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벤티달력에서 디데이가 시작되었다.
이미 마음은 크리스마스다. 집에서 BGMㅇ으로 크리스마스캐럴을 틀어둔 게 일주일이 넘었고 나는 2주 전에 이미 집안팎 크리스마스 장식을 마쳤다.
어제는 지각생스럽게 어드벤티 초콜릿 달력을 식구수대로 쇼핑했고-1일이 지나서는 일반적으로 어드벤티 달력을 세일한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다음날부터 케이크가 급 싸구려취급당하는 느낌이랑 비슷한가-시장에 가서 코소루도 하나 사다가 혼자 대림절 첫 초인 희망초에 불을 켜보기도 했다.
근데 내가 2주 전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사진을 찍은 SNS에 올린 것을 보고 헝가리친구가 '벌써?'라고 매우 당황스러운 댓글 보냈을 때 아직 내가 한국스러운 크리스마스를 기억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새까맣게 잊고 있다가 24일쯤 교회에서 발표회가 있으면 그걸 준비하느라 드문드문 크리스마스를 떠올렸고 24일 저녁에 교회로 모여들어 발표회를 참석하고 -낭만이 있던 시절에는- 선물교환 이벤트정도를 한 다음 그룹그룹 모여서 새벽송을 돌고 정작 성탄절 당일에는 낮 2시까지 늦잠을 자는 매우 임팩트 있는 이틀을 보냈었다. 물론 아이들을 키울 때는 아이들을 위한 선물과 이벤트를 준비하는 게 가장 큰 일이었던 듯하다.
헝가리에 와서 첫 크리스마스를 떠올려보았다. 일단 아이들이 학교에서 파티를 준비한다. 드레스코드를 맞춰 입고 크리스마스 겨울방학(일반적으로 22일쯤 시작해서 1월 첫 주까지 하는)을 하기 전에 간단히 씹을 것들을 준비해서 파티를 여는데 이때 꼭 마니또를 한다. 천사놀이라고 말하는 마니또 게임을 위해 선물의 상하한선을 정해두고 서로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데 신기한 건 이때 핸드메이드를 꽤 많이 준비했다는 것이다. 오! 낭만! 꼬물거리는 손으로 손수 만든 카드나 작은 기념품의 보관가능성이나 상품가치를 생각하는 자를 순간 상스럽게 만드는 그 정성~! 그리고 두 번째로 학교나 동네 공공기관에서 '신발상자'를 기부받는다. 빈 신발상자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요모조모로 채워 상자 위에 어떤 사람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타깃을 쓴 다음 기부한다. 이걸 준비하느라 신발을 샀다. -어이없는 과정이지만- 깨끗한 신발상자를 마련해서 민찬이는 또래 9살 남자라고 쓴 상자를 스스로 채울 수 있게 준비시켰다. 장난감과 학용품. 유통기한이 긴 비스킷이나 초콜릿 같은 간식과 장갑, 양말 등 월동용품으로 꽉꽉 눌러 담았다. 다은이도 자기가 받고 싶은 걸로 야무지게 만들어 상자를 포장해 학교에 가져다 냈는데 이렇게 모아진 선물상자를 사회복지 시설에 보내는 이건 참 좋은 문화다 싶었다. 이걸 알고 나서 나랑 남편은 장애인 기관을 수소문해서 겨울기부를 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신기하게 현금은 안 받으시겠다고 필요한 소모품 목록을 주셔서 같이 온라인카페활동하시는 분들과 2백만 원 상당의 수건과 침대시트를 기부하기도 했었다. 낭만의 흔적, 아날로그의 흔적, 숫자로만 쓸 수 없는 그. 무엇. 이뿐만 아니라 이즈음에서 식료품가게 계산대 옆에 눈에 띄는 조끼를 입은 분들이 보따리를 갖고 서계시는 걸 볼 수 있는데 내 식료품을 사면서 식용유나 설탕, 밀가루 등 늘 먹어야 하지만 유통기한은 길고 필수식품들을 하나씩 더 사서 기관에 손쉽게 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는 분들이었다. 이분들이 나타나면 손쉽게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도와주시는 것 같아서 반갑기도 했다.
