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좋은 영화를 우리나라에선 고작, 로맨틱 코미디 정도로 소개했다니! 미국에서는 이 영화로 온갖 상이란 상은 다 받은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쓴 홍보문구는 "재생률 100%! 연애세포 복구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눈치없는 이.남.자. 정말 답이 없다?! 연애세포 완전 파괴, 복구확률 -200%."
이런 류였다... 다들 단순한 로코물로 봤을듯 ㅜㅜ
이건 연애세포가 사라진 것도, 눈치가 있고 없음의 문제도 아니다. 주인공 남자와 주인공 여자는 모두 아팠다. 코믹하거나 희화화할 수 있는 아픔이 아니었다. 아내의 불륜 장면을 목격한 후 정신적 충격을 받아서 환청 및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남자와, 남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을 학대하는 이상행동을 보이는 여자.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고 힘들어하는 그들에겐 단순히 '연애세포'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아픔을 위로해줄, 공감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 영화는, 너무나 큰 상처를 입은 여성과 남성이 '댄스'라는 매개로 그 상처를 극복하는... 가슴 저릿하고 따뜻한 이야기이다.
아카데미 8개부분 노미네이트작에 고작 이정도 문구라니;;;
원작 포스터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love hurts. 사랑에 상처입고, 사랑에 아픈 두 여남의 표정이 스치운다.
펫은 아내의 외도 장면을 바로 앞에서, 심지어 자신과 아내의 결혼식 음악이 깔린 채 외도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아내를 미워해도 부족할 판인데, 정신병원 퇴원 이후에 펫은 도리어 아내를 그리워하고,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려고 한다. 사실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아내가 아니라,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기 전의 안정된 자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가 그립다고 말하는 그는 현재 정신적으로 매우 아프고 힘든 사람이다. 쓰레기봉지를 입고 달리는 모습도, 쓰레기처럼 피폐하고 너저분해진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티파니도 아프다. 티파니는 남편과 한동안 섹스리스였는데, 남편이 나름 관계를 회복하고자 예쁜 속옷을 사오는 길에 차 사고로 세상을 떴다. 티파니 역시 남편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마음이라면 다른 남자와 관계를 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겠지만, 오히려 "나의 섹스리스 생활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에 대한 자해행동을 하듯이 문란한 성생활을 하면서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인다. 애도나 상실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티파니 역시 정서적으로 매우 아프다.
주위 사람들은 이러한 둘을 위로해주기는 커녕 혐오와 멸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들의 아픔은 위로받지 못하고 점점 더 일그러졌다. 이러던 중에, 둘은 서로가 배우자가 없고, 주위의 비슷한 시선을 받으며, 정신과 약을 복용중이라는 것에서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고,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되면서 사랑하게 된다.
우울의 주 특징은 암울한 과거나 현재에 시선을 머무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다행히도 티파니는 비교적 미래를 향해가려고 노력중이었다. 자신의 재능인 댄스실력을 갈고 닦으며. 티파니가 펫에게 파트너로 함께 해달라고 요청한 덕분에 펫 역시 점차 댄스 연습 이후 매번 피곤에 찌들어 잠들면서, 환청과 악몽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매개를 찾았다.
이 영화에서 공식적으로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은 펫과 티파니 뿐이지만, 주위 사람들도 사실 다 문제가 있다. 펫을 깍아내리며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형, 펫을 취재하겠다고 걸핏하면 찾아와서 무례한 질문을 일삼는 이웃집 청년, 스트레스 과다를 호소하는 펫의 친구 ...
상처를 지울 수는 없다. 그래도, 상처를 이겨내며 살아가고, 사랑하게 된 이들이 너무 아름답다. 이 영화는 과거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큰 상처를 어떻게 이겨냈고, 어떻게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는지를 그려준 영화이다. 한국에 이 영화를 들여온 사람들이, 이 영화를 단순히 연애세포나 눈치없음 정도로 소개한 것을 반성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