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선택하기
행복은 노력 이전에 선택의 문제입니다.
저는 30대 후반 40대 초반을 걸쳐 4년이 넘게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었습니다.
20대 중반에 뇌전증을 앓고 뇌 동정맥 기형으로 머리를 열고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1년간의 치료 후 다행히도 완치 판정을 받고 나서, 정년이 보장되는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뇌전증이 다시 발병하는 바람에 어렵게 들어간 8년이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컸었는데, 실제로 이렇게 그만두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중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제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았고, 그 결과 제가 품었던 마음이 현실로 거울처럼 투영된 것이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꾸역꾸역 다니면 결국 퇴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어떻게든 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는 사업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돈을 잘 벌었죠. 그러나 그 사업도 결국 잘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코로나가 시작된 후로는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았고, 저는 더 이상 내 인생에 희망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다 보니, 누군가를 원망하고, 나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인식했던 저의 우울증의 시작이었습니다. 사실 우울증에 걸릴 조건은 제가 자라면서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이지만, 이 일을 계기로 멘털이 완전히 깨져버리는 바람에 수면 아래에 있던 우울증이 도진 것입니다.
저는 정서적으로 한 번도 연결된 적 없는 아버지와, 다른 집 자식과 매번 비교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초등학교 이후로 단 한 번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아버지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받은 기억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아버지에게 말을 걸 때마다 되돌아오는 아버지의 화난 표정 때문에 저는 늘 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마음속으로 스스로에 대해 뭔가 부족한 것이 있는 줄 알고 자랐습니다. 결핍감이 심했기에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길 원했고, 사랑받길 원했습니다. 저는 인정받고 사랑받는 길은 ‘성공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아버지 께서도 늘 ‘성공적인 삶’에 대해 강조하셨고요.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어릴 적엔 저를 너무도 많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너무 심했습니다. 뭐 대부분의 저와 같은 시대에 학생이셨던 분들은 다 그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대학이 성공의 열쇠라는 잘못된 관념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였으니까요. (물론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은 많습니다.) 고등학교 서부터는 항상 저를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회사에 가서도 부모님의 비교대상은 항상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비교가 저 스스로를 누군가와 비교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울증에 걸린 지도 모른 채, 처음에는 ‘난 괜찮다’라면서 정신과 치료를 거부했습니다. 제 생각에 저는 완벽하게 건강했고, ‘우울증’ 따위는 배부르고 등따신 게으른 사람들이나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정신적 문제가 있을 뿐 '나는 정상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살충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길 한 복판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었을 때의 평온함을 떠올리며,‘왜 자살하면 안 되는 것일까? 의식이 없으면 더 편할 텐데….’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아내에게 했고, 저의 아내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아내에게 이끌려 자살 방지 센터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의 간곡한 권유로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갔을 때, 저는 너무 실망했습니다. 그 선생님은 저의 증상에만 관심이 있었지 저라는 사람의 고통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정신과에 가면, 저의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는지도 모르죠. 영화 속 정신과 전문의는, 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내 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만, 정신과 치료와 심리상담은 별개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해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상담이었고, 정신과에 가서 받았던 것은 치료였던 것입니다.
아무튼, 많은 종류의 약을 처방받고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약을 먹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우울해지는 느낌이 덜했지만 너무 졸렸습니다. 이렇게 약을 계속 먹다간 평생 약에 의존하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당연히 병원에 가서 치료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병이 그렇듯이 그 병을 치료하는 의사를 믿고 따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낫겠다는 의지’입니다. 하지만 우울증이라는 병의 특성상 병을 낫고자 하는 의지를 내기 힘들죠. 그래서인지 우울증은 고치기도 어렵고 재발하기도 쉬운 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우울증에 걸려 병에 빨리 나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울하다는 것 자체가 삶에 의미와 의지를 잃어버리는 병이기에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우울증에 항복하고 ‘될 대로 돼라’며 살았습니다. 지금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보니, 우울증이라는 병은 본인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 과정을 병원치료와 병행할 때, 더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의사라 하더라도 환자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알 방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용기로 작용한 것입니다.
