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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포동굴 Apr 13. 2022

아이가 태어났다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내 집, 그리고 공간

2022년 1월 25일. 내 뱃속에서 38주 동안 품었던 리틀이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임신 기간 내내 엄마가 될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가를 내 눈앞에서 보니 이건 또 다른 세계였다. 객관적으로 굉장히 순한 아가인 우리 리틀이. 아가가 태어난 지 80일 정도가 지난 지금 시점에서야 이제 아가가 '울음'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대충' 알겠는데 (지금도 잘 모르겠을 때가 많다 ㅋㅋㅋ... 초반보다는 좀 나아졌다는 뜻), 처음 아가와 함께 한 한 달 동안은 아가도 울고 나도 울고 눈물의 연속이었다. 역시 머리로 생각하는 육아와 실전은 달랐다.


아가가 태어나고 나니 내 집, 그리고 세상에 대한 태도 또한 사뭇 달라졌다.



첫째, 2인 가구 → 3인 가구로 변화, 좁아진 아파트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전용면적 84㎡의 아주 평범한 아파트. 안방 1개, 작은 방 2개로 옷장 및 나 혼자 집중할 수 있는 공간까지 구비되어있어 재택근무를 할 때도 큰 불편 없이 살았었다.


그런데 남편과 둘이 살 때는 적당하다고 느껴졌던 이 공간이 아가 용품으로 가득 차오르면서 비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 그나마 공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지, 아가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해서 집안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더더욱 물건들로 가득 차고 아가 장난감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게 될 것이다. 워낙 물건이 바깥에 나와있는 것을 싫어하는 나인지라 모든 아이템들을 구석구석 수납공간에 다 숨겨두는 것을 선호하였다. 그러나 아이가 우선이다 보니 '정리'는 뒷전이 되어가고 매일매일 쓰는 아기 장난감 등등의 물건들이 거실을 점령해가는 모습을 보니 중간중간 헉할 때가 많아졌다.


아, 그래. 이제 우리 가정은 2인이 아닌 3인 가구이지. 지금은 갓난 아가이니 거실을 주 무대로 하여 이동식 침대에서 지내지만 아이가 커감에 따라 자기만의 방을 또 필요로 하겠지?


(그나마 정리된 상태의) 거실. jpg



둘째, 아가방 인테리어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건축사무소를 방문할 때 이미 임신 중이었던 나. 따라서 건축사분들과 미팅을 할 때는 명확하게 아이와 함께 살 집이라는 것 (정확히 말하면 그 집에서 살 구성원이 지금의 건축주 4명 + a, a가 몇 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계획은 2명이다)을 밝히며 집 짓는 이야기를 시작해 두었다. 이에 '내 집'에서의 삶의 모습을 그릴 때 아이가 마당에서 뛰어노는 4-5세 이후의 모습을 막연히 상상했었다. 그러나 딱 그 정도 수준이었고 집 안에서 아이의 공간이 어떻게 되어야 할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다.


아기가 있으니 턱이 많으면 안 되겠고, 계단을 놓을 때 좀 더 안전한 모양으로 설치해야겠네. 아기가 좋아하는 미끄럼틀 같은 것이 설치되면 좋겠다. 내 어렸을 때의 로망 2층 침대를 아가가 좋아하려나... 정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가장 많이 수집해왔던 인테리어 공간들을 살펴보니 내 개인 공간과 거실, 부엌 정도이다. 내가 현재 많이 이용하는 고관여 공간들이기 때문에 연계해서 상상하기가 쉬워서였겠지? 거기에 아가방은... 솔직히 말하면 없었다. 남편이 원하는 공간은 남편이 알아서 생각할 테니, 내가 원하는 공간 만이라도 제대로 잡아보자였는데... 어찌 보면 아이를 낳기 이전의 나는 철저히 나만의 취향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육아 를 시작한 이후 각종 소셜미디어의 검색광고 알고리즘은 나를 #아가방 인테리어로 이끌었다. 사실 아가의 방은 그 주인인 아가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우리가 '새 집'에 입주할 시점의 아가는 두 살 남짓이려나? 모든 것을 선택할 수는 없을 때이니 일단 엄마의 취향이 십분 반영될 예정이다.


