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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de Dec 25. 2018

콩깍지의 유효기간

알콩달콩 결혼이야기

짝꿍이 역대급 음주를 하고 들어왔다. 그래봐야 맥주 3-4잔에, 2차로 와인을 한잔 했다나. 그래도 평소 치사량인 맥주 1잔을 넘겨버렸다. 집에 오자마자 반쯤 감긴 눈으로 쏜살같이 샤워를 한 뒤, 대뜸 바닥에 뻗어버리더니 그대로 꿈나라로 직행해버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면 절대 안 귀였겠지만) 처음이라 좀 귀엽기도 했다. 원래 짝꿍이는 술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이란 걸 알기에, 오히려 이번 기회에 술이 주는 알딸딸함과 즐거움을 맛보았으면 하는 기대도 했다.   


내 짝꿍은 술을 매우 싫어함에도, 평소 내가 술마시고 들어오면 다음날 북어국까지 끓여주는 섬세한 사람이다. 차라리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하면 모르겠는데, 오히려 더 챙겨주니 미안해져서 요즘엔 나 역시 술 마시다가도 적당한 시간이 되면 귀가하는 버릇이 생겼다.(흑)     


예기불안에 종종 휩싸이는 나는, 행복을 만끽해도 부족할 이 시간에 때때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불안감을 스스로 조장한다. 나중엔 더 이상 사랑하게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중엔 모든 것이 미워 보이면 어떡하지? 등등...  그 불안감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예방한답시고 짝꿍에게 행여나 나중에 미워질 것 같은 행동을 미리 얘기하고, 있지도 않은 일에 대한 잔소리, 언론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남성에 대한 과다 감정이입을 할 때가 있다.     


곤히 자고 있는 이 짝꿍을 보며 생각했다. 그럴일 없겠지만, 행여 나중에 미워지더라도 노력하자, 그 때는, 이 글을 보면서 ‘이런 날도 있었는데’ 하면서 좀 더 마음을 가다듬자.라고.     


같이 살면서 보니 확실한 건, 콩깍지 유효기간이 최소 2년은 넘는 것 같다. 아직까지 벗겨지지 않은 것을 보면. 하하하


짝꿍이의 북어국만큼은 아니지만, 결혼 후 처음으로 다림질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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