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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잉송 May 27. 2023

노력하면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삶을 바꾸는 수용의 기술

    지나간 과거에 대한 생각은 대부분이 '후회'나 '분노'의 감정과 같이 옵니다. 그런데 지나간 과거를 '수용하라'라고 말하면, '수용한다'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세상에는 노력하면 할수록 보상이 따라오는 일과,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손해 보는 일이 있습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보상이 따라오는 일은 '바꿀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 일들은 스스로가 바꾸길 원하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보상이 따라옵니다. 


    반면,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손해 보는 일은 '바꿀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 일들은 노력할수록 노력은 집착이 되고 집착은 괴로움이 됩니다. 결국 괴로움에 에너지를 모두 빼앗기고, 정작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들일 노력까지 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다가 '바꿀 수 있는 것'들 까지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운동, 그림 그리기, 글쓰기, 영어공부, 자기 확언을 통한 자신을 바꾸기 등은 노력에 따라 보상이 따라옵니다. 비록 어떤 한계에 부딪힌 후로는 보상이 증가하는 정도가 둔화되기도 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계속 노력하면, 자신의 한계를 한 단계 확장시켜 가며 새로운 성장과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에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노력에 따른 보상을 받을 때마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그 도파민을 얻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성장'이라는 결과를 낳기에 애정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애정은 또다시 노력을 촉진하면서 선순환을 불러옵니다.


    하지만 삶을 살다 보면, 이상하게도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보상이 없거나, 줄거나, 심지어 마이너스 보상을 받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잠을 자려하면 할수록 더 잠을 잘 수 없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셨을 것입니다. 담배는 끊으려 하면 할수록 더 끊기 어렵고, 야식도 끊으려 하면 할수록 끊기 어려워집니다.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내 의도와는 반대로 움직입니다. 남편을 바꾸려 하면 할수록 남편을 컨트롤하는 것이 어려워지죠. 그뿐 아닙니다. 인정받으려 하면 할수록 인정받기 어려워지고, 행복하려 하면 할수록 행복과 거리가 멀어집니다. 


    이런 '역보상'분야의 공통점은, 바꿀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  하기에 집착이 생기고 그 집착 때문에 바꾸기 더 어려워지면서 삶이 더 괴로워지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바꾸고 싶어 하니 더 집착이 생기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그렇기에 노력하면 할수록 일이 더 꼬이고 보상은커녕 더 삶이 힘들어지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후회가 있습니다. '그때 그 사람 믿지 말았어야 했어..', '그때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어..'라는 후회...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은 떨쳐내려 하면 할 수록 더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후회를 떨쳐내려는 노력 대신에 '무엇을 위해서 지금의 어려움이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면, 그렇게 어려움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과거의 후회스러운 결정들과, 지금의 어려움을 수용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불행한 마음의 습관으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꽁꽁 묶인 꼭두각시 인형. 


    또 다른 예로는 '타인을 바꾸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남을 바꾸는 것은 지구를 구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바꾸려 해 본 사람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남을 바꾸려 하면 할수록 더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오히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한다면 어떨까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나의 집착이 사라지면서, 그 사람에게 원하는 것이 사라집니다. 그러니 타인을 바꿀 필요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내가 바뀌면, 그 바뀐 나를 알아본 타인도 바뀌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모든 경우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타인이 바뀌길 바라면서 타인을 인정하는 것은 안됩니다. 타인을 조종하려는 목적으로 '타인에 대한 수용'을 한다는 것 자체가 수용이 아닙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 그만큼 나의 그릇이 커집니다. 나의 그릇이 커지면, 인생의 고통이 그만큼 줄어듧니다. 작은 소주잔에 잉크 한 방울은 '색깔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큰 욕조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린다고 해서 별다른 색깔의 변화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렇듯,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일단 내가 느끼는 고통이 줄어들고, 삶에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말고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두었던 좁은 시야가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둘 수 있게 넓어지게 되고, 삶이 안정적으로 우상향 하는 그래프를 그리게 됩니다. 

타인을 수용하는 만큼 나의 그릇이 커집니다. 그릇이 커질수록 고통의 크기도 줄어듧니다. 그릇이 커질수록 잉크방울(외부의 자극)에 대한 오염 (고통)도 줄어들게 됩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노력을 하고, 바꿀 수 없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수용입니다. 그런데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몸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노력할수록 힘이 빠지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노력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생깁니다. 그러니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냥 거기에 그대로 놔두세요.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보세요.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타인을 수용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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