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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de Sep 18. 2018

아이는 여자가 더 잘 키운다고?

통계에 기대어 규정하는 오류

요즘 즐겨듣는 가족 상담 관련 팟캐스트가 있다. 전반적인 내용은 도움이 되는 편이지만, 가끔씩 기존의 논문이나 통계에 의존해서 "그래서 여자는 이러하다", "남자는 이러하다"라고 할 때마다 벙 찌게 된다. 성별 심리분석을 해서 여-남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나왔을 때, 그게 선천적인 것인지 사회적인 맥락에서 다르게 훈련된건지 그 논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단 말인가?


오늘 들은 방송에서 내가 기가 찼던 부분은, 여자가 남자보다 육아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많은 통계가 있으니, 남편에게 육아에 협조하라고 하기보다는, 내가 아기를 돌보는 동안 달달한 케이크를 사다주라고 요청하는 것이 나를 위해 더 좋다는 부분이었다. 남자에게 '너가 무슨 애를 돌보니, 육아휴직 할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오거라' 고 하는 기성세대의 인식을, 무려 여성 상담사가...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분노끓...)


물론 그 상담사는, 독박육아로 괴로워하는 여성 사연자를 위로해주고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여자의 숙명이려니...'하면서 참고 또 참아서 남는 게 뭐가 있는가? 통계 수치만 보고 "어머, 여자는 이렇대" 에서 끝내면 찌라시 기사 수준의 편견만 더욱 양산할 뿐이다. 참으세요, 여자는 위대해요, 엄마는 '더' 위대해요, 라는 식의 얄팍한 말로 고통을 참으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어떻게 더 잘 이야기하여 함께 육아를 해나가는 방향으로 만들지 현실적인 팁을 주어야 마땅하다. 


더 이상 도저히 못 들어주겠어서, 이 상담사의 제안에 반박할만한 논문을 찾아보았다. 위와 같은 통계가 나온 논문은 찾지 못했지만 대신 더 좋은 책을 하나 발견했다. 책 이름은 <나쁜 아빠 - 신화와 장벽> (이학사 펴냄) 이다. 미국에서 1999년에 출간된 책임에도 20년이 지난 한국 사회에서 추천하고픈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남성이 육아를 잘 못하는 것은 선천적인 탓이 아니라 사회의 편견과 장벽 때문이다. 예비엄마를 위한 육아교실은 많은데, 예비아빠를 위한 교육은 거의 없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도, 아버지가 교육기관이나 병원에 가면 무시당한다. 드라마나 영화, 동화에서도 아빠가 자녀와 소통하는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주로 화목한 아빠와 자녀 관계는 엄마가 죽거나 사라졌거나.. 여튼 엄마가 부재중일 때에만 척박한 환경에서 비로소 돈독해지더라)


통계상으로 여자가 아이를 더 잘 키워왔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건 대부분의 여자가 결혼 이후에 더 이상 사회생활을 안 했을 때이고, 남성 육아휴직이 없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모두 과거형일 뿐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여성군인, 여성경찰관, 그리고 남성보육교사, 남성간호사... 걸크러시 여성, 미소년같은 남성, 귀여운 남성, 멋있는 여성 등... 더이상 여성과 남성의 성격이나 직업, 취향 그 모든 것이 성별분업적이지 않다. 그런데 왜 육아라고 다르겠는가.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이루어지지만 아이가 10개월 이후에 세상으로 나왔을 때에는 더 이상 엄마'만'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이 때부터는 부부가 힘을 합쳐 육아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남자가 육아를 못할 이유가 뭐야. 초등학교때부터 성별 차이 없이 똑같은 과목 배웠고, 거기에 +육아 과목 추가되었을 뿐인데 말이다. 여자고 남자고 동일한 시점에 엄마아빠가 되는데 말이다. 누구는 기저귀 갈아봤나... 다 처음이지. 다 해보면 된다. 겁 먹지 말고. 다 해보면 된다. 


남자들이여, 기존의 통계는 다 사회의 인식에 따른 짓눌림이었고, 당신들도 충분히 육아 잘 할 수 있어요. 힘을 냅시다.

여자들이여, 남자들에게 편히 아이를 맡기세요. 당신들이 더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뭐 얼마나 더 잘하겠습니까. 아이의 절반은 나이고, 절반은 남편입니다. 편히 믿고 맡기세요.


'독박육아' 라는 단어. 언젠가는 저 멀리 역사 속으로 사라지길.



P.S
1. 논문에서 "결론" 보다 "논의" 가 중요하다.. 

2. 나이 많은 상담사라고 다 보수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고정관념과 전근대적인 사고를 가진 상담사를 만나지 않도록 조심하자. 되려 상처 입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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