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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잉송 Jun 09. 2023

[책 리뷰]오늘 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버지와 똑같아진 이유

책 '오늘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힐러리 제이콥스 헨델 저자(글) · 문희경 번역)를 읽으며 나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5살 때인가... 아버지 하고 달리기를 했던 기억이 흐릿하게 난다. 

그 기억을 제외하고는 슬프게도 아버지와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리 나쁜 기억도, 또 그리 좋은 기억도... 없다.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은 정말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더 잘 먹이기 위해 회사에서, 사회에서, 현장에서 전쟁을 치르신다. 해가 지고도 회식자리에서, 접대자리에서, 술을 드시며 그 괴로움을 혼자 삭히신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등골이 휘도록 일했지만, 결국 그 때문에 아이들과의 관계는 점점 더 서먹해진다. 나의 아버지도 그러셨으리라.. 나는 그런 나의 아버지를 존경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노고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7살에 팔이 부러졌었던 기억이 난다. 

팔이 부러져서 입원까지 했는데, 아버지께서 둘리 카세트테이프를 선물로 주셨다. 

병원에서 나는 그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퇴원하고 나서도 그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

어느 날 그 노래를 부르며, 횡단보도 앞에서  아버지에게 물었다. 

나 : (신이 나서)"아빠! 이 노래 정말 좋지 않아요?"

아빠 : (화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잠시 보다가 다른 곳을 바라본다.) "...."

아버지도 고민이 많으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고민이 느껴진다. 


아! 바닷가에 가서 놀았을 때는 아버지와 같이 수영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바닷가에서 자라신 아버지께서는 수영도 참 잘하셨다. 

우리를 이끌고 바닷속에서 수영하며 즐거워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바다가 좋다. 바다에 가면 꼭 수영을 하고 싶어 진다. 

바다에서 놀던 그때만큼은 아버지와 한 없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 돌아왔을 때, 나와 아버지는 항상 감정적 벽이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말씀이 없으셨고, 나도 아버지에게 정서적 연결을 기대하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한 번은 이렇게 여쭤보았다. 

아들 : "아빠 팔 굽혀 펴기 하면 진짜 어깨 더 넓어져요? "

아버지에게 말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말 없는 화난 표정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전형적인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셨다. 

그 후로 나는 기쁘고 즐겁고 호기심 넘치는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길 포기했다. 

TV속에서 나오는 코미디언을 따라 하길 좋아했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아버지와 단 둘이 술을 마신 적도, 여행을 같이 간 적도 없다. 


한 번은 성인이 되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뮤지컬 캣츠의 표를 구해드린 적이 있었다. 

나 : "아버지 어떠셨어요?"

아버지 : "먼지만 날리고 별로더라"

나: "그럼 아버지는 어떤 걸 할 때가 좋으세요?"

아버지 : "글쎄.... "


그렇다. 아버지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시는 '무뚝뚝한' 분이셨다. 

그런데, 나도 그렇다.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 도 있다.

하지만 결혼하고 알게 되었다. 아니면 결혼하고부터 내 안에 숨어있던 아버지가 튀어나온 것일까?  

나는 아버지와 똑같아졌다. 어느새 나는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똑 같이 되풀이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 부터 아버지처럼 감정을 회피하고 억누르는 방법을 학습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하셨듯이, 나도 내 아내(다람송)를 대했다. 아버지가 나를 대하셨듯이, 나도 내 아이들을 대했다. 나는 아버지의 감정을 회피하고 억눌러서 결국 그 감정이 썩어 문드러져서 얼굴에 박제될 때까지 놔두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다정하게 대할 때에도 얼굴로는 화난 표정일 때가 많았고, 아이들에게도 자주 화난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정서적 대화를 피했다. 공감이 뭔지도 몰랐고 그걸 왜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마치 '감정'이라는 것은 전혀 중요한 것도 아니고 느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되었다. 


