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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MZI Jun 06. 2022

슬픔을 미루는 일

나에게는 오랜 습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슬픔을 미루는 것이다.


나는 슬픔에 취약하여

감정이 툭 하고 터지면

종일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나이를 먹으니 슬퍼도

오늘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내야 했고

그러다 보니 그것은

사회를 거듭하며 생긴 습관이었다.


마음껏 슬퍼하기보단

그것을 꾹 잠그고

내일 그리고 모레로 미루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오늘은 제법 괜찮으니까.


샤론이 죽고 나서도 그랬다.

슬픔은 금고에 꼭 잠그고는

괜찮아진 나를 대견해했다.

사진 하나 제대로 못 쳐다봤으면서.

여전히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우습게도.


유예하는 것은 부작용이 있다.

슬픔의 유통기한이 꽤 길어진다.

한때 한번 아파하고 나면 좀 괜찮아질 것을

오랫동안 끙끙 앓는 것이다.

잔잔하게 오래 흐르는 슬픔은

진폭이 얕은 대신 멀리 가는 것이다.


그때 실컷 슬퍼할걸

이게 뭐라고 여태 아껴뒀을까

소중한 너를 슬픔보단 기쁨으로 기억하게

그때 실컷 아파할걸

용기 없던 난 오랜 시간 너를 슬픔에 가두고

인제야 풀어주다니

창피해도 아파도 그리워도

그때 그냥 실컷 울걸

그러면 오늘은

너를 생각하며 웃었을걸


_

네가 두고 간 온기

슬픔을 미루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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