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 3월부터 시작한 낯설었던 외국살이는 그럭저럭 봄의 찬란한 날씨를 순풍삼아 수월하게 흘러가는 듯도 보였다. 사실 뭔가를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장상태였기 때문에 쉬운일은 하나도 없었지만 "여긴 이러는 건가보다"라는 그냥 이나라식을 이해하는 걸로 많은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못하는 걸, 나는 백일가까이 이어지고 있던 기저에 깔려있는 긴장과 스트레스 그리고 혼자서는 뭔가 할 수 없다는 대단한 무용감에 시달리다가 삼차신경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비타민처럼 진통제를 먹었다. 처음에는 충치때문인가 싶어 치약을 바꿔보기도 하고 치통치료제도 먹어보았지만 잠을 자다가도 일어날정도의 통증에 지쳐갔다. 순둥이 아들은 밤마다 경기하듯 일어나는 야경증 증세를 보였다. 다음날 아무것도 기억은 못해도 나는 흠뻑젖었다 마른 아이의 잠옷을 빨아야 했다. 그래도 이게 말도 안통하는 병원까지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할 일이라고는 생각도 안했다. 한국을 떠나면서 이미 '외국의 병원과 병원비'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약과 다른 방책으로 해결해보려고 끝까지 애썼다. 거의 매주 병원을 다니던 우리의 한국에서의 루틴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만큼 보이지 않는 심정적 장벽은 어마무시했다. 그러다 도무지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생겼는데 바로 둘째의 고열과 복통이었다.
토요일 오전부터 시작된 고열과 복통은 하루가 꼬박 지나도록 나아지지 않았고 진통제고 해열제가 들지 않았다. 일요일 새벽까지 밤을 꼬박 새고 도저히 어쩔 수가 없어서 보험사에 연락을 하고 병원에 연결해주십사 더듬더듬 전화를 했는데 일요일이라 연결할 수 있는 병원이 없다고 하며 응급실을 가라고 했다. 택시를 불렀다. 지역에 소아응급실이 있는 병원을 얘기하고 네식구가 같이 가는데 택시아저씨마저 응급병동을 찾지 못하신다. 그만큼 병원이라고 하면서도 병원같이 보이지도 않는 건물무더기 어딘가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인기척이 있는 건물을 두드려가며 물어물어 어린이 응급실을 찾았는데 간호사는 영어가 안되고 의사는 다른 아이엄마와 이야기 하느라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번역기를 급히 돌려 도와달라고 사정을 하자 아이를 간이배드에 눕히고 열을 재고 배를 촉진한다. 솔직히 오른쪽 아랫배 복통이 하루이상 이어지고 있었으므로 맹장을 진단할 거라고 생각하며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계속 아이의 배만 물러댄다. 그러더니 병실로 올라가란다.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벽칠마저 듬성듬성한 층고가 높은 투배드 병실에 우리를 넣고는 아무도 오지도 않는다. 이럴꺼면 집에서 아픈게 나았나 싶을 때쯤 말을 시키지 말라고 눈으로 레이저를 쏘며 들어온 간호사가 막대체온계로 아이의 열을 재더니 쇠숟가락에 해열제를 담아 해열제를 먹였다. 그러더니 잠시후 쟁반에 거무튀튀 빵한조각에 작은 보온병을 하나 준다. 그리고 그릇에 소박히 담긴 감자스프. 오늘의 저녁이라셨다. 아이는 지쳐서 잠이 들었고 이걸로 밥을 먹일 수는 없겠길래 큰애를 챙겨 집에 버스를 타고 돌아와 밥을 했다. 도시락을 싸서 병원에 가져다 놓고 큰애랑 다시 집에 와서 잠을 재웠다. 그렇게 이틀을 병원 밥셔틀을 했고 병원은 아이에게 포도당을 하나 걸어주고 이틀 해열제만 줬다. 삼일째 되는 날 그제서야 초음파를 하잔다. 지하에 어두컴컴한 복도 중간에 초음파실에 들어가 아이는 복부초음파를 받았다. 병명은 장임파선염이었다. 그래서 열이 그렇게 나고 오른쪽 하복부통증이 있었다고 했다. 이제 염증이 줄어서 열도 내렸고 복통ㅇ도 덜하니 집에 가라신다.