 나는 두려움과, 분노, 슬픔, 혐오감, 기쁨, 흥분, 성적 흥분을 표현하는 것을 피해야 함을 아버지를 통해서 나도 모르게 체득했다. 내가 기뻐할 때나 화가 났을 때, 흥분했을 때, 아버지는 나의 감정을 모른 체했고, 오히려 못마땅한 듯 화난 표정을 지으셨다. 그렇기에 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학습했다. 감정을 차단한 결과는 참담했다. 더 이상 아무 감정도 느끼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억눌린 감정을 폭발시키고 싶어서 마구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고, 또 그런 나 자신에 지쳐버렸다.


 감정은 생존을 위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끼면 우리의 몸은 도망칠 준비를 한다. 분노를 느끼면 나에게 뭔가 충족되지 않은 강한 욕구가 있다는 뜻이고 몸은 그것을 위해 싸울 준비를 한다. 감정은 우리의 몸에 뿌리를 내리고있기에 그 감정을 해소하려면 그 감정을 표현하고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감정을 내면 깊숙한 곳에 가두고 회피하는 것은 나에게 필요한 경험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나에게 잊히지 않는 상처는 아버지의 감정차단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나에게 똑같이 대물림되어서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감정을 차단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기쁠 때 기뻐하지 못하고, 즐거울 때 즐거워하지 못하고 사랑해야 할 때 그 사랑을 충분히 표현하고 느끼지 못하게 된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과 해소되지 못한 그 감정이 가슴속에 꽉 드러 차서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쌓아놓은 감정을 되풀이하며 살아가게 된다. 


 현재를 살고 싶다면, 그리고 그 현재에 집중하는 힘으로 미래를 바꿔나가고 싶다면, 묵은 감정을 비워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올라오는 감정이 또다시 묵은 감정이 되지 않기 위해 지금 느끼는 감정을 존중하고 충분히 경험해야 한다. 

 책 오늘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를 읽으며 나는 왜 아버지를 떠올렸을까?

그건 이 책이 억눌린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와있는  통해 나 역시도 (나쁜 의도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내 감정을 회피하도록 훈련받았고 그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수치심과 불안과 죄책감으로 나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 아이에게 감정을 공감해야 나의 아버지와 같은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책에 따르면 핵심감정(두려움, 분노, 슬픔, 혐오감, 기쁨, 흥분, 성적흥분)은 우리가 삶에 잘 적응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양육자에게 어릴 때 공감받지 못하고 수용되지 않았을 때, 그 수용되지 않은 감정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학습한다. 예를 늘어 남자아이가 슬퍼할 때 아버지가 "남자답게 굴어라"라고 야단맞는다면, 아이의 뇌는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나쁘다고 학습한다. 아버지가 슬픔이라는 핵심감정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또 여자아이가 흥분할 때 어머니에게 "얌전하게 굴어야지"라는 말을 듣는다면 아이의 뇌는 흥분을 억제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살면서 흥분할 일이 생기면 흥분을 억제하거나 적어도 내적 갈등에 시달릴 것이다. 또 할머니에게 거미가 무섭다고 말하자 "바보같이, 그게 뭐가 무섭니"라고 꾸중을 들은 아이는 '두렵다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아'라고 되새길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두려운 일이 생기면 혼자서 두려움을 삭이지, 누군가를 찾아가 위로와 위안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가 핵심감정을 표현한 후 관심과 보살핌이 아닌 억제감정(불안, 수치심, 죄책감)을 느낀다면, 뇌에는 불쾌하거나 위험한 일이 일어났다는 신호가 들어간다. 그럼 아이는 그런 부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만한 감정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즉, 뇌에서 억제감정을 만드는 것이다. 


어떤 핵심감정이 받아들여지면, 진정한 자기의 열린 마음 상태를 갖고 살 수 있게 된다. 평온하고, 호기심 있고, 연결되고, 연민을 느끼고, 자신 있고, 용기 있고, 명료한 상태가 된다. 하지만 어떤 핵심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태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억제하는 삶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은 그 감정을 억누르려는 태도가 평생 지속된다. 게다가 한 사람에서 끝나지 않고 그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더 내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자 다짐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 다람송과 내 아이들의 감정도 충분히 공감하고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부분만으로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은 아주 큰 수익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29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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