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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포동굴 Nov 15. 2021

내 집 짓기의 꿈-2. 아파트 공화국

내 주거 역사 훝어보기

집, 내 시간이 쌓여진 소우주


EBS 다큐 <건축탐구 집> 을 즐겨보는데, 그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된 건축가 임형남, 노은주 공동대표가 쓴 책 <집을 위한 인문학>이 있다. 책의 서두에 이런 표현이 나오는데


"집은 생각으로 짓고 시간이 완성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 같은 것입니다. 집에는 가족이 나누던 온기와 생활의 흔적과 집에서 펼쳐질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담깁니다. 혹 사람들이 집을 떠나거나 그 집이 여러 가지 이유로 사라지게 되더라도, 그 집에 쌓인 시간과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생각은 그대로 남게 됩니다."


그래서 떠올려보기로 했다. 내가 떠나왔던 집들에 대해. 그 경험치를 통해 내 안에 쌓여온 '집'은 어떤 곳일까?



- 기억이 잘 안나는 0~3세 시절에는 엄마아빠 맞벌이 상황이 여의치 않아 여러 친척집에 돌아다니며 살았는데, 사진에 남아있는 집의 형태는 대다수가 단독 주택이었다. 한 1년 정도는 직업군인이셨던 이모부네 댁에서 자랐는데 양구에 있는 군인아파트가 첫 아파트 경험이라면 경험. 그러나 그 당시에도 대다수의 시간은 뒷동산에서 동네 또래 아이들과 땅을 파며 놀고 있었다 ㅎㅎㅎ... 아파트에 대한 기억보다 땅 판 기억이 더 많다는 것이 함정. 너무 어린시절이라 그런가, 아니면 이동이 너무 잦아서 그런가. 이 시절의 집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나는 것이 없다.


- 엄마아빠와 함께 살게된 4세 이후에는 서울 안국동의 한옥 단독주택에서 거주하였다. 정확히는 중정이 있는 한옥 주택의 4면 중 한 면의 방 두개에 세 들어 살았던 형태. 엄마아빠에게 그때의 생활이 어땠는지 물어보면 셋방에서 사는 것도 그렇고 모든 설비들이 낡아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고 하시며 아파트 생활이 제일 편하다 ㅎㅎㅎ... 고 하시긴 한다. (하긴 지금이야 북촌,서촌,삼청동 이 지역이 핫해지면서 주택 개조, 증축 등도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 같은데 90년대야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을 듯 하니) 그러나 정작 나에게는 가장 낭만적이고 따뜻했던 공간으로 기억된다. 그 전까지 따로 흩어져 살다가 엄마아빠와 함께 살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한옥 주택에서의 추억이 참 많이도 남아있다.


집 가운데 중정에 있던 큰 나무 한 그루, 주택을 공유하던 다른 또래 아이들과 함께 나무를 타며 놀았지.

한 여름, 중정 한 가운데 있는 펌프를 열심히 당기면 끌어올려지던 물에서 시원하게 등목하던 아빠

한 겨울, (부모님은 길 거리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고생하셨지만) 길가 한 쪽에 쌓인 눈으로 열심히 눈싸움을 하던 모습.

 

한옥들은 겉에서 보기에 똑같아 보이지만 내부 구조를 보면 미묘하게 달랐다. 중정, 나무와 정원, 툇마루. 그 네 칸 중 우리 가족이 머물렀던 곳은 조그마한 한 칸 뿐이지만 어린시절의 나에겐 그래도 참 좋았더라.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생생하게 기억이 살아있다.


- 일산 신도시 개발되면서 7세에 아파트로 이주한 이후 지금까지 근 26년간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첫 번째로 살게 된 아파트는 90년대 신도시 개발로 지어진 1세대 아파트였다. 분양 받아 입주하여 그 이전에 어떤 사람도 살지 않았던 오롯이 우리 가족만을 위한 새 공간으로 엄마아빠에게 있어서는 생애 처음으로 돈을 모아 마련하신 '첫 내 집'이셨다. 그 곳에서 거의 25년 간 이사도 가지 않고 쭈욱 거주했는데 워낙 한 공간에서 오래 거주하기도 했고 '첫 내 집'이라는 의미가 컸던지라 부모님은 그 곳을 떠날 때 많이 아쉬워하셨다. 나 역시 기분이 미묘했고.


