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를 규정하는 것들이 나일까?
누군가 저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예를 들어서, 저는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 이름은 오승민입니다. 그리고 OO에 살고있고, 재산은 OO이며, OO대학을 나왔고, 전자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한 때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녔으나, 나와 맞지 않다고 느끼며 다니던 중, 뇌전증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어야했습니다. 키는 190cm, 90kg의 40대 초반이고, 딸 하나 아들 하나의 아빠이며, 한 여자의 남편입니다. 작가이자 강연자이자 명상가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재미를 찾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제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엄청 열심히 살았고, 성공했고, 실패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실패의 경험이 워낙 커서, 저는 ‘난 쓸모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나를 사랑하고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재미를 느끼며 살아가고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이 설명하는 어떤 한 이미지가 ‘저라는 존재’와 동일한 것일까요?
무한히 자세하게 설명한다해도 그것은 지금 잠깐의 저라는 존재에 대한 설명일 뿐, 어떤 고정적인 저에대한 설명은 아닙니다. 과거의 저는 제가 작가나 강연자가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고, 더욱이 아이와 아내와 함께 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니까요. 과거의 오승민이라는 사람의 이미지는 지금 오승민이라는 존재의 이미지와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의 저는 안정적인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두고 살았습니다. 당연히 정년까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다가 퇴사해서 전원주택을 지어 생을 마감할 때 까지 편히 쉬는 것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를 아무리 자세히 묘사한 그 어떤 글과 이미지라할지라도 그것은 상상속에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관념에 집착하곤 합니다. “나는 꼭 이정도의 회사는 다녀야하는 사람이야.” , “나는 아우디 정도는 타 줘야하는 사람이야.” 라면서 말이죠. 저 또한 그랬습니다. 어렵게 합격한 정년이 보장되는 회사를 그만두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꼭 그 정도 회사는 다녀야지만 '나 답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뿐만아니라 제 가족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집착이 생기고 집착이 생기니 괴로움 또한 따라다녔죠.
아무튼 결국 나라는 관념은 내가 만든 스토리이거나, 내가 만들어낸 자동적인 사고이거나, 생각의 습관일 뿐입니다. 심지어 제 이름 마저도 습관일 뿐입니다. 제 이름을 법적으로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오승민에서 현빈으로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누군가 뒤에서 “현빈아!”라고 불러도 돌아보지 않겠죠. 왜냐면 이미 머릿속에 ‘내 이름은 오승민이다.’라는 습관이 들어가있으니까요. 그러다 한 달 정도 제 새로운 이름인 “현빈”에 익숙해지면, 그 때서야 ‘내 이름은 현빈이다’라는 새로운 습관이 자리 잡을 것입니다. 결국 나를 규정하는 그 모든 관념은 결국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순간적인 환상 또는 이미지일 뿐 그것이 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가 아닌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겠죠. 내가 연봉이 얼마든, 어느 집에 살든, 어떤 차를 몰든, 그것은 ‘나’를 일부 설명할 뿐, 지속적이고 절대적인 ‘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그 관념덩어리가 아님을 알게되면 어떻게 될까요?
자유로워집니다.
위에 제 소개에서 말했던 바에 의하면 저는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관념일 뿐임을 알아차리면,
저는 저의 사고에 갖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래서 자유롭게 제가 하고싶고, 되고싶은 모습대로 시도하고 즐기며 살 수 있게 됩니다.
결론:
'나'를 설명하는 그 어떤 관념도 내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