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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으로 들여다보는 나

왜 난 늘 가해자인가

한국에 살던 북한산 자락의 아파트.

15층에 살았었다. 이사를 들어가며 윗집 아랫집 옆집 작은 선물을 가지고 인사를 갔었는데 안타깝게 아랫집은 계속 부재중이어서 직접 인사를 못하고 지내던 중.

큰 아이가 두 살. 나도 뱃속에 둘째 아이를 임신했던 시절이었다.

두둥.

드디어 14층에서 올라왔다.

그 댁 남편분이었다.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저녁 6시쯤 벨을 누른 아저씨는

"발소리가 너무 큽니다. 아내가 임신 중인데 소음으로 더 예민해져서 잘 쉬지를 못해요. 신경 좀 써주시죠"

"아. 몰랐습니다. 주의할게요"

남들 다 하는 짧은 대화가 끝이 났다. 남편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기분이 매우 울적해졌다.

내 보금자리. 내 집 거실에서 아이와의 평범한 일상이 처음으로 방해받는 기분에 화도 났지만 '앞으로는 어쩌나' 하는 겁나는 마음이 더 컸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폐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하는 불필요한 '좋은 사람'병이 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다녀간 후부터 바로 두 살배기 아들에게 조심하라고 몇 번을 이르고 남편에게도 앉아서 놀라고 잔소리를 쏟아냈으며 그다음 날에는 임신 초기에 먹는 임산부 비타민과 정성스러운 메모와 내 전화번호를 적은 작은 쪽지를 그 집 손잡이에 걸어두며 이러한 나의 병의 심각함을 표현했다.

근데 어느 토요일 정오경이었다. 남편이 베란다에서 사과 하나를 부엌에 있는 나에게 도르르~굴렸다.

진짜 10초 후쯤 내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 뭐 굴리셨죠?" 아랫집 아저씨 목소리였다.

"네... 그.... 사과가 굴러 떨어졌네요."

"너무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어요. 좋게 말하니까 장난으로 들리세요? 이런 소리까지 다 들리는데 평소에 얼마나 시끄러운지 아시겠어요? 정말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매우 격앙된 아저씨의 공격에 나는 어안이 벙벙. 조심하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고는 엉엉 울었다.

임신 호르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낮 12시에 사과가 굴렀다고 이렇게 혼 날일인가.  남편은 엉엉 우는 나를 보고  바로 메시지로 " 저희 아내도 임신 중입니다. 조심한다고 하는데 이런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시니 적잖이 당황스럽습니다. 이제는 직접 연락 주시는 일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랑 얘기하시죠"라고  응대했지만 나는 정말 며칠이고 기분이 안 좋았다.

그 후로 엘리베이터에서나 복도에서 서로 인사도 안 하고 지냈고 나는 이렇게 저렇게 아랫집 사람들을 요령껏 피해 다니며 '착한 사람 '병을 고치지 못한 채 큰애와 남편만 또 쥐 잡듯 잡으며 지내고 있었는데 올레!

말도 없이 아랫집이 이사를 나갔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말도 없이 진짜 조용~히 그 젊은 부부가 이사를 가고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부부가 이사를 들어오셨다.

아랫집이 이사 오신걸 눈치챈 첫날 당장 선물 장착하고 인사를 갔는데 인자해 보이시는 할머니가 얼마나 고마워하시던지 내가 더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두 살짜리 남자아이가 있어요. 소란스러우실까 봐 걱정이네요. 혹시 너무 불편하시면 말씀 주시고 제가 혹시 소란스러울 일이 있으면 미리 말씀드릴게요. "그랬더니

"작은 아이가 뛰는 소리는 우리도 반갑죠. 건강하니까 그렇게 노는 거예요. 호호호"

아! 이분은 나를 구해주러 온 천사인가.

다음날에는 오히려 아이에게 주라며 선물을 사들고 오셨다. 이럴 수가...

그 후로도 엘리베이터에서 아들을 만나면 반갑다고 먼저 인사해주시고 친절히 안부를 물으시며

"큰 소리 안 나요. 아들이 얌전한가 봐"라고 나를 먼저 안심시키셨다.

'착한 사람'병은 더 '착한 사람'을 만나면 치유된다.


그렇게 아파트 생활을 하다가

헝가리에 왔다.

헝가리 첫 집은 1층(여기서는 지층이라고 부른다)이었기에 사실 층간소음에는 매우 자유로웠는데 우리 윗집에는 꼬마 둘이 살고 있었다. 30년이 넘은 오래된 나무 골조 집의 층간소음은 한국의 그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이다.