12월 1일이 되면 초콜릿을 하나씩 까먹으면서 성탄절을 기다리는 재미있는 문화를 상업화한 어드벤티 달력사고 성탄절을 4주 앞둔 대림절이 시작되면 코소루의 첫 초(희망초)를 밝히며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시작하는데 곧 다가오는 12월 6일 성 미쿨라시 데이를 기념하는 게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겠다. 헝가리에 온 첫해 남편이 아르바이트로 작은 한국어학원에서 헝가리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는데 그 첫 그룹에 일흔 살이신 할머니가 계셨다. 얼마나 열정적이셨는지 매 수업마다 맛있는 헝가리 간식을 싸 오시고 그러다 공부했다면서 한국 간식을 만들어 싸 오시기도 하고 숙제도 두배로 열심히 하시는 놀라운 열정을 보이셨던 메리 커 내니! 그렇게 개인적으로까지 친하게 지내다가 아이들의 헝가리어 교습을 부탁드리기에 이르러 반년만에 메리 커내니와 남편인 빌라 바치는 우리에게 헝가리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셨다. 헝가리 문화를 잘 모르던 시절 할머니할아버지가 12월 5일에 일부로 30분이나 차를 타고 오셔서 저녁에 띵똥 벨을 누르시고는 긴~~ 모양의 초콜릿과 산타그림이 있는 꾸러미와 맛있는 쿠키(꿀을 많이 넣어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진저꿀쿠키-나중에는 직접 만들며 같이 크리스마스를 준비한 해도 있었다.)를 아이들 품에 안겨주셨다. 크리스마스가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인가 했는데 12월 6일이 산타클로스의 원조인 미쿨라스 성인을 기리는 날로서 깨끗한 신발을 창밖에 놓고 가는 아이들에게 장화발목모양의 긴 초콜릿과 선물을 넣어주는 찐 산타클로스데이를 기념하는 것이었다. (말을 안 듣는 나쁜 아이들에게는 산타와 함께 가는 못생긴 요정이 회초리를 갖고 온다는 ㅎ ㄷ ㄷ-이것도 긴 모양? ㅎㅎ디테일 무엇) 이게 ㅇ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감사하다고 받고 말았는데 다음날 아침 우리 집 현관 앞에 누가 둔지도 모르겠는 긴 초콜릿을 보고 한번 실감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는 어제 미쿨라시한테 무슨 선물 받았냐고 서로 자랑하느라 하루가 다 갔다고 입이 퉁퉁 불어 하교한 아이들을 보면서 두 번째 실감하고 동네 구청장들이 아이들한테 보냈다는 미쿨라스 꾸러미(빨간 봉투에 긴 초콜릿과 귤을 넣어주는) 보고는 세 번째 실감했다. 그렇다. 숫자로 환산ㅇ이 가능한 멋진! 선물은 미쿨라스가 가져다주는 것이므로 나도 이날을 준비했어야 했고. 12월 6일이 그날이니 그 전날 깨끗이 닦아둔 신발옆에 선물을 두었어야 하는 것이었던 것. 그다음 해부터는 놓치지 않고 두세 번 잘 준비했고 친구들것과 이웃들 들것도 미리미리 준비했었다. 시내에는 핀란드에서 산타할아버지가 오시기도 하는데 이것도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이 날 오신다는 것이지. 오셔서는 또 그 긴 초콜릿을 주고 가신다 ㅎㅎ. 정말 1년의 80퍼센트 이상의 초콜릿은 12월에 소비되는 것 같은 헝가리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정작 12월 22일이나 23일에는 진짜 나무 크리스마스트리를 준비한다. 동네마다 공터에 크리스마스 나무를 파는 장사들이 나타나 나무를 판다. 20일 즈음되면 아저씨들이 초록그물로 칭칭 감은 나무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걸 볼 수 있는데 정작 24일에 집에 장식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24일 밤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앉아 아기예수가 서로에게? 준 선물을 개봉하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선물교환) 의식을 진행한다.
