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 리뷰
요즘엔 책을 거의 대여해서 읽는데, 대여해서 완독한 후에 "아, 이 책은 진짜 소장가치가 있다. 사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 간혹 있다. 제목부터 마음에 깊이 와닿았던, <나는 더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 가족 관련 임상 사례 및 해결책이 기록된 국내 대중서적이다.
해외의 심리상담이론이 더 오래 되었고, 아무래도 해외서적 중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내출간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의 검증을 받았을테니 비교적 그 책의 전문성도 보장이 되었다. 반면, 국내의 대중서적은 완전 비전문가가 자기계발서 수준으로 쓴, 혹은 "그래도 서로 사랑하세요" 이 따위 문제 해결에 일언반구 도움도 안되는 무슨 천사표 나부랭이가 너무 판을 쳐.. 아프니까 청춘... 이딴 말 하나도 도움 안되...
그래서 국내 서적을 볼 때는 저자의 프로필을 유심히 본다. 저자 프로필에서 어느 정도 검증이 되었어도, 책을 볼 때는 살짝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본다.
다행히 이번 책 선정은 성공적이었다. 오랜만에 너무 좋은 책을 발견했다. 이 책 왜 이제서야 발견한건가요...
칭찬은 여기까지 하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국내 임상 사례이다보니 공감되는 내용이 많다. 부모와 자녀 관계, 자녀간에도 성별로 인한 구분, 결혼 후 남녀 관계 및 고부관계 등이 매우 한국적이다보니 각각의 임상사례가 다 내 이야기같았다. 특히 한국 드라마의 억지 설정(극한 갈등 후 급격한 해피엔딩, 예비며느리를 매우 못살게 굴다가 결혼 후 큰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며느리를 사랑하게 된 시어머니 등)은 현실에선 불가능하다는 구절을 읽을 때에는 정말 통쾌했다. 한국 드라마가 얼마나 가부장적 신화에서 그려진 것들인지 새삼 느껴졌고, 늘 싫어했지만 한국 드라마 진짜 더 싫어졌다. 현실에서의 가족 싸움은 얼마나 지지부진하고, 반복되고, 끊이지 않는 문제인데 말이다.
또 하나 소소한 장점은, 해외 임상서적을 읽을 때는 이름이 맨날 외국어(엘리자베스, 클로이, 폴 등등..;;)로 나와서 몰입도를 다소 떨어뜨렸지만 이 책은 사례 주인공들 이름도 다 한국어라 술술 편하게 읽힌다.
나는 그동안 별로 화목하지 않은 나의 가족관계를 외부에 얘기할 때 죄책감을 가지기도 했다. '이건 정말 내 얼굴에 침뱉기일까?' 싶고, 정말 중요한 순간에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은 가족밖에 없을텐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렇게라도 내 숨통을 틔우지 못했다면 참 삶이 버거웠겠다 싶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톨릭학생회를 하면서, 사회운동을 하면서, 떼제모임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성인이 되어 새로 "만든" 가족이다. 그들은 먼저 나에게 그들의 아픈 가족사를 커밍아웃해주었고, 나 역시 '이들에게는 내 아픈 가족사를 얘기해도 되겠다'는 안전망을 구축해주었다. 그럼에도 더 아픈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애쓰고 투쟁하는 선한 사람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원가족에서 분리될 수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우리를 양육하느라 본인의 꿈을 펼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우리에게 대리만족을 요구한다. 나는 이 대학을 나와 이 연봉을 받고 산지 10년이 넘었는데, 엄마는 여전히 내가 재수를 했으면 더 좋은 대학에 갔을 거라는 얘기를 한다. 여전히 지금의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음악치료를 전공하였고 영어와 중국어는 취미 수준으로 활용할 뿐인데, 아직도 나에게 중국어로 입사 가능한 회사 정보가 있을 때마다 링크를 보낸다. 나를 음악치료사로 인정한 적이 단 1시간이라도 있기라도 할까? 단언컨데 없는것 같다.
사실 엄마가 일을 그만둔 진짜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라 엄마 능력이 거기까지였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힘들었던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엄마 인생의 해결하지 못한 문제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자신을 최고라고 생각한다. 커가면서 점차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때달아가고, 실제 나의 모습과 내가 바라는 내 모습 사이의 간격을 좁혀 나가며 균형 잡힌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런데 부모가 아이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거나 성공만을 강요하는 경우, 이런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
아이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훨씬 넘어서서 무리한다. 아이의 성장은 온통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시간으로만 채워질 뿐이다.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알지 못한채 성공의 달콤함에만 매료되어 만성적인 자기 박탈감에 시달린다.
- P98
나는 부모의 과한 기대 속에 너무 무리한 삶을 살아왔다. 음악치료사를 선택한 것은 분명 부모의 기대에 반하는 길이었지만, 대신에 "음악치료사도 직장인 못지 않게 돈 벌수 있어요!"를 입증하기 위해서 24시간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는 둥 얼마나 내 자신을 학대하는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단 30분도 아껴가며 일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나고, 결혼이란 매개 덕에 엄마와 따로 살게 되면서 비로소 그 압박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내 안의 아픔은? 분노는? 개운하지 않은 이 느낌은... 여전히 숙제이다.
행복해지고 싶은데, 가족이 자꾸 나를 아프게 하여 괴로우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Page scrap] p116,165,189,184,197,205,212,253,257,262,284, (상단)121,203,247,259,265,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