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아내
다람송은 내 아내다.
내 필명이 오잉송인 이유는 다람송이 나를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평소에 다람송은 나에게 오잉송 또는 오빠라고 부른다.
기분이 좋을 때 오잉송이라 부르고
기분이 나쁘면 오빠라고 부른다.
내 본명인 '오승민'인 사람은 굉장히 많다.
하지만 오잉송은 세상에 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오잉송'이라는 이름이 참 좋다.
다람송과 사랑을 시작했을 때,
오잉송은 뭔가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오잉송은 다람송에게 어떤 경이로운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뜨거운 연애를 했고,
그래서 결혼할 수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내가 달라졌다.
내 안에 있는 감정을 회피하고 차단하고 싶은 또 다른 내가 튀어나왔다.
그나마 신혼 때는 연애할 때의 오잉송으로 행복하게 잘 살았다.
하지만 아이가 나오면서는 나는 ''남편으로 사는 법'을 알고 있는 또 다른 나'가 되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중요했고,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남편'은 육아를 하는 것이 두려웠다.
'남편'은 육아를 하며 느끼는 슬프고 화가 나고 기쁘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두려웠다.
'남편'은 세상에서 부딪히는 일들에 지쳐서 더 이상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 결혼 후에, 특히 육아를 하면서부터 우리는 엄청 많이 다투었다.
어느새 내가 다람송에게 느꼈던 경이로운 감정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다람송은 오잉송을 오잉송은 다람송을 사랑했지만, 서로 존중하지 않았다.
서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감탄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던 오잉송은 어느 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분명 나는 다람송에게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왜 다람송을 사랑하면서도 무시하는 걸까?
다람송은 분명 나에게 하나의 감탄사! 같은 사람이었는데
나는 왜 더 이상 그런 감탄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일까?
나는 상상했다.
옛날에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을..
그러자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마워 너를 만나 사랑할 수 있어서!'
그리고 그 감정을 실어서 다람송에게 뒤에서 다가가 안으며 말했다.
오잉송 : "다람송 고마워! 여기 있어줘서"
다람송 : "갑자기??"
오잉송 : "응? 그냥 ㅎㅎ"
갑자기?라고 말하는 것은 그동안 다람송이 많이 서운했다는 뜻이겠지.
갑자기?라고 하니까... 나도 좀 갑자기 멍해져서...
드라마처럼 멋있는 장면을 연출하려 했는데 멋없이 끝나버렸다.
꽃이라도 한 송이 들고 할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