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혼은 내꺼야
삶의 목표에서 결혼을 지워버렸던 약 5년의 세월 동안, 나는 남부럽지 않게 자유로운 삶을 만끽했다. 얼마 되지 않았던 적금도 깨버리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무조건 비행기표를 끊었다.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돈만 있으면 되었다. 밤새 클럽에서 놀거나, 과음(또는 폭음...)을 하더라도 나를 막을 사람이 없었다. 한편, 이러한 나를 매우 걱정하여 만날 때마다 결혼 얘기를 꺼내고 결국 싸움으로 치닿기 일쑤였던 부모님과는 한동안 연락을 끊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자유를 '쟁취'했다.
자유의 절정에서 결혼을 선택하다
결혼은 어디까지나 내 의지이고 선택이었다. 적당히 나이가 차서, 혼기가 되어서라는 말은 가당치도 않았다. 평생을 함께 할 짝꿍을 정하는 것은 20대에 이루어질 수도, 혹은 50,60대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혹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주위에 혼자 사는 멋진 언니들을 많이 보아와서, 그 언니들을 롤모델 삼아 자유로운 싱글여성으로 늙어가는 것도 꽤나 행복할 거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30대에 평생을 함께 할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께서는 "네가 드디어 정착을...!"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혼자였을 때도 충분히 안정되고 정착된 삶이었다. 지금은 혼자 즐기던 자유로움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같이 산다는 차이가 생겼을 뿐, 내 성향이 달라진 건 아니다.
다들 결혼을 하면 자유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혼자서도 잘 논다. 결혼을 한 이후에도 '결혼했으니까 이래야 돼, 저래야 돼'라는 명분이 없이 여전히 각자의 삶을 존중해주고,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함께 즐거운 생활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성세대들에게 흔히 듣던 "결혼하면 끝이야"라는 말 따위는 우리에겐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결혼하면 끝이야?
나 역시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다. 두려움의 상당수는, 결혼이 "여∪남"이 아니라 "여∈남"이 되었던 주위 선례들 때문이었다. 또한, 결혼을 함으로써 이 한 명의 남자 뒤에 추가적으로 챙겨야 하는 가족(?)이 늘어나는 이 황당한 결혼제도가 너무 싫었다.
짝꿍이 처음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이러한 거부감을 설명했다. 여자만 일방적으로 남자 집에 가서 남자의 조상들을 위한 제사상을 차리고, 명절상을 차리는 것이 싫다. 명절 때 남자 집에 먼저 가는 것이 싫다. 나는 지금처럼 명절마다 여행을 가거나 쉬고 싶다. 놀랍게도, 이 모든 것에 내 짝꿍은 "그게 뭐 어려운 일이야?"라며 흔쾌히 OK를 했다. 결혼 전에 이 정도만 합의한 것만으로도 꽤나 괜찮은 출발점이 되었다. 첫 명절에는 남편 집이 아닌 우리 집에 먼저 방문했고, 부엌일은 공평하게 둘 다 설거지만 하고 돌아왔다. 각자의 친정이 딱히 멀지도 않으니 잠은 자지 않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고, 성묘 등에도 모두 불참했다. 난 이 남자랑 결혼한 것이지 이 남자의 집안과 결혼한 것이 아니니까.
결혼 이후 한 번의 추석과 한 번의 구정을, 무사히 '명절 증후군'이란 걸 겪지 않으면서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추석에는 항공권을 끊었다. 결혼 후에도 서로의 마음을 1순위로 헤아려준 덕에 우리는 여전히 알콩달콩 연인스러움을 유지하며, 자유롭게 살고 있다.
고통을 대물림 하려는 사람들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되묻고 싶다. "야~ 결혼 왜 해, 결혼하면 끝이야"라고 했던 기혼자 선배들에게. 그럼 본인들은 뭐 때문에 그토록 끄트머리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지 말이다. 참 이상하다. 결혼뿐만이 아니다. 취업을 하거나, 출산을 하는 등의 새로운 상황에서 기 경험자들은 꼭 "캬, 고생 시작이네"라는 말을 던지는 것을 잊지 않는다. 마치 자신들은 그 고통 다 겪어봤고, 나보다 훨씬 힘든 경험을 했던 사람임을 강조하듯이 말이다. 앞으로 더욱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그 쉬운 축하 한 마디를 하기가 그렇게 심사가 뒤틀리고 싫을까.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은 명절때마다 상차리느라 항상 앓아누웠으면서도, 정작 내가 명절상을 안 "차려드렸다"고 하니 '못 배운 며느리라며 욕 먹겠네', '나까지 욕먹겠네'라며 부족한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이다. 아마도 엄마는, 명절이 끝난 뒤에 내가 엄마에게 조르르 달려가서 "시댁때문에 힘들었어요 엄마ㅠㅠ 엄마도 그랬죠?" 라고 하길 기대했던 것 같았다. 나에게 앞으로의 결혼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참견하고 싶은데, 내가 자꾸 엄마와 다른 결혼생활을 해내고, 명절 마저도 평화롭게 밥 한끼만 먹고 왔다는 말에 다소 허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는 명절 때마다 숨이 죄여온다는 엄마 및 사촌언니들에게 말한다. 외식하지 않으면 안 가겠다고 선언하라고. 이 고통은 반복하면서 우리들끼리 넋두리하고 있을게 아니라, 결혼할 동생에게 '너도 내꼴 나겠네 쯧쯧' 할 것이 아니라, 이걸 어떻게 고쳐나갈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고.
결혼 이후의 행복 쟁취하기
내가 "나 이거 싫어"라고 말하지 않으면 주위에서 알아서 바꿔주지는 않는다. 이미 그들에겐 훨씬 편리하고 익숙한 방법이기 때문에 내가 싫다고 100번 말해도 겨우 바뀔까 말까 한데, 적당히 명절 즈음에만 좀 말하다가 또 참고, 명절 직후에 남편한테 화풀이하는 것만으로는 개선되지 않는다.
내 행복은 내가 만들어가야지, '남편이 날 위해주길 바라며...' '시가 부모님들이 날 좀 더 배려해주길 바라며...' 생각만 했다가는 결코 달라질 수 없다. 내 행복의 주체는 나이지, 가정 내 여성의 독립에 대해서조차 남자의 힘에 의존한다면, 결코 완전한 독립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무조건 가사를 5:5 분담하라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사정이 다 다를테니까. 하지만 우리집 같은 경우 절대적으로 5:5 를 유지하고 있다. 나도 일하는 여성인데 내 가사분담량이 많아지면 분명히 억울함이 생길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꼼꼼이 분배하였다.
내 결혼이고 내 삶인데,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 나는 결혼 이후에도 여전히 '나'이다. 내가 참아서 생기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결혼이라면 빨리 잘라버려야 한다. "힘들어". "너넨 결혼하지마" 하면서 꽃다운 청춘을 흘러보내지 말고. 결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거다. 하면 한대로 잘 살면 되고 아니면 말면 된다. 나는 결혼을 선택했으니 최대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 결혼생활의 주인은 나이고, 내 결혼은 내 것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