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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Jan 25. 2021

밥 한번 먹기 힘들다

엄마와 함께 하는 오늘

요즘 엄마가 보고 싶었다. 우리 집이 엄마 집 바로 옆 동이지만, 엄마를 만나러 갈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는 나에게 엄마 집에 가는 것은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다. 보고 싶지만 만나면 무너지는 마음을 챙기는 것이 쉽지 않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빠가 엄마와 함께 우리 집을 찾으셨다. 코로나와 함께 많이 안 좋아진 엄마를 우리 집에 데리고 오는 것이 힘들어서 엄마가 우리 집에 자주는 오지 못 하셨다. 아이들도 코로나로 늘 집에 있다 보니 나도 엄마 집에 자주 가기 어려웠다. 연말에 많이 안 좋아졌던 엄마는 새로운 약을 먹고 상태가 조금 나아졌었다. 그런데 이 약이 진정시키는 부분이 있다 보니 엄마는 모든 것이 많이 느려졌다. 


오늘은 산책을 하고 왔는데 엄마가 거의 무릎을 펴지 못했다. 엉금엉금 걸어서 겨우 소파에 앉으셨다. 소파에 앉으니 뒤로 기대길래 힘들게 눕혔다. 엄마는 누우려고 할 때 굉장히 눕지 않으려고 한다. 뒤로 넘어가는 행위 자체가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어렵사리 아빠의 힘을 빌어 눕히자 편안하게 누워서 잠시 눈을 붙였다. 거실에 불을 끄고 아빠와 엄마가 고된 몸을 눕혀 쉬었다. 잠시 찾아온 평온한 시간이었다.




평온한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걷고 와서 물을 못 마신 엄마에게 물을 드렸다. 빨대컵에 담아드린 물을 엄마는 한 모금씩 천천히 마셨다. 입에 빨대를 대 줘도 한 박자 느린 사람처럼 한참이 지나서 조금 빨고, 또 한참이 지나서 조금 빨아 마셨다. 물을 내려놓고 늘 아래를 쳐다보는 엄마를 바라보며 바닥에 앉았다. 엄마가 천천히 나를 쳐다봤다. 엄마와 눈을 맞추며 내가 가진 최대한의 밝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엄마 우리 집에 오랜만에 왔지. 엄마가 오니까 너무 좋다.”

“그래?”

“응 엄마 운동하느라 힘들었지?”

아주 천천히 엄마의 호흡으로 눈을 마주쳤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매일을 외롭게 지냈을 엄마에게 사랑의 눈빛을 보냈다. 

“어머.. 어쩜 이렇게 예쁘니”

“히히! 엄마는 맨날 나 보고 예쁘다 그러더라. 엄마가 예쁘다 그래서 너무 좋아!”     


요즘 매일을 엄마가 보고 싶었다. 뼈가 앙상한 엄마의 손을 만지고, 말랑말랑한 엄마의 볼을 만졌다. 힘이 없어진 엄마의 다리를 주물러줬다. 자꾸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엄마 손을 잡고 걸었다. 힘이 없어서 무릎이 자꾸만 접히고 앉을 것 같은 엄마 손을 잡고 집안 여기저기를 걸었다. 집에 키운 화초를 보여주었다.      


“엄마 우리 집에 이런 화초를 키우고 있어.”

한참을 쳐다보다 눈을 맞춘 엄마는

“그래 예쁘다. 잘하네.”

“난 잘 못 키우는데 애들이 물을 주고 잘 키우고 있어.”

“어 잘하네.”     


엄마 손을 잡고 또 걷는데 눈물이 났다. 자꾸만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날 것만 같아서, 그 손을 꼭 잡은 내게 눈물이 솟았다. 아빠도 계셔서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자꾸만 차올랐다.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의 전화였다. 주말이면 늘 오빠가 아빠 집에 가서 식사를 챙겨드렸다.


“아빠 어디세요?”

“어 그래, 지금 현정이 집인데 이제 집으로 갈려고.”

“아빠 오늘은 여기서 식사하고 가세요.”

“아, 오늘은 현정이네서 저녁 먹고 가란다. 그래, 다음에 보자.”     


오랜만에 오신 엄마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같이 식사라도 챙겨드려야지 했다. 저녁을 뭘 준비하지..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엔 우리 딸이 얼굴이 빨개져서 내게 다가온다.


“엄마 나 너무 더워.”