그래도 아가야, 나중에 네가 원하는 대로 벽지며 가구며 다 바꿔줄게!




세 번째, 층간소음에 너그러워졌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더 자주 인사하게 된다.


원래도 불면증이 심하고 소리에 예민한 나란 인간은 층간소음에 꽤 민감한 편이었다. 낮 시간이야 그렇다 치지만 밤 시간의 소음은 수면의 방해꾼. 그렇다고 소음이 발생한 곳을 찾아가서 조용히해달라 요청할 용기는 없고 그냥 나 혼자 끙끙 앓으며 잠을 못자는 형태였지만... 그런데 낮밤을 가리지 않고 우는 아가가 있다보니 층간소음에 너그러워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여전히 새벽에 피아노치는 소리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마주치는 위아래옆 호수 주민들에게 '아이가 있으니 양해해달라'는 말을 먼저 건네게 되었고. 다행히 내가 사는 아파트 동에는 강아지,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 서로 양해를 구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새벽반에 기상해있으면 이집 저집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ㅎㅎㅎ


아이 혹은 아이에 상응하는 강아지를 키우는 이웃이 많아서 그런가, 유모차를 끌고 나가게 되면 자연스레 서로 인사를 하게된 것도 큰 변화이다. 워낙 답답한 것을 싫어해서 아가가 70일 정도 경과했을 때부터 유모차를 끌고 바깥바람을 쐬러 나가는데, 유모차에 탄 아가가 너무나 조그맣다보니 이웃 어른들 혹은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모분들이 먼저 말을 건네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전에 나 혼자 엘레베이터를 타면 모두가 다 같이 한껏 굳어있는 표정으로 자기가 사는 층만 띡 누르고 말았는데, 아이와 함께 타면 주변의 긴장이 풀어지는게 몸으로 느껴진다. 나 역시 어린이들이 엘레베이터에 타면 먼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게 되었고. 동병상련인걸까, 아니면 아이의 힘이란 이렇게 대단한 것일까? 



네 번째, 공동육아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공동육아를 위한 공간도...


우리 아가는 모두가 인정하는 순둥이지만, 그래도 24시간 나 혼자 아이를 보고있다 보면 현타가 올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아기가 뒤집기 시작한 이후 부터는 남편 혹은 양가 부모님께서 와 계시지 않는 한 나 혼자 아이를 돌볼 때 샤워하러 가는 것 마저 사치. 100일이 갓 지나자마자 소파위에서 쿵 아래로 떨어진 사고가 난 이후 아이가 잠잘 때 빼고는 눈을 떼기 어려워졌다. 아이를 돌볼 때는 최소 두 명이 있어야 아이도 안전하고 엄마인 나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84㎡에 완전 수평적인 방 구조의 아파트 구조에서 (시)부모님이 오셨을 때 문제점은 내가 혼자 편히 쉴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물리적으로 화장실까지 딸린 안방에 문 닫고 들어가면 이리저리 혼자 누워있을 수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 벽 바로 너머에 시부모님이 계시다는 점, 이런저런 소리도 다 들린다는 점, 그리고 서재 및 옷방 등으로 이동하려면 무조건 거실을 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뭐랄까... 안방에 들어가면 쉬러가는 느낌이 아니라 갇히는 느낌이다. 집 안에서 방을 이동하는 방법이 가운데로 난 큰 통로 하나인게 문제인 듯 하다.


아이를 돌보는데 있어서 어른이 여럿이면 좋다. 그런데 그 어른들의 공간이 잘 분리가 되면 좋겠다. 단순히 물리적인 분리가 아니라 심적으로도 말이다.


▲ 현재 사는 아파트 평면도





#아기와함께하는집 #내집짓기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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