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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포동굴 Mar 31. 2022

두 번째 건축 사무소 방문, 그리고 결정

건축 사무소와의 미팅은 마치 소개팅 하는 것과 같다



어렵게 잡은 두 번째 사무소 미팅


두 번째 건축 사무소는 원래 시부모님 및 남편이 결혼 전에 다녔던(과거형) 동네 교회의 한 장로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이제 더 이상 그 교회에 다니지도 않으시고 사실 교회에는 워낙 사람이 많은지라 그냥 얼굴 정도 아는 사이 정도라고 하시는데... 아무튼, 일산에 거주하셨던 경험을 바탕으로 일산/파주 지역을 잘 알고 계시기도 하면서 딱 마침 시부모님께서 구매해두신 택지에서 다수의 집을 설계하신 이력이 있으셔서 우리가 살게될 동네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신 분이었다. 시부모님은 그 동네에 택지를 구매하신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터라 동네 (예비) 이웃주민들과 어느정도 안면을 트신 상태였는데, 우리의 집이 들어설 택지의 바로 맞은 편 집 역시 이 사무소의 작품. 이웃 분께 초대받아 여러 번 방문해보신 결과 내부 집 구조에 상당히 만족하시던 터이기도 했다. 그 집에서 실제 거주하시는 분도 건축가 분께서 집 건축 완료 이후에도 자주 집을 찾아와서 혹시 거주에 문제가 없는지 체크하기도 해서 이런저런 만족도가 높다고 추천하기도 하셨다. 


단점으로 사전에 공지해주신 바에 따르면 첫 번째 건축사무소에 비해 비용이 비싸다 정도...? 꽤 많이...? 이게 제일 문제긴 하다. '현실적인' 집짓기를 위해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으로 목표를 수정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건축비는 비싸다. 그리고 눈 높이가 낮아지지도 않는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듯...


어느 정도 건축가 분의 지향점 및 금액대의 부담 제약을 알고있는 상태이지만 또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하다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 우선 미팅 날짜를 잡고 사무실이 있는 양재로 향했다. 역시나 건축사무소들은 하나 같이 일산에서 멀고, 요즘 건축 관련 일들이 너무 많다보니 사무소 측에서 비는 시간을 역으로 제안받아 우리가 맞추어 가게 되었다. 갑-을 관계로 말하는 것을 꺼려하긴 하지만 확실히 코로나 시국에서의 주택건축 시장은 고객이 여러가지로 약자인 느낌.


2021년 10월 16일 오후 2시. 날씨가 급격히 쌀쌀해졌다. 갑자기 겨울이 된 느낌? 시부모님과 함께 따뜻한 쌀국수 한 그릇 씩 비우고 B 건축사무소를 방문했다.



이건 마치 소개팅하는 것 같네


두 번째 건축 사무소와의 미팅이다 보니 처음 미팅때 처럼 떨리지는 않았다. 

우선 건축주로서의 아래와 같은 개략적인 상황을 설명드리면서 미팅을 시작하게 되었다.


[건축주의 상황]

- 택지 있음(주소지 및 평수를 미팅 예약할 때 미리 공유해두었으나 한 번 더 리마인드)

- 두 가구가 함께 살 집을 짓고자 함

- 건축주(총 4명, 시부모님과 우리부부) 각각이 원하는 바를 간략하게 설명

- 예상 입주 시점 및 예산


음, 사실 첫 번째 사무소와의 미팅과 비교했을 때 대화의 내용이 큰 차이가 있지 않았다.  


일차적인 설계가 나와야 그 구체적인 그림을 바탕으로 무엇이 맘에 들고 안드는지 논의가 될텐데, 아직 뭔가 논의할 대상이 명확하게 없어서 두루뭉실한 이야기만 계속 하게 된다. 다양한 사무소를 비교해서 그 중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저러하다 보니 이 시점에서 참고할 수 있는 것이라곤 


(1) 사무소들의 포트폴리오 

(2) 해당 건축사무소와 계약을 맺었던 실 구매자의 후기

(3)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건축가분의 스타일 정도?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1) 포트폴리오로 건축사무소 마다 대략의 지향점을 알 수는 있지만 (한옥에 특화가 되어있다던지, 나무를 즐겨 쓰신다던지 정도?) 이게 단독주택의 스케일이다 보니 사진으로만 보면 사무실마다 차이점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처럼 다 만들어진 (그리고 다 똑같은...) 제품을 사는게 아니라 고객의 요구사항에 맞춰 집이 지어지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내의 집들도 다 제각각이라 그런 것 같았다. 물론 스타 건축가들은 확연히 본인들의 스타일이 있고 그 것을 건축주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겠지만, 그 정도의 돈이 있지도 않고(...) 굳이 스타 건축가를 찾아갈 필요성도 못 느낀다. 


건축사무소에서 지은 집들을 직접 방문해서 내부구조까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좀 더 명확하게 느낌이 올 것 같기도 한데 코로나 시대에 가능한 일인가? 아니, 코로나가 아니어도 사적인 '집'이라는 공간에 일면식 없는 사람이 불쑥 찾아가는 것도 영 부자연스럽다. 뭐 이번 건축가 분의 작품이야 시부모님께서 직접 결과물을 확인하기도 하셨고 (2) 실 구매자분의 강력한 추천까지 있었으니 어느정도 보장은 되었으나 건축주 4명 중 한 명인 나는 그 집을 본 적이 없다. 나중에 코로나 좀 잠잠해지면 시부모님 따라 집 구경 가야지.