울먹울먹 눈물을 보이며 덥다고 다가오는 그 모습은 몹시 당황하거나, 속상하거나 슬픈 마음이 들 때 보이는 모습이다. 얼른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방으로 갔다.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던 나는 눈물이 터지는 아이를 안고 대화를 나눴다.


“지윤아, 왜 울어? 엄마한테 지윤이 마음 얘기해줘. 어떤 말이든 해도 괜찮아.”

“할머니 무서워. 할머니랑 밥 먹는 거 무서워..”

“그치.. 그래 엄마 지윤이 마음 알아. 무섭지. 할머니랑 밥 안 먹으면 좋겠어?”

“응.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집에 가서 먹었으면 좋겠어.”

“그렇구나. 그럼 할머니 가시라고 할까...”     


잠시 생각했다. 어떡하지... 가시라고 할까. 오랜 시간 동안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밥 먹는 게 큰일이 된 지금 아이들은 작년부터 할머니와 밥 먹는 걸 힘들어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있었던가. 우리의 힘든 시간이.     

밖에서는 이야기가 들렸다.


“우린 집에 가자.”

“오늘 현정이 집에서 밥 먹고 가래. 현정이네랑 같이 밥 먹고 가자.”     


안 되겠다. 오늘은 엄마와 밥을 같이 먹어야겠다. 저런 부모님을 보낼 수가 없다. 결심했다.     


“지윤아, 지윤이가 힘들겠지만 엄마는 오늘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저녁을 먹고 싶어. 엄마가 요즘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했었잖아.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보고 싶어도 못 보잖아. 할머니 계실 때 많이 보고 싶어.”

“그래도 무서워어...”

“그럼 할머니랑 같이 안 먹게 해 줄게. 너희가 먼저 먹던지 따로 먹게 하면 어떨까?”

“응 알았어..”     


시원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엄마를 위해 한 발 양보하는 우리 딸이다. 한참을 같이 안고 울면서 마음을 나눈 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이야기를 잠시 했다. 밖에선 엄마와 아빠가 노래를 흥겹게 부르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서 우린 화장실부터 갔다. 눈물을 닦고 세수도 했다. 


“엄마는 울고 나면 눈이 너무 빨개져. 빨간 게 잘 안 없어진다.”

“나는 울어도 바로 괜찮아지는데 엄마는 엄청 빨갛네! 히히”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준 우리는 마음에 불편함이 없어졌다.


아이가 노는 동안 나는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냉장고에 있던 재료들을 이것저것 꺼내서 부침개를 부쳤다. 한참을 굽고 있는데 지윤이가 밝은 얼굴로 다가왔다.     


“엄마, 할머니가 괜찮아졌어!”     


엄마는 아까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말은, 할머니를 보는 아이의 마음이 조금 괜찮아졌다는 뜻 이리라. 우린 싱긋 미소를 지으며 쳐다봤다.


저녁상은 아이들을 티브이를 보면서 거실에서 먹게 하고, 부모님은 식탁에서 우리와 함께 식사를 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오랜만에 티브이를 보면서 밥을 먹으니 좋았고, 우린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했다. 엄마는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내가 끓여드린 죽을 잘 드셨다. 식사를 하고 나니 마치 전원이 꺼지듯, 차분해졌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는 걸까,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엄마는 많이 느려졌다. 한 마디를 하면 몇 초 있다가 답을 했다. 약을 줄이면 몸과 마음이 흥분되어 조절이 잘 안 되고, 약을 늘이면 진정이 되지만 느려진다. 명확한 선택은 없고, 그때그때 상태에 따라 약을 조절할 뿐이다. 

엄마의 머릿속에 안개가 끼인 듯, 겹겹의 커튼이 쳐진 것처럼 밖에서 들어온 소리를 입력해서 대답을 하려면 시간이 걸렸다. 안개를 헤치고 나의 소리를 듣고 응답하기 위해 그 안개를 헤치고 다시 먼 길을 돌아오는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답답할 노릇일지 모르지만 엄마는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다. 최선을 다해 답하고, 걷고, 먹고, 변을 본다. 엄마의 최선을 다하는 매 순간을 감사히 생각해야 할 일이다.


늘 함께 하지 못 하는 나의 마음이 무너진다. 아이들은 할머니의 변화에 두려움을 느낀다. 함께 사는 아빠는 무너지고 무너지며 힘든 마음을 부여잡고 살고 있다. 엄마를 자주 만나야겠다. 두려워하지 말고 엄마와 함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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