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본 날, 나는 무엇인가에 홀렸던 것 같다.
그게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설명할 수 없다. 다만 그 순간의 감각만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지인의 소개로 처음 그를 마주했던 날,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자리였을 텐데도 내 몸은 이상하게 반응했다. 심장이 한 박자씩 어긋나듯 뛰었고, 손끝부터 목덜미까지 미세한 전율이 올라왔다. 마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온몸이 찌릿했다. 나는 그 감각을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동시에 그 낯선 떨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기엔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색한 인사 몇 마디가 끝나자마자 대화는 어느새 깊은 곳까지 흘러들어 갔다. 서로의 취향을 묻고, 좋아하는 음악을 이야기하고, 최근에 다녀온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몰랐다. 분명 성격은 반대였다.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고 그는 가볍게 웃으며 넘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하기 전 수없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타입이고, 그는 그저 “일단 가보면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반대되는 결이 어딘가에서 부드럽게 맞물렸다.
그는 발라드 음악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 추천하기도 애매한, 조금은 낯설고 조용한 음악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밴드 이름을 말했을 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 그 노래 알아”라고 말하는 순간마다 나는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도 좋아한다고 했다. 목적지보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것들을 더 좋아한다고. 낯선 골목에서 우연히 들어간 작은 술집,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나누는 술 한 잔 같은 것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그의 얼굴이 이상하게도 빛나 보였다.
그와 나는 아주 사소한 이야기까지도 닮아 있었다. 잠들기 전에 무드등을 켜는 습관, 조용히 아로마 오일 향을 맡으며 하루를 정리하는 그 시간까지도.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잠깐 웃었다. 세상에 이렇게 사소한 습관까지 겹칠 수가 있나 싶어서. 그 순간 어쩐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과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눈동자를 맞춘 채로 오랜 시간을 이야기했다. 서너 시간쯤은 훌쩍 지나갔을 것이다. 처음 만난 사이에 나눌 법한 가벼운 이야기부터,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까지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동시에 묘하게 들떠 있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평소의 나와는 다른 상태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날의 그는 유난히 더 빛나 보였다. 웃을 때 생기는 작은 표정,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듣는 태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농담까지도 전부 특별하게 느껴졌다. 마치 그 사람 주위에만 조용히 조명이 켜져 있는 것처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사실 별 것 아닌 순간들이었다. 좋아하는 음악이 조금 겹쳤을 뿐이고, 여행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을 뿐이고, 잠들기 전의 습관이 비슷했을 뿐이다. 누구에게 말하면 “그 정도로?” 하고 웃어넘길 이야기들이다.
그런데도 그날의 나는 분명 무언가에 씌어 있었던 것 같다. 이유도 없이 그가 특별하게 느껴졌고, 평범한 말들조차 의미 있게 들렸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아주 조금 다른 색으로 보였으니까.
지금부터 써 내려가는 이 글을 그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