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목표는 적당히
지난 10여년간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놀았다. 그 에너지는 특히 술자리에 가면 빛을 발휘했다고.. 한다. 뒤풀이라는 말만 들으면 눈에 총기가 돌고 업무 피로도 번쩍 가시며, 마치 숙면을 취하고 일어난 듯 잠도 번쩍 깨고, 평소에 1-2천원은 아낄지언정 과음으로 인한 택시비 1-2만원 지출에는 무덤덤해지는 환각작용이 일어나곤 했다.
뒤풀이에서 내가 남들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건, 나조차 상상을 할 수 없었다. 뒤풀이에 내가 빠지면 섭했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행복했거니와, 술을 밤새 마시는 것도 좋았다. 특히 20대 중반까지는 친구들과 아침해를 보며 해장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았다.
나는 그동안 나의 건강을 과신했다. 물론, 간이 비교적 건강해서 그 정도를 버텨왔는지도 모르겠다.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을 마셔서.. 점차 마비가 되었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쨋거나 10여년을 그렇게 살았다는걸 돌이켜보면 참 대단하다. 놀고싶은 흥이 100%라면, 나는 150%를 끄집어내어 밤새 놀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고, 그 열정을 받춰주는 내 주량이 뿌듯했다. 그렇게 20대에 내 열정(밤샘 에너지와 과음)을 쏟았다.
사실, 그때는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력이 뒷받침해주었던 것 같다. 그것은 요즘의 내 모습이 증명해주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밤새며 술을 마시고 낄낄대는 친구보다 차 한잔 마시며 5-6시간 수다떠는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술자리를 가질 필요가 없게 되자, 요즘에는 집에서 맥주 한캔 마시면서도 취기가 오르는 나를 발견한다. 아, 한모금씩 음미하다보니 맥주도 독한 것이었어... 이걸 부어라마셔라 했었다니. 새삼, 그동안 나의 '술부심' 때문에 고생했을 내 몸뚱아리들에게 미안해졌다.
그래서 올해 큰 결심을 했다. 지난 10년간 혹사시킨 내 몸이야 어쩔수 없지만, 이제라도 건강을 위해 노력하기로 다짐했다. 술은 많이 줄이고, 운동을 꾸준히, 그리고 건강보조식품을 추가로 먹는 것이다.
100%의 에너지가 있을 때 마지막 한방울까지 탈탈 써버리는 나와 달리, 가지고 있는 힘의 60%정도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숙면을 위해 아껴두는 짝꿍은 올해도 별다른 결심을 하지 않았다(<-순전히 내 기준...).
나는 짝꿍에게, "내가 이렇게 큰 결심을 했는데 넌 왜 가만히 있느냐! 나는 이제 운동도 할 거고 술도 안 먹을거고 오메가3도 사먹을건데 넌 뭘 할건데?"라며 갑자기 건강전도사처럼 뻐겼다.(지금 생각하니 진짜 세상손발오그라듬...) 짝꿍은 늘 그렇듯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난 늘 건강하자노..."라고 말한게 전부였다.
그 결과는 오래 지나지 않아서 드러났다.
나는 예전처럼 '과'하게 내 몸을 혹사시키며 놀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서, 결국 또 '과'하게 내 몸을 혹사시키며 건강타령을 해댔다. 안 하던 근육 운동을 (빡시게) 하고, 아침엔 유산균약, 점심엔 오메가3, 저녁엔 비타민C, 비타민D, 한의원에서 팔랑귀로 맞춘 보약성 한약, 게다가 작년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처방받았던 불안장애약까지 (그때는 약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안 먹어놓고..) 복용하기 시작했다. 아...적어놓고보니 내가 봐도 정말 또 과했구나..
지난 일요일 저녁, 짝꿍과 고기를 먹은 후에 "오늘은 고기를 먹었으니 오메가3은 안 먹어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다가 결국 못 참고 2알을 먹고, 또 한약을 먹은 뒤에 뭔가 명치 끝이 싸르르르 아파오는 느낌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나는 지금 3일째 침대와 한몸이 되어 죽 신세다.
술도 안 먹었는데 증상은 딱, 숙취와 같다.
난 왜 이렇게 항상 모 아니면 도를 달려갈까. 그저 평온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었던 것인데, 나도 모르게 '건강'을 향해 또 /달리기/를 하고 말았다. 늘 '중도', 혹은 '쉬엄쉬엄', '적당히'를 표방하는 짝꿍의 모습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가만히 보면 짝꿍의 말이 삶의 진리이고 인생의 해답이다. (혜민스님과 같이 사는줄...)
올해의 목표는 건강이고 나발이고, 뭘 하든지 적당히 하자, 뭘 하든지 과유불급(過猶不及),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못하느니만 못하다...는, 네 글자를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