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단상 [斷想] | 사색

by 승아

인생은 본래

고독이라는 구조물 위에 세워진 하나의 현상.

관계는 잠시 스쳐 가는 기류처럼

형태를 갖추기 전에 이미 소멸을 예비하고,

존재는 늘 소실을 전제로 호흡한다.


세상은 어차피

잔존하지 않는 것들의 집합.

시간이라는 침식 작용 앞에서

기억과 약속과 이름들은

차례로 마모되고,

의미는 서서히 윤곽을 잃는다.

남는 것은 단지

지워진 흔적의 윤리 같은 것,

붙잡으려 했다는 사실만이

희미한 잔광처럼 떠돌 뿐이다.


나는

뚜껑이 봉인된 투명한 용기 안에서

외부를 관측한다.

보이는 건 맞지만 더 철저히 분리된 채,

세상과 나 사이에 놓인 이 얇은 장벽을

현실처럼.

손바닥으로 두드리면

소리는 반향이 되어 돌아오고,

외부로는 도달하지 못한 채

내 내부에서만 울림이 지속된다.


이 반복되는 공허 속에서

나는 외침 대신 문장을 채집한다.

부서진 사유의 파편들,

미처 발화되지 못한 감정의 잔여물들을

조심스럽게 배열하며

하나의 사상처럼, 하나의 형상처럼

침묵 위에 놓아본다.


밤은 늘

존재의 한계를 환기한다.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세계인지,

그 경계가 흐려질수록

나는 더욱 선명하게 고립된다.

그래서 나는

희망도 절망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머무는

무명(無名)의 감각을 붙든다.


어쩌면 삶이란

각자의 폐쇄된 공간에서

자기만의 언어로 세계를 해석하는 일.

서로의 해석이

아주 드물게, 우연히 겹칠 때에만

우리는 잠시 희열을 느끼고

또다시,

고독이라는 조건을 유예받는다.


나는 오늘도

사라질 것들 위에

지워질 문장 하나를 남긴다.

그 의미조차 소멸된 이후에도,

누군가의 의식 어딘가에

설명되지 않는 잔상처럼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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