그리고는 25일까지 먹고 마시는 일 년 중 가장 큰 가족명절을 보내는 것이다.
큰 아이가 4년째쯤에 울며 불며 이제 한국 가서 살고 싶다고, 외국에서 살기 싫다고 말할 때 한 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이것과 연결되는데 연중가장 큰 가족명절인 크리스마스에 친구들이 다들 할머니댁에 가서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케이크를 먹고 사촌들과 선물을 교환하고 자랑하는 모습에서 불현듯 인생의 첫 외로움과 이방인으로서의 쓸씀 함을 느꼈던 것이다. 자기도 할머니가 해주는 떡국 먹고 부침개 먹고 식혜 먹고 티브이보고 싶다고 했다. (사실 그 시절 내 헝가리어 과외선생님인 안드레아는 일 년 중 크리스마스가 제일 싫다고 했으니 분명 우리나의 최대 명절이 맞긴 한 듯)
12월 31일은 가족파티데이가 아니고 친구들과의 파티데이로 기념하고 크리스마스트리를 버리고-다른 종교달력의 크리스마스인 1월 6일- 아이들이 학교로 다시 등교하는 그날 까지는 이어지는 크리스마스시즌을 여덟 번이나 지냈는데도 난 아직 12월이 되기 전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것이니 아직 온전히 이 문화를 흡수하지는 못했고 이날만 되면 더욱 울적하고 쓸쓸해지는 우리 가족을 위해 2박 3일이라도 특별한 여행을 준비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정도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앞서 언급하지 않았는데 유럽은 크리스마스마켓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크리스마스마켓도 24-25일을 쉬는 것이 대부분이다. 왜냐고? 그들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방인의 적적함을 채우러 근처 나라의 크리스마켓을 돌아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시간을 잘못 맞추면 정말 적적함을 넘어 적막함까지 느끼기도 한 다음 함부로 나서지 않기도 하고, 아이들이 크더니 그 마켓마저 나랑 다니고 싶어 하지 않고 친구들과 나가고 싶어 하니 뭐 이젠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쩝
붙임
그런 의미로다가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나도 선물을 준비했었다. 처음 새해에는 유치원, 학교 선생님 들 선물과 내 학생들 그리고 선생님들, 그리고 한 해 한 해 우리를 챙겨줬던 고마운 이들에게 선물들을 준비했다. 없는 형편에도 선생님들 선물은 부담될 정도로 비싼 선물을 준비했었고 고마운 사람들에게는 주머니 구멍 날 만큼 분수에 안 맞게 그렇게 준비했었다. 그러다 사업을 시작한 후는 거래처 사람들 선물까지 70개가 넘게 준비해도 되는 분수가 넘치는 시간도 보내보았다. 선물로만 천만 원을 써본 해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롤러코스터 같았던 헝가리 생활의 여덟 번째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재작년인가 70개 넘게 선물세트를 사다가 문득 여기 첫해 어학원을 다닐 때 가난한 유학생 부부의 굶주린 배를 늘 따뜻한 미소와 넉넉한 인심으로 채워주던 중국뷔페 아줌마가 떠올라 마지막 세트를 곱게 포장해서 아들손에 들려 아주머니가 문 닫기 전에 얼른 갖다 드린 적이 있는데 그 미소가 지금도 가슴을 울린다. 고맙다고 고맙다고 하시며 마지막 남은 음식을 잔뜩 다시 포장해서 종이가방에 넣어주셨다. 첫해, 그리고 그해, 그리고 올해. 나는 그대로 인 것 같은데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