그러나 그 아쉬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 번째로 살게 된 아파트로 이사오시면서 '신축'아파트의 편리성을 체감하였기 때문이다. 약 1년 전 이사한 아파트는 작년에 완공된 신축 아파트. 52층 높이에 지하주차장이 바로 연결된다. 가장 큰 장점은 아파트의 최대 단점인 층간소음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는데, 이건 우리가 들어간 층이 피난안전구역층* 바로 아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피난 안전구역층: 초고층 재난관리법 및 건축법에 따라 높은 건축물들은 중간 중간 화재 대피층을 두어야 한다. 2010년 부산의 38층 주상복합 마린시티 우신 골든스위트 화재를 계기로 생겨난 규정이라 구축 아파트들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로, 일반적으로 대피층은 건물 한 층을 통째로 비워둔 형태다.대피층 내부엔 화염과 연기를 막아내는 설비와 공기호흡기, 식수가 준비돼 있다. 대피층의 위아래 층은 층간소음이 덜해 ‘로열층’ 대접을 받는데, 이 층에 입성하기 위해 아빠는 웃돈을 주고 분양권을 구매하기도 하셨다.


초고층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 약칭: 초고층재난관리법 시행령)
[시행 2021. 1. 5.] [대통령령 제31380호, 2021. 1. 5., 타법개정]

1. 초고층 건축물: 「건축법 시행령」제 34조 제3항에 따른 피난안전구역을 설치할 것
1의2. 30층 이상 49층 이하인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건축법 시행령」제34조 제4항 에 따른 피난안전구역을 설치할 것.
2. 16층 이상 29층 이하인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지상층별 거주밀도가 제곱미터당 1.5명을 초과하는 층은 해당 층의 사용형태별 면적의 합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면적을 피난안전구역으로 설치할 것


물론 신축아파트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자보수 문제: 이리저리 소소한 하자야 (도배가 뜬다던지, 줄눈이 깔끔하지 않다던지) 보수해나가면 되는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결로'현상과 이로 인한 벽지 등의 곰팡이 생김이었다. 시공사 측에 연락하여 우선 생긴 곰팡이들을 닦아내고 새로 도배를 하긴 했지만 설계가 애초에 잘못된 것인지(저 피난층에 아래에 위치한 호실은 모두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주택 대비해서 저렴하기로 유명한 아파트 평당 건축비 때문에 애초에 너무 싸게 지어서 그런건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400만원 언더 vs 주택 최소 400~1,000만원 상당, 물론 건축주마다 다르겠지만)


 공동 주거의 문제점: 층간소음 문제야 층수 선택을 통해 해결하였지만 이 외에 주차, 쓰레기, 하수구 관리 등 함께 거주하는 공간에서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서는 협의해 나가야할 사항이 산더미였다. 구축아파트 대비 밀집도가 훨씬 높다보니 문제가 발생했을때 심각도는 두세배는 되는 듯 했다. (특히 입주 초기의 쓰레기 냄새란...) 그래도 타 단지들에 비해 자가로 거주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어서 입주민들간의 소통이 어려운 편에 속하진 않았다. 이 룰 세팅은 여전히 진행 중.


이후 난 결혼을 하게 되었고 세 번째 아파트(법률 상으로는 오피스텔에 해당함)에 입주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이 아파트 역시 두 번째 아파트가 지어진 시점에 같이 지어진 신축 건물인데, 오피스텔임에도 불구하고 주방 쪽 창문이 크게 나있어 통풍 및 맞바람이 치는 구조라 만족하며 월세 계약을 했던 기억이 있다.   


▲ 지금 사는 집의 평면도


그래서 정말 만족하니, 나의 집?