그럼 결국 남은건 (3)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건축가분의 스타일인데, 이건 마치 소개팅과 다를 바가 없다. 이번 경우는 주선자가 명확한 소개팅 같다고나 할까? 회사 면접을 볼 때도 회사와 나의 fit을 본다고들 하는데 결국 건축도 사람과 사람간의 일이다보니 그 건축가분의 느낌을 보게 되더라. 이번 건축가분은 첫 번째 분 보다는 연세가 있으시고 좀 더 차분하신 편이셨는데, 우리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시면서도 아니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명확하게 아니라고 말씀을 해주시는 부분이 신뢰가 갔다. 첫 미팅이다 보니 건축사무소 입장에서는 고객 유치를 위해 어찌보면 영업을 해야할 법 한데, 고객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준다는 식이 아니라 되는 건 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어주시니 오히려 믿음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점은 두 가구의 독립성이 이런 프로젝트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셨다는 점?! 며느리 된 입장에서 두 가구 분리를 최 우선으로 삼아야한다고 주창하는 분을 만나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수가 없었다



선택장애가 올 때에는


총 두 건축사무소와 만남을 가져보았다. 대화의 본질적인 부분은 큰 차이가 없다. 이 쯤 되니 몇 개 업체를 더 만나봐야 되는지 의문이 생긴다. 


선택장애가 올 때에는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전통행사 이야기를 떠올린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혼인 적령기의 여성들을 데려다 놓고 재미있는 게임을 한다. 참가 여성들은 각각 옥수수 밭 한 섹션 씩 배정받은 후, 그 섹션에서 가장 크고 보기 좋은 옥수수를 따오는 사람이 게임의 승자가 되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룰이 있는데 


(a) 오직 앞으로만 갈 수 있다: 밭을 돌면서 한번 지나친 옥수수나무는 다시는 돌아볼 수도, 지나친 옥수수는 딸 수도 없다.

(b) 옥수수를 딸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한 번 옥수수를 땄으면 도중에 더 좋아보이는 것이 있어도 다시 딸 수 없다.


이 게임에 참여한 여성들은 항상 신중하게 옥수수를 고르는데, 재미있게도 보통 게임이 끝나고 밭에서 나오는 그녀들의 손에는 볼품없는 옥수수가 들려있다고 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수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엄청난 확신을 가지고 선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겠는가. 옥수수밭이 무한정 펼쳐져있어도 마찬가지다. 모든 옵션을 무한정 다 뒤져볼 수도 없을 뿐더러 계속 더 좋은 옥수수를 찾아 헤메이다 보면 결국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거나 불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고 끝나게 되는 것이다. 


미팅을 마치고 다시 일산으로 돌아오는 차 안. 나 뿐만 아니라 시부모님 및 남편 모두 이 건축가분과 진행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다른 건축 사무소를 한 군데 정도 더 만나볼까 싶기도 했는데, 매 번 사무실을 찾아가는 것도 일이고 (보통 너무 멀리 있다...) 만나봤자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순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커뮤니티가 매우 중요한 교회를 통해 처음 알게된 사이이다 보니 더 잘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조금 있고. 


그래도 걸리는 것이 있다면 가격... 가격인데...





설계사무소에서 지은 오픈하우스 방문 후 마음을 굳히다


22년 4월. 첫 미팅 이후 한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고 이러저러한 가족 일들이 많아 잠시 미루어두었던 집짓기 논의가 다시 재개되었다. 설계사무소를 정해야 하는데 여전히 6개월 전과 같이 고민만 많은 상황. 마침 B 건축사무소에 연락을 취해보니 코로나로 인한 이러저러 제한들이 풀리면서 설계사무소에서 진행한 주택들의 오픈하우스 일정이 많이 잡혀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건축주 4인방(- 1인=나, 아이가 아직 너무 어려 새 집에 아가를 데리고 가는 것은 부담. 모유수유 중이라 맘마타임이 애매하기도 하고)은 B 사무소의 결과물 세 곳*을 직접 방문해볼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두 곳은 갓 완공한 오픈하우스, 한 곳은 건물을 올린 지 2년이 넘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이제서야 내부 촬영을 진행한다고 하여 운 좋게 건축주 분까지 만나볼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오픈하우스 방문 과정에서 꽤나 섭섭하긴 했다. 아이를 볼 사람이 필요하고 당연히 엄마인 내가 같이 있어야 하다보니 처음엔 흔쾌히 오케이하고 다른 가족분들이 오픈하우스 방문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 번수가 세 번이 되어감에 따라 시부모님과 남편의 B 사무소에 대한 신뢰감이 높아지는 반면, 영상통화나 그림으로 설명만 듣는 내 입장에서는 크게 와닿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설계사무소에 비해 가격이 높은 부분도 설득이 되었다. 처음에 들은 가격이 인테리어 제안까지 포함된 견적이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무소 내 팀이 두 팀이 될 거라고 하시니 인건비 등을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영수증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사무소에서 설계한 집에 사시는 건축주 분이 해당 사무소에 보내는 신뢰가 엄청났다...! 건축주가 건축사무소를 추천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인데...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B 사무소와 설계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대략의 타임라인은 다음과 같다.


- 2022.04 계약서 작성

- ~2022.12 설계도면 완성 및 건축허가 받기 (해가 넘어가면 담당 건축허가 공무원이 바뀌어 괜히 일이 길어질 수 있다고 한다)

- 2023.02 겨울 끝자락에 준공 시작

- 2023.10 입주 목표

 

이제 건축사무소가 정해졌으니 필요한 건 건축주 4명이 좀 더 서로에게 솔직해지기와 자금 조달 뿐인 것 같다. 두 가구가 함께 살 집을 짓는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라고 하겠다.


#내집짓기 #건축사무소 #오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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