아무런 삶의 의욕도 나질 않았습니다. 그저 죽고만 싶었을 뿐… 저의 대부분의 날들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느끼고, 곱씹고, 상상하면서 고통스럽게 지나갔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왜 자살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답을 계속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리상담사를 찾아가 심리상담도 받아보았으나, 여전히 우울해지고, 죽고 싶었습니다. 철학이나 종교서적을 많이 뒤져보았고, 명상도 해보았으나 소용없었습니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기만 할 뿐 답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죽고 싶다는 것은 사실 살고 싶다는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우울증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울증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행동을 하면 감정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적같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스쾃를 하루에 10개라도 해보자’.
하지만 처음에는 하루에 한 개도 하기 힘들었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3일에 한 번 정도 스쾃 한 개만 해보는 걸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저를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운동이라는 행동이 뇌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담당하는 편도체를 안정화시켰고, ’ 행복감’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을 싹트게 할 공감을 만들어준 것이었습니다. 운동을 시작하고 1년이 지난 지금, 턱걸이를 한 개도 못하던 제가 이제 턱걸이 최대 9개까지 할 수 있게 되었고, 190 cm / 99kg이었던 몸이 이제 91kg이 되었습니다. 체지방과 골격근의 비율이 보기 좋고 몸에 좋은 정도로 유지되었습니다. 운동이 저를 행복하게 해 주고, 행복한 감정으로 더 운동하고 싶은 선 순환 구조에 들어섰습니다.
그렇게 저는 운동만으로 우울증을 모두 극복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은 그렇게 쉽게 낫는 병이 아니었습니다. 우울한 감정은 뇌가 우리 몸 상태를 해석한 결과 중 하나라서, 몸을 많이 움직이면 우울한 감정은 사라지지만, 만성적인 부정편향적 사고습관이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운동으로 근육량을 늘릴 수는 있어도 운동 자체로 식습관을 고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불행이란 마음의 습관이라서 그 습관을 버리지 않는다면, 결코 불행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죠.
저는 기필코 이 불행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각종 심리학 서적과 종교서적등의 책을 읽기도 해 보고 심리 세러피 수업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 봤지만, 그 책과 강의들은 내면을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내면의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이 충돌하여 전쟁을 일으켰고,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방황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삶의 덫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를 열기’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그 책 속의 ‘스키마’라는 삶의 덫에 제가 걸려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그 책을 번역하신 최영희 박사님이 운영하시는 메타 의원에서 개발한 CASH(change and Acceptance and Healing) 프로그램을 통해 치료와 치유를 받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으로 인지행동 치료와 스키마 치료와 통해 내 마음을 분석하고 그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수용전념치료와 마음 챙김 명상을 통해 내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스키마들을 치료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내가 ‘삶의 덫’이라 불리는 스키마의 굴레 안에서 계속해서 같은 생각의 패턴을 반복하며 그 안에서 감옥에 갇힌 듯 살아왔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같은 생각의 패턴은 그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 생각의 패턴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며 인생을 끌려다니듯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을 통해 '나'는 내가 생각해 왔던 나 자신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라는 것은 스키마 덩어리에 끌려다니는 껍데기일 뿐이었는데 저는 그 껍데기를 '나'로 착각하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의 원리이자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가르침의 의미 중 일부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자아 또는 '나'라는 의식을 '스토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불과하다'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가 스토리를 만드는 주체가 되어야 할 판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스토리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 스토리에 집착하지 않는 것 만으로 제 삶은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저는 내가 진정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깨달음을 통해 저는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 아예 다른 사람 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성과물이 내가 아님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나'가 문제를 회피하려고만 하고,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게 느껴져서 남들의 의견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았다면, 지금의 '나'는 내 문제를 스스로 최선을 다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그 누구에게도 나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크게 성취하려 하지 않아도 내 일상에서 건강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항상 불안하고, 우울하고, 화가 났던 내 일상들이 싹 사라지고, 그 대신에 사랑하고 감사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노력 이전에 선택의 문제입니다.
마치 인천행 열차를 탈 것인지 아니면 서울행 열차를 탈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처럼...
저는 행복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고, 그 행복행 열차를 탔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행복으로 가는 길에 대한 지도이자, 제 경험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