아.
맹장이라고 배를 안열어준걸로 감사해야 하는건가 스스로 나을 기회를 준것을 감사해야 하는가
아이와 손을 잡고 다시 빈그릇을 챙겨서 버스로 집에 돌아오기전 도무지 병원비도 어찌 수납해야 하는지 몰라 또 몇십미터의 달리기를 마치며 그시절에도 백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지불하고 털털 집에 왔다. 그이후로 우리는 더더욱 병원을 멀리하게되었다. 우리동네에는 사설 병원이 있었는데 병원엣 한국인 통역가를 따로 고용해서 나같이 병원 공포가 있는 사람들을 돕기는 했는데 20분가량의 진료만으로도 20만원 상당의 병원비가 청구되는데다가 한국어통역을 붙이면 4만원정도 추가 비용을 결제해야했으므로 나는 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이중 공포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피부염이 생겼는데 두녀석이 같이 시작되었고 엄마표진단에 의해서는 분명 항생연고가 필요한 제법 단순한 전염가능성이 있는 피부염이어서 아이들을 통역사 삼아 공부해간 메모를 들고 병원에갔다가 그 병원에서 모진 무시와 수모(영어도 헝가리어도 잘 안되면서 통역서비스를 요청안했다고 얼마나 무안을 주고 무시를 하던지)를 겪고는 그 병원에는 다시는 방문하지 않게 된 일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말 일년 한번씩 가서 총 네번 가면 많이 간 것 같은 해살이를 하게 된것이다. 한국에서 장기체류보험을 가입하고 이용하고 있었는데 청구할 영수증이 없었다.'감기에 걸려서 병원가면 3일만에 낫고 집에 있으면 사흘아프다.' 라는 말을 팍팍 실감하면서 엄마표 진단과 홈메이드 처방으로 아이들과 우리는 모든 전염병들과 면역질환, 감기와 병치레를 이겨냈다. 결국 8년이 지난 우리집은 한국에서 갖고온 기초 약들과 파스, 그리고 진통제로 든든한 가정의원이 된 셈이다.
물론 골절과 시력검사, 치과 관련 은 우리도 병원을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나도 싱싱카 타다 떨어져서 무릎뼈가 부러져서 MRI를 찍은 일도 있고 둘째는 인대파열로 보조기를 다느라 정형외과도 가고 지금은 치아교정도 1년넘게 하고 있다. 그리고 남편의 등허리쪽에 큰 울퉁불퉁한 손가락 두개만한 점이 생겼을때는 또 한번 어쩔 수 없이 피부종양과에 예약해서 진료를 받았는데 검사만 한다더니 손바닥만하게 살을 파놓고 꼬매주지도 않아서 거의 한달 넘게 소독하고 염증이 될까봐 조심해야 했으며 지금도 손바닥만한 상처를 얻은 매우 상식적이지 않은 처치를 받은 일도 있었지만 그 전체 횟수를 다 해도 8년간 10회정도밖에 안된다. 나나 아이들 다 독감도 다 집에서 이겨냈고 코로나도 두번씩을 다 걸렸었는데 그마저도 셀프키트와 해열제로 병원방문없이 지나갔다.
병치레 많은 유소년기, 코로나2년 을 이렇게 외국에서 지내며 다시한번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 절로 칭송이 나오기는 하지만 어쩌면 약도 병원도 우리가 필요이상으로 자주 접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면 병원에 대한 이정도의 높은 벽은 또 좋은 점으로 적용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과 헝가리의 평균수명을 보면 한번도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한국수명이 헝가리의 평균수명보다 7-8년 이상 길다. 우리는 계속 헝가리의 의료시스템에 맞춰서 살게 될까? 지금도 사실 확신은 없지만 병원은 또 안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