이머 환자들과는 조금 달랐다. 기억력은 괜찮은 반면 공간지각력과 시지각 능력이 많이 떨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일찍 치매가 찾아온 초로기 치매 환자의 경우 이런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러 의사 선생님께 물어봐도 대상포진과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 과학적인 명확한 근거는 없었다. 기억력이 괜찮다는 것도 치매의 증상이 사람마다 너무나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알츠하이머형이 아니라는 근거를 내세울 수도 없었다. 모든 건 다 나의 추측일 뿐, 지푸라기라고 잡고 싶은 심정에 여러 가지 근거를 혼자 생각해본 것이었다. 다만 가족인 나로서는 우리 엄마의 인지장애에는 분명히 대상포진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알츠하이머는 발병되기까지 15~20년 정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뇌에 단백질이 쌓인다고 한다. 대상포진이 아니었다면 혹시 치매가 와도 20년 후쯤 오지 않았을까. 게다가 엄마는 대상포진이 피부에 생긴 것을 보고 피부과에서 약을 받아서 조금 먹고 끝냈었다. 기간으로 보면 대상포진이 걸리고 1년 뒤쯤부터 이상증세가 나타난 것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대상포진 치료 안 하면 치매 발생 1.3배 증가>라는 글을 읽었다. 서울아산병원 김성한, 배성만 감염내과 교수와 윤성철 의학통계학과 교수, 김성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은 2002~2013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토대로 분석해서 이런 내용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는 유럽 정신의학 임상신경과학 아카이브 최신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신경에 침투하는 성질 때문에 염증이 생기고 면역력이 떨어져 치매 발병까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했다. 신경세포가 대상포진 바이러스 감염에 대항하기 위해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만들어내면서 치매가 생기는 데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했다. 다만 두 질병의 인과관계를 확정적으로 입증한 것은 아니므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위의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심증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엄마의 케이스에 명확하게 대입할 수는 없다. 혹여나 엄마의 치매에 대상포진이 영향을 준 것이 확실하다 해도, 이미 시작된 엄마의 병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원인을 알면 치료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끊임없이 원인과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환자라면, 환자의 가족이라면 누구든 그러하듯이.


여러 방송과 기사를 보다가 삼성서울병원의 나덕렬 교수님이 알게 되었다. 이 분야에서 굉장히 권위자이시기도 하고, 치매지원센터의 센터장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따뜻하신 것 같았다. 이 분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고 병원을 옮겨보자고 했다. 조심스레 이야기해서 병원을 옮겼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친절했고, 의사 선생님도 좋으셨다. 모든 게 잘 되어가는 것 같았다.


약을 먹고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의 상태는 좋아졌다. 솔직히 완전히 괜찮아진 것 같았다. 치매가 아직도 정복할 수 없는 것이라더니 약이 이렇게 좋은가 하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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