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먼저 헝가리에 도착해 쉐어홈에서 지내던 남편이 이제 집을 구해야 겠다고 매일 전화를 한다. 시차 8시간. 퇴근해서 아이들 저녁먹이고 씻기고 한숨 놓을 때쯤 영상통화벨소리가 울리면 우리 셋은 옹기종기 전화기 앞으로 모여들었다. 부동산 관계자와 남편은 더듬더듬 헝가리어로 대화하면 구경간 집을 이렇게 저렇게 보여주었다. 티비를 보는 것 같았다. 남편도 부동산 아저씨도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등장인물같았다.
2017년 2월 23일 저녁 그렇게 남편이자 아빠가 미리 구해둔 월세집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주택담보대출로 겨우 마련한 아파트에서 2년을 딱 살았는데 그 집을 팔고 우리는 50년이 넘은 열세평남짓의 방 하나 부엌 하나 거실하나 변기하나인 집에 도착한것이다.
티비속에 우리가 들어온 것 같았다. 남편은 정신없이 숨을 고르는 우리의 허기를 달래려 닭볶음탕과 미역국을 끓여두었다. 비릿한 미역냄새와 달콤한 고추장설탕소스 냄새가 어우러진 부엌에 앉아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9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종종 그날의 미역국과 닭볶음탕에 대해 이야기 한다.
배를 불리고 나서 집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짐을 풀다보니 헝가리의 오래된 집은 부엌이 분리되어있다. 부엌방이다. 어떤 집은 응접실.그러니까 식탁놓는 곳도 분리되어 있는 집도 흔히 볼 수 있다. 음식을 만들과 먹는 일상을 먹는 것과 관련이 없는 거실이나 현관과 정확히 분리해둔 것이 낯설었다. 우리나라처럼 거실과 부엌과 식탁이 연결되어 있는 양식은 미국식 부엌이라고 정확히 구분하여 언급하는 이나라의 가정문화가 신기했다. 그런데 살다보니 부엌과 거실이 같이 있을 필요가 있는 시기와 부엌이라는 공간에 머무는 시간과 중요도가 식구들의 나이와 환경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세번째 집에 살고있는 지금도 우리는 부엌이 따로 있어서 모두가 행복하다.
다들 알다시피 싱크대의 수전박스도 정말 작디 작다. 유럽살이 시작하는 분들의 가장 큰 애환이 배추 한포기를 씻을 수 없는 싱크볼 때문인데 배추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배추를 씻어 잠시라도 절굴 수 없는 것도 문제이고 그렇게 어렵게 김치를 만들었다쳐도 그 김치를 먹고 남은 찌꺼기를 싱크대에 흘려보낼 수 없는 배수구조는 더 큰 난처함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헝가리는 전식 본식 후식을 제법 정확하게 구분하는 식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스프가 일반적인 전식은 볼형태의 그릇에 서빙되고 일반적으로 건더기가 없고 거의 다 비우게 되어있으며(그래서 국과 밥을 같이 주면 국을 먼저 다먹고 맨밥을 먹는 손님들때문에 여러번 당황했었다.) 혹여 남더라도 싱크볼에 흘려보내지 않고 기름진 국물은 변기통에 버리는 일이 많다(처음에는 많이 놀랐었는데 싱크대 하수튜브가 정말이지 좁다는-스파게티 1인분 잡는 것만큼- 것을 알게된 세번째 집에서 완벽히 이해되었다.) 그리고 본식과 후식은 국물이 없는 형태의 음식으로 먹기때문에 잔반은 그대로 건식 쓰레기로 구분되니 키친타올로도 잔반처리가 가능하다. 그릇도 볼과 넓은 접시 작은 접시로 구분하는 이들의 식문화에서 싱크볼이 클필요도 설거지감이 쌓일 필요도 (식세기 돌리기 좋은 넙적한 형태의 그릇만 선호하는것도 이이유에서 였던 것)없으니 이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화식. 우리가 얘기하는 불을 쓰는 식사는 하루에 한번정도가 일반적이다.
아침도 컬러츠라고 불리는 식빵이나 간단한 샌드위치로 하고 점심은 대부분 학교나 직장에서 먹고
저녁만 집에서 먹으면 되는데 점심을 화식을 먹었을 경우 저녁을 샌드위치나 피자 등으로 간단히 먹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싱크대가 클 필요는 정말 없을 것이고 밥을 먹는동안 음식이 따뜻하게 유지되라고 뚝배지를 낸 다거나 가운데 화구를 두고 전골이나 솥뚜껑구이를 하며 즉석요리를 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식사시간은 정확히 분리하는 이들의 문화때문에 식사를 제공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공존하며 속도감있게 식사를 해야 하는 미국식부엌은 어떤 경우에도 필요없었을 이 나라사람들의 식문화가 그대로 담겨있던 오래된 첫 부엌이 생각난다.
(결국 쇼파도 없고 책상도 없던 우리는 이 좁은 부엌에서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티비도 보고 했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