꼬마들이 저쪽 방에서 거실까지 걷는 소리, 뛰는 소리. 정말 이어폰 꽂고 내 귀에 들려주려고 그러는 것처럼 실감 났지만 나는 '착한 사람'병이 있어서 그런 소리 따위는 시끄럽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 내가 생각해도 나도 중병이다.

지층에 살아서 층간소음에서는 자유로웠던 듯 하지만 다른 글에도 적었듯이 층간소음은 아니었지만 이웃 어르신들께 복도 이용 문제로 억울하게 잔소리를 듣거나 입구에서 작은 텃밭 조금 밟았다고 한소리만 들어도 그날은 기분이 꽝이 되었다.

게다가 외국사람이라 그 억울함이 더해졌다. 억울하면 화를 내야 하는데 나는 슬퍼하고 괜히 가족들만 잡고 또 잡고 그랬다. 서러운 사건들을 뒤로하고 여기 생활 3년 차에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이 집은 3층 중에 2층. 다행스러웠던 것은 아랫집에 아들이 둘인 젊은 엄마가 살고 있었고 이 엄마는 아들들보다 더 활달하셔서 그렇게 밤에 파튀를 하시니 오히려 나에게 미안하다고 인사 오는 날이 더 많았다." 오늘 밤 12시까지 파티를 할 거예요. 좀 시끄러울 거라 미안하다고 얘기하러 왔어요" 덕분에 나는 아랫집은 신경 쓸 일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우리가 이사 온 후 1년이 지나고 아랫집은 집을 지어서 이사를 나갔다. 그 후로 아랫집은 텅텅 비어있고 우리는 1층 같은 2층에 사는 행복한 집에 당첨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싱겁지.

사실 아랫집에 아들 둘이 살 때 , 아이들이 집에서 와당탕탕 뛰면 뛰는 소리가 그대로 울려 들려왔다. 나는 착한 병이 있는 아줌마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뭘 재밌게 하나 봐 " 하고 그냥 넘어갔었는데 그렇다면 우리 집 우당탕탕 소리도 윗집으로 올라가는 건 많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우리 윗집에 대해 적자면. 이탈리아/ 헝가리 부부에게 두 아이가 있는 집인데 윗집은 펜트하우스 형태라 침실 및 모든 방은 꼭대기층에 있다. 그 집 막내를 만났을 때 백일 차였고 지금  그 아이는 막 두 돌을 지나서 정말 밤이고 낮이고 울어댔고 아이의 이갈이 시기, 젖 떼는 시기를 내가 먼저 눈치챌 정도였으며 윗집의 의자 다리 끄는 소리나 복층 계단을 오르는 소리는 뭐 늘 일상적으로 들리는 집이 었지만 누누이 말했지만 나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윗집 딸(5살)과 우리 집 딸(9살)은 일주일에 한 번은 양쪽 집을 오가며 잘 노는 플레이 친구이기도 하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아랫집이 빈 지 1년이 지나니 우리가 좀 느슨해지기는 했다. 집에서 테니스공을 튀기며 정오경에(이놈의 정오경!) 아들과 남편이 놀았던 지난 토요일

전화가 울린다. 윗집 엄마다." 그레이스. 지금 우리 아들 낮잠 자야 하는데 너네 집에서 들리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조용히 해주길 부탁할게." "어. 미안해. 아이 낮잠 자는 시간인걸 알았는데 내가 부주의했어. 다음엔 더 조심할게" 또 늘 하는 대화를 마쳤다. 그리고 5분도 지나지 않아 아들과 남편을 집에서 내쫓았다.

그 후로 1시부터 3시까지는 가능하면 발소리도 나지 않게 주의시키는 편이다.


아.


나는 1층에 살건. 2층에 살건. 15층에 살건 층간소음에서 자유할 수 없는 '착한 병'에 걸린 사람인 것이다.

혹여나에게 층간소음에 대한 불평이 들려오더라도 오히려 떳떳한 상황에서는 내 변명을 한 번이라도 내입으로 해도 될 만도 한데 그걸 못하는 정말 불필요한 '착한 병'에 걸린 탓에 나도 고생이고 우리 가족들은 좀 더 고생이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 게 공동생활공간에 유리할까. 아니면 서로 뻣뻣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조금은 뻔뻔한 사람들이 많은 게 공동생활공간에 좋을까. 개인에게 또는 공동에게는 다른 답이 도출될까?

이러나저러나 층간소음에 늘 가해자였던 나는 오늘도 억울함을 넘어 조금 슬픈 감정에 사로잡혔다. 흥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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