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대한 이야기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엄마들의 집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니, 분명히 나도 초등학교(물론 그땐 국민학교였지만)를 다녔는데도 모든 것이 새롭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말하지 않는 남자아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여러 엄마들을 만나며 학교에 대한 이야기와 아이들의 교육 이야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이내 나와 마음 맞는 사람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아이가 친한 친구의 엄마는 나와도 마음이 맞는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나와 몹시 친하게 된 엄마가 있었는데, 우리 아들의 절친의 엄마이다.
우리는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과 여전히 잘 모르겠는 내 아이의 성향, 교육의 방향 등을 나누며 빠르게 친해졌다. 더군다나 나는 그때 작은 베이킹 작업실을 열었었다. 그녀는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나는 사업에 대한 크고 작은 결정의 순간이 생길 때마다 조언을 구했고, 혼자 갑자기 많은 주문을 받아서 곤란할 때 도움을 받기도 했다. 늘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그녀를 믿고 의지했다. 울고 웃는 세월이 흐르면서 우린 아들 친구 엄마라는 형식적인 사이를 넘어 진정한 친구 사이로 서로를 대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사업을 접게 되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가 있었는데 깊은 고민 끝에 첫 번째 사업을 2년 만에 끝내게 되었다. 나름 많이 발전했고 이제 방향을 잡은 것 같은 시점이었는데 내 일보단 가족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용을 쓰며 2년을 밤낮없이 사업에 온 힘을 쏟았었다. 많이 지친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이후 나는 아이들을 위해 많이 노력했고 지친 내 몸과 마음을 위한 시간도 보냈다. 열심히 노오력 하는 것이 인생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님을 되새기며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 충분히 쉬었고, 모든 일을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며 나를 토닥여줬다.
덕분에 아이들도 조금 평안해졌고, 나 또한 괴롭던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집에 있는 것을 답답해하며 늘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아졌다. 큰 변화였다.
나는 여전히 그녀와 친하게 지냈다. 걱정이 있으면 고민을 나누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어떤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하든지 잘 들어준다. 그저 그런 공감이 아니라 조금은 예리하게, 때론 아픈 부분을 잘 집어낸다. 나를 돌아보게도 해주고, 방향을 잃지 않게도 도와주었다. 무엇보다 늘 나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비난하지 않고 위로하며 공감한다. 많이 친하지만 서로의 영역을 지나치게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나누는 좋은 사이다. 너무 칭찬이 길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는 그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언지 모를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내 마음속에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 마음은 뭔가. 어디서부터 오는 건가.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다행히도 난 지친 마음을 돌보면서 마음에 대한 판단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먼저임을 알고 있었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깨달았다.
그건 질투였다. 깨닫고 보니 우습고 어이가 조금 없기도 했다.
나는 집에 있으면서 나 스스로가 위축되고 아이들을 돌보면서 끝이 없는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마음은 오히려 어려움을 겪을 때는 잘 들지 않았다. 오히려 힘든 시간을 조금 지나 보낸 후 약간 여유로운 상태에서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내가 쉬는 사이에 그녀의 사업은 성장을 거듭했다. 자연스레 조금씩 바빠지는 그녀를 나는 잘 볼 수 없었다. 때로 만나면 나에게는 많고 많은 시간 중에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니 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었지만 그녀는 해야 할 일도 많고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았다. 시간을 쪼개서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약간은 섭섭하면서도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거다.
이 마음을 깨달은 나는, 어찌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솔직히 털어놓기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냥 나 혼자 알고 아닌 척 살아가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런데 한 사건이 생각났다.
그녀는 나를 만나고 나서 늘 내 생일을 챙겨줬다. 자연히 나도 생일을 챙겨줬다. 40이 된 나는 이제 거의 생일을 챙기지 않고 살았다. 부모님이나 아이들 생일은 챙겼지만 내 생일과 남편 생일도 대충 넘어가기 일쑤였다. 이벤트를 좋아하던 나였는데...
그러던 어느 해에 그녀의 생일을 내가 지나쳐버렸다. 분명 며칠 전에 기억했었는데 그 날을 그냥 지나쳐 버렸다. 다음날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어제 내 생일인데 그냥 지나쳐서 섭섭했다고, 자기 마음에 남을까 봐 그냥 털어버리려고 말했다고 했다. 이 나이가 되면 그런 사소한 섭섭한 것쯤은 드러내지 않게 마련이다. 괜찮은 듯 지나치곤 하는데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고 마음에 담지 않으려는 그녀가 신기하면서도 고마웠다. 얼른 커피 쿠폰을 보냈다.
그 날이 생각났다.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별일 아닌 일을 우리는 마음에 쌓아놓고, 상대방이 기억도 못 하는 퀘퀘 묵은 일로 마음이 상하는 것 아닌가. 나는 용기를 내서 이야기를 꺼냈다.
“사업이 잘 돼서 나도 분명히 기쁜데 잘 못 만나고 나는 집에 있다 보니 부러운 마음이 들더라고.”
“난 현준이 엄마가 부러운데? 애들이랑 산책도 하고 여유 있게 늘어져있는 게 너무 부러워.”
별 거 아닌 부끄러운 고백이었지만 그녀가 오해하지 않고 들어줄 거란 믿음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정말 별 일 아닌 일로 서로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있는 그대로. 아무 일 없이.
주위의 모든 사람과 이렇게 내 마음속에 이는 감정을 부끄러움 없이 터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감정만 나눠야 좋은 사이일 거라는, 나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나쁜 일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우리의 감정을 억누르고 편안하게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닐까.
마음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다. 사과 맛 사탕을 먹으면 사과 맛이 나고 딸기 맛 사탕을 먹으면 딸기 맛이 나듯이 어떤 일을 겪으면 자연스레 나타나는 나의 마음을 억누르지 않고 살길 바란다. 나이가 들수록 나의 감정에 솔직하길 바란다. 그것이 부끄럽지 않길 바란다. 세상에 부끄러운 감정은 없다. 부끄러운 내 모습도 없다. 그저 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