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을까?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 이제 더는 내 마음을 말할 대상도, 들어줄 상대도 없어지고 있다. 내 좋은 친구들은 또 들어 주겠지만 내 마음 속 풀리지 않는 고민을 친구한테 넋두리하는 것도 벌써 몇 년째다. 돈을 내면 상담사가 들어주겠지만 언제까지 돈을 쓰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건가. 그래서일까 내 마음을 글로 써보고 싶었다.
그런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하루하루 사는 게 바쁘기도 했다. 내 일도 하면서 아이들 챙기고 밥 하고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일들은 겹겹이 쌓여있었다. 운동도 해야지, 책도 읽어야지 하지만 어느새 훌쩍 하루가 지나가고 아무것도 못 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손에서는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내 몸을 움직이지 않고 핸드폰 속 세상에서 내가 꿈꾸는 삶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터넷 세상 속에서는 아무도 내 부족함을 지적하지 않았고 내 현실을 회피하면서 계속 새로운 컨텐츠를 소비했다. 트렌드와 내가 모르는 지식을 배워가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현실은 늘 불만스러웠다. 현실을 개선하려면 내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몸은 안 움직이고 머리만 움직이고 있으니까. 육아 컨텐츠를 보면서 내 아이를 보지 않는 것처럼.
어느 날 글쓰기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글쓰기를 처음 배웠던 쏘냐님께서 하루에 하나씩 써보자는 취지의 모임을 해보겠냐고 물었다. 좋다고, 친구까지 불러서 같이 하자고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침 우리집에는 고양이를 키울까 말까 하는 이슈가 생겼던 참이라 글은 술술 써졌다. 와, 정말 어쩜 이렇게 때가 잘 맞았을까? 하면서 즐겁게 일주일을 보냈다.
2주차가 되었는데 글이 잘 안 써졌다. 코로나에 걸려 몸도 많이 아팠고 답답했다. 시간이 지나 좀 나아졌는데도 글이 써지지 않았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으로 시작된 고민은 어느새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마음이 바닥까지 가라앉았고 고양이 키우는 것에 대한 답을 얻지 못 한 채로 하루하루 시간이 갔다. 글쓰기를 진행하는 쏘냐님께 죄송한 마음도 들고 답답했다. 이대로 아무 말 없이 지나가기가 좀 그래서 용기를 내 카톡을 보냈다.
“제가 고양이 키우는 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까 갑자기 엄청나게 부담이 되면서 마음이 힘들었어요. 코로나로 갇힌 현실도 한 몫 한 것 같구요. 계속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괴로웠고요. 글을 쓰려고 하면 부담이 돼서 못 쓰겠더라고요. 저한테 독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예요. 글쓰기를 해보겠다고 야심차게 뱉어놓고 자꾸 안 하고 있어서 죄송한 마음에 일단 제 상황을 말씀드려요.”
“네네. 글을 쓰면서 그럴 때가 있더라구요. 사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감정도 당연하고, 그런 혼란을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근데 또 부담이 된다면 쉬어가도 됩니다. 그리고 고양이 키우는 결정은 진짜 진짜 큰 거라 여러모로 마음이 무거울 것 같아요.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도 너무 이해가 돼요.”
마음 속에 고민만 하다가 말을 내뱉으니 한결 나아졌다. 마음을 공감받는 것은 작은 순간이지만 큰 힘을 된다.
“네 너무 큰 결정인데 좀 급박하게 결정을 내린 것 같고, 막상 정말 키운다 생각하니까 너무 무거운 일처럼 느껴지네요. 그렇다고 이제와서 안 한다고 하자니 애들하고 한 약속은 뭐가 되며... 괜히 내가 다 일 벌여놓고 수습이 안 되는 꼴이라 괴로워요. 일단은 마음이 너무 힘들게 요동쳐서 예배보고 다른 일부터 좀 해보려구요.
저만 너무.. 우울하고 혼란스러운 얘기만 계속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거 너무 인간적이잖아요. 다들 비슷할걸요. 전혀, 누구도, 왜 이 사람은 이럴까 생각하지 않을 거에요. 맞아. 나도 그랬지. 혹은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진짜.. 지금 상황 너무 이해돼요. 수의사 되고 싶다는 아들을 키우면서 아무것도 못 키우고 있는 중이라서요. 저는 당췌 용기가 안나요. 사실 고민하는 것만 해도 저보다는 한단계 더 가신 것 같은 선배 느낌입니다.“
“그럴까요? 솔직히 우울했던 시간이 꽤 돼서 이제 친구들도 그만 좀 하지 이런 느낌이예요. 별 이유도 없이 나는 왜 이러나 싶고요. 고양이도 애들이 키우자고 한 것도 아니고 제가 먼저 마음이 동해서 여기까지 온 건데”
“저 그런 생각 들 때 도움이 됐던 책이 있는데요, 정혜신박사님의 당신은 옳다. 혹시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안 읽어보셨다면 강추합니다.”
“저 그 책 읽다 말았는데.. 생각해보니 뭔가를 끝까지 맺어본 게 요즘 별로 없네요.
글쓰기를 정말 힘들게 하는 건 글을 쓰는 그 자체보다 글을 쓰는 내 마음을 마주하는 것 같아요. 나 혼자 생각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 마음을 마주하고 표현하고 누군가 읽기까지 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예요. 막 쓰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나를 다 까발리는 일 같이 느껴질 때 손이 움직이지 않더라구요. 누가 날 안다고..”
“보여준다 생각하지 않고 막 쓰고 나서, 그중에 내보일 수 있는 걸 다듬어서 내놓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이게 또 독자가 없는 글은 꾸준히 쓰기 힘든 측면이 있더라구요. 그러니 둘을 병행하는 거죠.”
“말하다보니 왜 쓰는 거지 싶은 생각도 드네요.”
“참 이상해요. 쓰는 게 그래요. 왜 쓰는 건지 모르겠는데, 쓰다보면 좋아요. 그렇게 지나고 보면 정리도 되고요. 사실 마주치기 어려운 순간들을 마주하는 일이라 글이 아니면 그만큼 구조적으로 날 들여다 보기도 힘들고요. 그래서 쓰다보면 막 깨닫잖아요. 내 생각이 이게 아니었나? 뭐 이럴 때도 있고.”
“좋은 순간은 짧고 힘든 시간은 길어서 자꾸 어려운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도 막 쓰고나서 2시간 후쯤 보면 완전 다르게 보일 때가 있어요.”
“그래서 자꾸 글 쓰나봐요”
“얼굴 한번 안 본 사이인데 왜 이렇게 따뜻하고 마음 편안한지 모르겠어요. 고민이 정말 많았는데 잘 들어주셔서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감사해요.“
“다행입니다. 가끔은 너무 가까운 친구보다 얼굴 한번 못 봤기에 가능한 대화도 있는 것 같아요.”
짧은 대화였지만 글 쓰는 것에 대한 욕구와 그 안의 어려움을 서로 공감하면서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정혜신 박사님의 [당신이 옳다]를 다 읽진 못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당신의 모든 마음과 생각이 옳다는 것이었다. 내가 왜 쓸데없이 고양이를 키운다고 해서 이 마음고생인가 싶었는데 그때 내 마음도 옳다.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 그런 마음이 내 안에 들어왔고, 그것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선택을 하면 후회를 많이 했는데 이번엔 그때 내게 들어온 그 마음에게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싶었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 언제 들어왔든, 쓸데없어 보이는 구질구질한 마음도, 내 자신도. 그 자체로 옳다.
쏘냐님께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