사실 아파트, 편하다. 관리비만 내면 공용부는 별도 관리를 해주는 주체가 있고, 쓰레기 버리기 등등도 시스템화 되어있어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에 딱딱 버리면 알아서 수거해간다.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도 없으며 동선도 짧다. 내가 따로 신경써서 관리해야할 부분은 xxx동 xxx호 안에 딱 실내 공간 뿐이다. 아파트 단지들의 입지는 또 어떠한가? 일산에 거주하고 있어 서울과의 접근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집 근처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백화점, 이마트타운, 지하철/버스 정류장 모든 것이 있다. 편의시설은 다 엎어서 코 닿을 데 있는 것이다. 신혼집에 입주하기 위해 이런 저런 가구/가전을 알아볼 때도 편리했다. 이미 규격화가 다 되어있기 때문에 사이즈가 큰 가구/가전의 선택지는 한정적이었고, 나는 그 옵션 내에서 내 예산과 취향에 맞춰 작은 선택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뭔가 좀 아쉽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중 하나라는 것이 아쉽다. 사람들이 왜 인테리어에 열광하는지도 비로소 알게되었다.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차별화된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 인테리어, 소품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인테리어도 계속 보다보니 유행과 트렌드가 있나보다. <오늘의 집> 에서 예쁘게 꾸며진 아파트들을 여러 보았지만 그마저도 오래 되지 않아 식상해졌다.


일산, 목동, 대치동 등 아파트가 대다수의 주거 형태인 동네들의 사교육열은 유명하다. 그 하늘을 모르고 치솟는 교육열이 아파트 단지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공간에서 내 자신을 특정지을 것이 없으니 그 차별화 욕구를 교육에 쏟아 붓는다는 것이다. 일정부분 수긍이 간다. 나 역시 일산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와 특목고라 불리우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SKY대학교에 들어간 전형적인 일산키즈가 아닌가.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에서만 쭈욱 살아왔으면 다른 옵션 자체를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을 수 있다. (대다수의 내 친구들이 그러하다) 어린시절 한옥주택에서의 좋은 추억이 있었긴 하지만 워낙 예전 일이니 그저 지나간 기억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외영업/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근 9년간 돌아다니던 북미/유럽 지역에서의 주거 형태를 눈으로 마주하다보니 아파트가 꼭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내 마음 속에 꿈틀대기 시작했다.


물론 미국, 캐나다, 유럽에도 아파트는 있다. 혼자 살거나 파트너와 함께 두 명 정도 함께 사는 친구들은 여전히 SUITE 형태의 아파트에서 많이 거주하긴 한다. 뉴욕 맨하튼, 캐나다 토론토 도심에 사는 친구들의 집은 한국의 아파트와 별반 다를 바가 없긴 하다. 그러나 자녀를 둔 현지 친구들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 한국의 아파트와 같은 형태는 매우 드물고 대다수 단독주택의 형태를 띄게 되었다. (이건 순수 내 경험치이기 때문에 실제 가족형태 별 주거 타입 통계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저 멀리 있는 숫자 통계보다 내 눈으로 보는 것에 더 큰 영향을 받지 않는가?) 똑같이 복사+붙여넣기 한 타운하우스 단지여도 거기엔 집집마다 마당이 있고 계단의 오르내림이 있다. 내 사적인 집이라는 공간 내에서 이리 저리 변화의 경험이 많은 것이다. 난 그게 즐거웠다. 누군가는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일상이 좀 더 다이나믹해 보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 계단과 마당을 뛰어다니며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집에 대한 관심은 결혼을 하면서 더더욱 커졌다. 게다가 남편 역시 아파트 일색의 주거 환경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터. 함께 고민할 파트너가 생기니 '아파트를 벗어난 주택'에서 사는 것이 그냥 먼 꿈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때 부터 차근차근 나의 로망을 글과 그림 등으로 구체화 시키기 시작했다. '내가 살 집'을 직접 짓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물론 현실적인 장벽은 높았으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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