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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시간

2-4. 치매, 너를 대하는 마음

by 오작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겨낼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특히 엄마 자신은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니, 보냈을 것이다. 나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고, 복직을 했던 시간이었다. 오빠들도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었고, 아빠도 여전히 출근을 하고 계셨다. 나도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은 했지만 여전히 나는 바빴다. 매일 같이 사는 것도 아니었으니, 내가 보고 들은 건 엄마의 시간 속에서 작은 점에 불과했다.


어느 날 엄마가 이야기했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고.

아주 많이 꽤 오랜 시간을.


우선 엄마는 이 병이 엄마에게 온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다소 몸이 약한 편이긴 했지만 크게 아픈 곳도 없었다. 억울하고, 속상하고, 화가 났다. 그런데 어디 말할 데도 없어서 그렇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 수밖에 없었단다.

엄마는 살면서 늘 생각했다고 했다. 엄마가 아빠보다 더 오래 살 거라고. 아빠는 기름진 고기도 좋아하고 혈압도 높은 편이다. 엄마는 외할머니처럼 자신이 더 오래 살아서 아빠를 뒷바라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아마도 90세, 혹은 100세 정도까지를 생각한 게 아닐까.


아빠는 사우나를 가도 엄마와 같이 가는 분이다. 많은 모임이 부부동반이었고, 우리가 어릴 땐 늘 함께였다. 결혼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늘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 하시는 아빠다.

어딜 가든 엄마와 함께 다니길 원하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빠에게 자기가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제 아빠의 밥도 챙겨줄 수 없고 엄마의 모든 뒷바라지를 아빠가 해야 한다는 게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아빠의 밥을 챙겨주지 못하는 것은 엄마에겐 꽤나 오랫동안 미안한 마음의 짐을 가지게 했다. 그놈의 밥이 뭐라고...


평생 아빠와 우리를 뒷바라지하며 살아온 엄마다. 스스로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 선생님까지 되었던 엄마다. 그런데도 엄마는, 앞으로 우리를 위해 밥을 하고 아빠의 마지막을 당신 손으로 챙겨주지 못하는 것을 그렇게도 속상해하셨다. 난 내 생각만 하면서 남편 탓을 하고 짜증을 부리기 일쑤였는데, 엄마는 지금까지 해준 것도 모자라 더 해주지 못하는 걸 자신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병이 온 게 왜 도대체 엄마 탓인 거야! 젠장!!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했다. 내 몸은 어찌 되든 아이를 위한 마음 말이다. 내가 밤을 새워도 아이를 위하는 그 마음. 대신 아파주고 싶은 마음. 그래도 난 여전히 나를 위한 마음도 컸다. 사회적으로도 더 성공하고 싶고, 멋지게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 큰 병을 받아들이는 엄마의 마음속엔, 아빠와 우리가 있었다. 함께 하지 못 해 미안하고 슬픈 마음속에서 엄마는 헤매이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심장이 쪼여오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몇 날 며칠일지 모르는 그 시간 동안 엄마가 이불을 파묻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하지만 엄마는 그 시간을 통해 이 모든 걸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은 것 같다. 결국 우리에게는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화가 나고 속상하고 억울해서 모든 걸 때려 부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별 수가 없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시위를 해도 별 수가 없다. 그저 내게 온 이 병을, 이 모든 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시간이 흐르고 나서 엄마는 조금 달라졌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해야 할까. 이 말을 감히 딸이 엄마에게 하는 것이 옳지 않게 느껴지지만 다른 말은 잘 모르겠다.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으로 옥죄던 모든 것으로부터 엄마는 한발 멀리, 한 계단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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