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세상으로 투영되는 이유
만족에는 쾌락주의적 만족과 자기실현적 만족 두 가지가 있습니다.
쾌락주의적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운동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sex 하고, 일하고, 친구를 사귀는 등 비교적 하는 방법이 명확합니다. 가공식품이 아닌 클린 한 음식 위주로 적당히 규칙적으로 먹고, 하루에 8시간 이상 씩 질 좋은 수면을 하고, 유산균이 많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통해 몸을 잘 관리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성적 욕구를 해결하고, 친구나 가족을 정기적으로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물론 이런 것들조차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사실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목표가 명확히 눈에 보인다는 점은 부인 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기실현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막막합니다.
삶을 나 자신의 건강,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 커리어 세 측면이라고 본다면, 어떨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 어떤 측면에서도 나 스스로 어떤 수준의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지 애매합니다. 아니, 어느 정도가 되어야 만족할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것으로 ‘이 정도면 내 커리어는 마음에 들어’라고 평가를 내릴 수 있을지, 애매합니다.
그 어느 하나도 나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나의 삶에서 만족을 느껴야 하는데, 건강에 있어서 질병이나 사고후유증 등이 있어서 내 몸조차 나에겐 만족스럽지 못한 환경일 수도 있고,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내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없거나 그 관계들이 현재 매우 나쁜 상태일 수도 있고, 일에 있어서도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은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저는 뇌전증과 뇌 동정맥 기형으로 인해 정년이 보장되는 회사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물론 정년이 보장되는 대신, 제가 하기 싫고 잘하지도 못하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본질적으로 그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 맞지 않았던 것이죠. 부모님은 그런 회사 들어간 걸 고맙게 생각하라며 퇴사를 말렸지만 결국 지병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업을 했지만 코로나 이후 완전히 망했고, 삶에서 의욕을 잃고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그 후 수년간 우울증과 불안장애, 자살 충동을 겪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 까지의 노력이 헛된 것처럼 느껴졌고, 마음이 바닥에 딱 달라붙어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시절을 4년이나 겪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어떻게 마음의 병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제 자신에 대한 불변하는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제 삶의 의미 역시 알게 되었고, 남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제가 좋아하고, 제 가슴을 뛰게 하는 제 불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실현적 행복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존재 그 자체로 만족함으로써의 행복한 측면과(내적 측면), 어떤 대상을 통해 삶을 즐기면서 몰입하고 사랑함으로써 만족함으로써의 행복 (외적측면)입니다. 하나는 내적으로 투영되는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외적인 대상에 투영되는 행복입니다. 대상에 투영되는 행복은 내적으로 투영되는 행복이 충만해질 때에만 가능합니다. 마치 그릇에 충분히 많은 물을 따르다 보면 그 물이 그릇을 넘쳐흐르듯이, 행복 또한 내적 행복이 충만할 때 그 넘치는 만족감으로 시선을 외부로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오래전 공자가 이야기 한 수신제기치국평천하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과의 관계를 외부와의 관계로 확장하기에 자신을 다루는 방식으로 타인과 세상을 다루며 살아갑니다.
존재론적 행복 : 스스로의 존재 그 자체로 만족감을 느끼는 행복입니다. 즉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존재만으로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한 가지 능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것을 ‘자기 가치 부여 능력’이라 부릅니다. ‘자기 가치 부여 능력’ 이란 ’ 나는 어떤 환경에서도 가치 있다.‘는 믿음입니다. 더 정확히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그들의 성과나 결과물과는 상관없이 절대 불변의 큰 가치가 있다.’라는 믿음입니다. 저는 이런 ‘자기 가치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존재자체로서 느끼는 만족감을 ‘존재론적 행복’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자신이 절대 불변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곧 ‘나 자신은 특권이 있는 존재다’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치 있는 만큼 상대방 역시 그만큼 똑같이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존재 그 자체로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은 타인 또한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사람은 그 사람들의 일이나 성과나 재산이나 배경과는 상관없는 동일한 가치를 지닙니다. 그러므로 빌게이츠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나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존재론적 입장에서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범죄자는 어떨까요? 네 범죄지 역시 존재론적 측면에서는 모든 다른 사람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확장적 행복 : 존재론적 행복을 세상으로 확장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만족감입니다. 즉, 어떤 대상(사람, 일, 예술, 행위 등…)에 자신의 ‘순수한 열정’을 갖고 즐기는 만족감에 의한 행복입니다. ‘순수한 열정’이란 곧 사랑을 의미합니다. 즉,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만으로 만족감을 느끼고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함을 충분히 느끼고 그 사랑과 만족과 행복이 넘쳐나면, 자연스럽게 그 만족과 행복과 사랑이 밖을 향해 번져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것을 확장적 행복이라 부릅니다. 확장적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존재론적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밖으로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능력을 저는 ‘삶을 즐기는 능력’이라고 표현합니다. 삶을 즐기는 능력이란, 자신만의 삶의 불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통해 삶을 즐기고, 몰입하며,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영화 소울에서는 영혼이 지구에서의 삶을 살기 위해 받아야 하는 티켓이 있습니다. 그 티켓은 각 영혼의 열정에 따라 지구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정을 영화에서는 불꽃(스파크)라고 하죠. 그 불꽃이야말로 우리가 삶에서 만족감을 확장시키며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수단이자 ‘키(key)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불꽃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기에 그 불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데에도 역시 애를 먹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자신을 존재 그 자체로 만족할 수 있다면, 자신의 불꽃 또한 발견하기 수월해집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만족하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조건과 상관없이,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기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일, 건강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살 수 있게 됩니다.
존재론적 행복과, 확장적 행복, 이 두 가지 행복은 사실 하나입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사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또 나와 세상은 구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에 대한 말씀을 드리지 않았기에 궂이구별하여 표현하였습니다. 존재 그 자체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불꽃을 찾을 수 있고 그 불꽃으로 자신의 삶을 즐기고 세상에 도움을 주며 자연스럽게 성장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은 다시 나의 존재에 대한 만족감을 높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